[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下)>
◈한국의 구원관: 지장보살의 화신, 진기한과 강림도령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개봉 전, 이 영화를 기대하던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진기한 변호사라는 캐릭터의 캐스팅과 활약상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진기한이라는 등장인물을 삭제하고, 저승 심판의 변호사 역할을 저승사자인 강림(하정우 분)에게 덧입혔다. 이로 인해 <신과 함께: 죄와 벌>은 개봉 전부터 대기 관객들에게 상당한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었다.
진기한 변호사는 원작 웹툰인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주인공 김자홍이 사후 49일 동안 여러 지옥 심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온 김자홍은 진기한의 뛰어난 변호 덕에 인간문(人間門)을 통과해 사람으로 환생하게 된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에서 진기한의 활약은 다른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두드러진다. 명목상 주인공은 김자홍이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진기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툰 독자들 사이에서 진기한의 인기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진기한이라는 캐릭터가 이처럼 큰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무심한 듯하면서 열성적인 모습으로 망자를 변호하는 모습과 함께, 그가 저승의 변호사가 된 과정에 대한 서사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웹툰 설정에 따르면, 진기한은 어려서 죽은 영혼으로 저승에서 양육된 듯하며, 지장보살이 저승에 세운 지장 법률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진기한은 이곳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 선하게 살아온 이들만 변호하는 특혜를 받는 신장(神將)급 변호사로 임명되었지만, 이 혜택을 거부하고 저승의 일반 국선 변호사로 업무를 개시한다.
진기한이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을 거부한 이유는 동료 저승 판관과의 대화 중 등장한 대사에서 명확하게 확인된다. "아쉬운 마음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신장급 변호사가 되면 착한 사람들만 변호하게 되잖아. 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착한 사람, 못된 사람, 돈 많은 사람, 가난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구하고 싶어. 그러려고 한 공부니까...."
저승에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있다는 설정, 그리고 진기한과 같은 열혈 변호사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웹툰의 내용에 친숙함과 익살스러움을 더해주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적 사상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웹툰 속에서 이 저승 법률대학원의 설립자로 소개된 지장보살(地藏菩薩)이라는 존재는 불교와 무속신앙에서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웹툰에서 진기한은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이나 다름이 없다. 지장보살은 불교에서 석가모니불(佛)과 거의 비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자비와 구원을 표상하는 존재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간에, 되도록 많은 이들을 지옥에서 건져내겠다는 진기한의 대사는 지장보살이 추구하는 보살행(菩薩行)의 중심 이념이나 다름 없다. 불교에서 지장보살은 충분히 성불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구원에 전념하기 위해 여전히 수행의 단계인 보살의 위(位)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낮은 데 처해 있는 자라는 점에서, 지장보살은 불교에 영향을 받은 한국 전통 무속신앙의 구원관을 대표한다.
◈무속의 구원자: 심판 앞에서의 대언자, 바리공주와 지장보살
한국 무속신앙의 구원관이 불교의 구원관에 힘입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바리공주와 지장보살의 인물 형상에 보이는 공통점들을 통해 확인된다.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한국 구비문학의 권위자 강진옥은 2011년 '바리공주와 지장보살의 제의적 기능과 인물 형상 비교: 서울지역 진오기∙새남굿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불교의 지장보살에 대한 가르침이 한국 무속신앙에 유입된 증거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장보살에 대한 이야기는 주후 7세기경 당(唐)의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한 <지장삼부경>, 그 가운데서 특히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지장보살의 원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크시티가르바(क्षितिघर्भ)이다. 지장(地藏)이라는 이름은 크시티가르바라는 이름이 가진 원래 뜻(생명의 모태인 대지)을 한자로 의역한 것이다.
힌두교 카스트의 최고위층인 바라문(브라흐마나, ब्राह्मण)의 여식이었던 크시티가르바는 불교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불교도로 개종한다. 선인이자 효녀였던 크시티가르바와 다르게, 그녀의 어머니는 사도(邪道)를 믿어 불교의 가르침을 혹독하게 비방했다. 크시티가르바의 어머니는 이를 참회하지 않고 죽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고, 크시티가르바는 어머니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집과 재산을 모두 처분해서 훌륭한 향과 꽃, 그리고 공양물들을 구한 뒤 부처의 탐과 절에 크게 공양을 올렸다.
크시티가르바의 진심이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에게 전해져 그녀는 어머니가 간 지옥을 방문할 방법을 알게 되고, 이내 그 지옥을 담당하던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만난다. 무독귀왕은 크시티가르바의 깊은 효심과 공양 덕에 그녀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함께 지옥에서 고통받던 죄인들까지도 천상에 새로 태어나 낙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 일 후 크시티가르바는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 앞에서 "미래 겁(劫)이 다하도록 널리 방편을 베풀어서 죄고에 빠진 중생이 해탈케 하겠다"고 서원한다. 그리고 이 서원이 받아들여져 크시티가르바는 지장보살이 된다.
