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연구(34)
여호수아서 15장은 유다지파가 어떻게 땅을 분배받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서 유다지파가 제일 먼저 땅을 분배받았다는 것이다. 유다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이어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야곱이 각 아들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마지막 축복 기도에서도 유다는 네 번째로 언급되어 있다(창 49장). 그런데도 유다지파가 다른 지파들 보다 먼저 땅을 분배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다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었다. 유다의 위치 상승은 위로 세 형들이 저지른 잘못이 그 배경이 된다. 장자였던 르우벤은 아버지의 후처였던 빌하와 동침한 일이 있었고(창 35:22),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는 일로 야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창 34:25-26). 야곱의 마지막 유언 기도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이들의 잘못은 호된 책망은 물론 이들 자손들이 겪게 될 불행한 운명과도 연결되어 있다(창 49:4, 5-7).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다에게는 그의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축복이 약속되었다(창 49:8-12). 그런 약속대로 유다 지파에서 다윗왕가가 나왔고, 후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다. 다윗왕가의 출현이 있기에 앞서 유다지파의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킨 인물은 적극적 신앙의 소유자 갈렙이었다. 여호수아가 요셉지파의 위상을 높여준 인물이라면, 갈렙은 유다지파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유다지파가 땅을 분배받은 것은 '가족대로' 제비 뽑는 방법을 통해서였다. 여기에서 언급된 '가족'은 히브리어로 '미쉬파하'인데, 지파('세베트')와 아비집('베이트 아브') 사이를 이어주는 친족단위이다. '아비집'이 가장(아브)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3대 내지 4대가 모여 이루어진 대가족이라면, '미쉬파하'는 여러 개의 아비집들이 모여 이루어진 친족이다. 그러한 '미쉬피하'가 모아져서 더 큰 단위의 지파를 이루게 된다. 물론 친족단위로 분배된 땅은 다시 각 아비집 단위로 나뉘어졌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기본적 경제단위는 아비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땅을 아비집 단위로 분배하지 않고 보다 큰 개념인 '미쉬파하' 단위로 분배한 것일까? 그것은 분배된 땅을 지켜야할 책임이 친족단위에 있음을 지적해 준다. 땅을 분배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배받은 땅을 그대로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했다. 각 단위 아비집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하여 자신들의 땅을 타인에게 팔게 될 경우, 그 땅을 되사오는 책임은 보다 큰 개념인 친족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구약에서 기업을 무르는 일과 관련된 '고엘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각 가정에 분배된 땅은 다른 '미쉬파하'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제도화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토지개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땅을 친족 중심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땅을 분배받는 것은 가정의 경제력을 확보하는 축복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 땅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이 따라오는 부담이기도 했다.
유다지파의 땅 분배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지적된 점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아직도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나안의 원주민이었던 여부스 족속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기까지 유다지파와 경계를 이루며 지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면서 새로운 수도를 필요로 하였다. 당시 여부스 족속들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하면서 어느 지파에게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 지역이었다. 지파간의 갈등을 극소화시키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다윗에게는 예루살렘만큼 더 좋은 조건의 중심지가 없었다. 땅을 분배받을 당시만 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 지역이었던 예루살렘이 후에는 이스라엘 역사를 주도하는 핵심도시가 되었다. 문제의 이면에는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