한반도에서는 고려조(朝)에 지장보살이 영혼의 극락정토 왕생을 주관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조에는 이 지장보살 신앙이 무속신앙과 본격적으로 융합되었고, 이로써 지장보살은 명부전(冥府殿)의 주존불(主尊佛)이자 지옥의 구주(救主)로 승격됐다. 즉 지장보살은 그 선행과 공로를 통해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질, 혹은 떨어진 중생을 구원하는 대속자로 신봉되기에 이르렀다.
이 지장보살 신앙은 무속신앙과 융합되는 가운데 바리공주 신화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전편에서 진술한 바 있듯, 원래 한국의 저승사상에는 생전의 행적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원(原) 무속신앙은 현세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관념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망자의 저승천도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넋굿에 대한 요구가 증대됨에 따라, 죽음 이후 내세를 중시하는 불교의 내세관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게 되었다. 이 넋굿에서 무속인들이 강림을 바라는 신이 그들의 조상 격인 무조신(巫祖神) 바리공주다. 무속인들은 넋굿을 통해 바리공주가 현현하면 망자의 넋이 안전하게 저승으로 인도된다고 믿는다.
드라마 <도깨비> 편에서 약술한 바 있듯, 바리공주는 지장보살과 비슷하게 효심과 자기희생을 통해 저승인 서천(西天)을 방문하고 부모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낸 인물이다. 바리공주는 서천에 진입하는 입구에서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을 대면하는데, 이는 바리공주의 인물 형상이 무속신앙 내에서 지장보살의 그것과 상당한 친연성(親緣性)을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리공주 신화가 지장보살 신화를 계승∙발전시켰다는 증거는 무속의 제의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죽은 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무속인들이 자주 읊는 망자축원 가운데는 "불산문 연화대로 대자대비 지장보살님 뒤를 따라 왕생극락 하시는 날이루서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구는 자주 "바리공주 뒤를 따라"로 교체되어 축원되기도 한다. 이는 바리공주와 지장보살, 이 두 신격 존재의 비호와 도움이 있어야 사람이 지옥 형벌에 빠지지 않는다는 무속신앙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바리공주 신화의 다양한 이본(異本)들을 살펴보면, 바리공주와 지장보살은 망자의 저승천도와 극락왕생을 위해 일정부분 역할을 분담하는 가운데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바리공주가 이승으로부터 저승 입구까지 망자의 넋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지장보살은 저승의 심판을 거쳐 극락왕생으로 이르는 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과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도 각기 모양새는 다르지만, 이승에서 저승으로, 그리고 저승에서 지옥을 피해 극락왕생하는 길로 이끄는 인도자 혹은 조력자가 존재한다.
웹툰에서는 지하철 바리데기(바리공주의 다른 이름)호가 이승에서 저승 입구 초군문(初軍門)까지 운행하며 망자의 안전한 저승행을 돕고, 저승 심판 과정에서는 지장 법률대학원 출신의 변호사 진기한이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있게 적극적인 변호를 펼친다. 영화에서는 저승사자인 동시에 망자의 넋을 변호해 주는 강림차사가 이승으로부터 저승 심판 과정 내내 주인공 김자홍의 옆을 지킨다.
이로써 <신과 함께>는 원작 웹툰과 영화 모두에서, 불교로부터 영향받은 한국 무속신앙 고유의 영혼 구원에 대한 사상을 전면에 내세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종교와 문화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록 불교로부터 내세에 대한 체계적 관념을 차용하여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원래 무속신앙은 전반적으로 내세보다는 현세의 삶에 도움을 준다는 점 때문에 민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무속신앙의 내세관은 무속인들 본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제의를 수행하고 신의 힘을 덧입는 방도가 무속신앙의 내세관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속신앙에 의존하는 민중은 무속신앙의 내세관보다 무속인들을 통해 중재되는 힘 자체, 즉 직접적으로 현세의 고난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힘 자체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통상 무속신앙이라고 하면 내세의 구원이나 극락왕생보다는 당장 현세의 삶을 위로하는 굿이나 점술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의 인식 속에서 무속신앙이란 보통 기복적 원시종교 정도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신과 함께>라는 문화콘텐츠는 이런 인식을 근본으로부터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한다. <신과 함께>는 무속신앙이 나름의 확고한 죽음관과 내세관뿐 아니라, 불교의 구원관과 상당한 연관성을 갖는 체계적인 구원관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인식 속에서 기복적 원시종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인지되고 있던 무속신앙을 불교나 기독교와 비등한 수준의 신앙체계로 승격시키려 한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종교적 지향점, 다시 말해 종교들 사이의 우열을 부정하고 종교 간의 평등한 대화를 시도하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나 종교적 요소들 간의 적극적인 융합을 시도하는 종교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가 <신과 함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무속과 기독교: 새로운 구원자상(像)의 도전
사실 무속에 유입된 불교의 보살신앙이 내세우는 구원관과 기독교 구원관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종교 간 대화와 융합은 한국 포스트모던 신학의 지평에서 미리감치 시도된 바 있다.
이른바 '토착화 신학'이라 명명된 이 새로운 신학적 시도는, 당시 한국교회 보수 신학자들과 주류 목회자들에 의해 강력하게 지탄을 받았다. 감리교신학대 학장을 역임했던 변선환의 <불타와 그리스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추대된 길희성의 <보살 예수>와 같은 저서는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과 불교가 가르쳐 온 구원관을 토대로 기독교 기독론을 재해석하는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교의적 차원에서 토착화 신학은 당연히 경계 대상으로 지목되지만, 학문적 차원에서는 상당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토착화 신학이 한국 기독교인들이 체감하는 종교적 현실과 삶의 정황을 솔직하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무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으로 탄생한 내세의 구원자상은 장구한 세월 한국 민중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기 시작한 이후로도 무속신앙과 불교가 전해 준 정신적 유산은 한국 민중의 정신 깊은 곳에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서구 기독교의 구원관과는 일정부분 차별된 모습을 보이는 한국 기독교인들만의 독특한 구원자상을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선교사보다 2년 늦은 1887년에 조선에 들어와 기독교 선교사로 일했던 존스(George H. Jones) 선교사는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회고하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인을 사로잡았던 대표적 종교 세 가지를 꼽으라면 샤머니즘과 불교와 유교다. ... (조선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인이며 철학에서는 불교인이고, 곤경에 처해 여러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는 샤머니즘 신앙인이다(George H. Jones, The Korea Mission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1910)."
1891년에 대한제국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쳤던 장로교 선교사 빈턴(Cadwallader C. Vinton)은 한국 기독교 선교를 훼방하는 장애 요인들을 분석한 연구논문에서 귀신숭배, 즉 무속신앙이 한민족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밝혔다.
"한국에는 비록 나라가 정한 종교는 없어도, '군대(legion)'같은 미신들이 있다. 산과 강과 들판, 나무와 바위, 어떤 곳이든 신이 있어 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생활, 즉 농사 일과 장사하는 일, 출생과 결혼, 죽음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 이 곳 토착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이런 귀신 숭배다(Cadwallader C. Vinton, "Obstacles to Missionary Success in Korea," 1894)."
한국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이 활동한 이후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한민족의 근원적 사고구조 자체는 그리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한때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 부흥이 일어났고 현재는 세속화, 과학주의 등이 갈수록 우세해지는 상황이지만, 무속신앙과 불교의 유산은 문화 전반에서 굳건하게 보존∙전수되고 있다. 토착화 신학은 이런 현실을 정직하게 학문적으로 분석하려는 가운데 등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가 유독 기복적이고 권위적이며 당파적인 색채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구원관과 구원자상 역시 상당한 정도로 한국 고유의 무속적-불교적 구원자 신앙인 보살신앙이나 바리공주 신앙에 영향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의식적으로 교의를 배우고 고백하는 차원에서는 복음에 적합한 구원자 신앙과 기독론이 확인되겠지만, 의식 이면의 무의식 차원에서, 삶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의 차원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무속신앙이 주입해 온 저승의 자비로운 구원자 이미지가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신과 함께>는, 원작 웹툰과 금번 개봉된 영화 모두 다, 한민족의 정신세계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무속적-불교적 구원자에 대한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가운데, 관객들에게 기독교의 구원론과 기독론에 대한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는 대체재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이미 <신과 함께>라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여러 분석적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다.
대표적인 예로 장은진 교수는 '한국 대중문화 속에 나타난 사후세계의 환상성: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을 중심으로'라는 연구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진기한이 김자홍의 손을 잡아) 오물 속에서 꺼내주는 장면은 앞으로 진기한이 김자홍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여 결국 7개의 문 중 인간으로 환생하는 인간문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이 뿐 아니라 김자홍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구해주는 모습은 마치 인간이 아닌 신이 그를 구원해 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구원할 수 없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장보살의 대원(大願)처럼 진기한은 중생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복원과 창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장보살의 화신인 진기한, 혹은 강림도령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영혼 구원의 서사시, 이것이 바로 웹툰과 영화 <신과 함께>의 주된 메시지다. 영화에서는 진기한이라는 인물의 등장을 배제하고 이 역할을 강림도령에게 덧입혀 이미지 상의 혼란을 가중시키기는 했지만, 그 역시 무속적-불교적인 구원자 신앙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금번 <신과 함께: 죄와 벌>의 개봉과 관객들의 호응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속신앙의 문화적 재흥은 단순히 과거의 미신을 부활시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무속신앙은 포스트모던 문화가 지지하는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혼합주의의 세태를 힘입고 있는 데다가, 다양한 문화콘텐츠 형식과 유통경로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스마트한 문화현상이자 종교현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신과 함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구원론에 대해서까지 대체제로 등극하려는 무속신앙의 포부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도전의 상황은 한국의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문화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늦추지 말 것을 촉구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