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은 사랑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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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를 만나다] 사랑의 선물

마지막으로 성령은 또한 사랑을 가져오신다(롬 5:5).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찬양하고 있는 대부분은 자기 사랑이다. 이것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전체 기독교는 혼란스러워진다. 당신이 이기심에 대하여 죽고, 그리하여 세상에 죽고 나서야,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요일 2:15).

심지어 당신은 이기적으로 단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당신이 자신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눅 14:26, 요 12:25), 기독교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

한낱 우리의 인간적인 개념에 의하면, 사랑은 "즉각적으로" 우리의 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젊었을 때 사랑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다 보면 사랑이 식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배울 수 있는 현장은 행복한 가정이지, 서로 틈만 나면 싸우고 이혼을 결심하는 가정은 아닐 것이다. 이웃 사랑도 서로 나눔을 실천하는 곳에서 배운다고 생각하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현장에서 이웃 사랑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독자, 당신은 사도들이 사랑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사도들이 사랑의 호의적인 측면부터 배웠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알아. 나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법을 배웠지."

여태껏 이렇게 말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던 누군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다! 이것은 쓰라린 경험이다. 사람 안에 사랑할 수 있는 점을 찾기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구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재물이 아니라,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복지일 때(고후 12:14), 이것은 합리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찾지 않는 것, 그 반대를 찾는 것, 사도들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할 가치가 없는지를 찾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이나 다름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사도들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죽었고, 그들 주위에 모든 것들은 캄캄해졌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죽음이다! 이것은 그들이 두려운 경험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말해, 사랑은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이 미움을 받았고, 사랑이 조롱을 당했고, 사랑이 침 뱉음을 당했고, 사랑이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달렸다. 사랑이 십자가에 달리는 반면, 심판하는 정의는 조용하게 그의 손을 씻는다(마 27:24). 사람들의 목소리는 강도를 향에 부르짖는다.

그때, 사도들은 이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영원한 증오를 맹세했는가? 그래,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증오이기 때문이다(약 4:4).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는 그럴 수 없다.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사랑 안에 거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한다(요일 4:16).

말하자면, 이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계속해서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때, 생명을 주는 영은 사도들에게 사랑을 가져오신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사랑하기로, 고난을 당하기로, 모든 것을 견디기로 결심한다. 이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당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바로 이것이 생명을 주는 영이 오순절날 사도들에게 가져온 선물이다. 성령이여, 원컨대, 우리에게도 이 선물을 가져다 주소서. 확실히 이 선물이 이와 같은 시대에 필요합니다!

나의 독자,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더 있다. 당신이 보기에 이것이 덜 엄숙해 보이는 이야기 형태로 전달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심사숙고하여 어떤 의도를 갖고 전달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당신에게 더욱 진정한 인상을 남게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그는 아주 비싼 값을 주고 전혀 흠이 없고 훌륭한 한 조의 말을 해외에서 사 왔다. 그는 그 말을 스스로 몰 수 있는 기쁨 때문에 그 말들을 원했던 것이다. 약 한두 해가 흘렀다. 일찍이 이 말들을 알고 있었던 어떤 사람이 그가 이 말들을 몰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말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말의 눈은 흐릿했고 졸려 보였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우아함도 부족하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그들은 지구력도 없었고 인내력도 없었다. 그 부자는 한 번도 안 쉬고 약 6km 정도 말을 몰 수 있었다. 때로는 그가 최선을 다해 몰 때도 말은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게다가 말들은 온갖 종류의 버릇과 나쁜 습관들을 습득했다. 물론 말들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날마다 점점 더 야위어갔다.

그때 그 부자는 왕실의 마부를 불렀다. 마부는 약 한 달 정도 말을 몰았다. 그랬더니 온 마을에 그렇게 자랑스럽게 머리를 치켜들고 다니는 어떤 말도 없었다. 그들의 눈은 매우 사나웠고, 그들의 걸음걸이는 매우 아름다웠다. 이 한 조의 말만큼이나 지속해서 달릴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한 번도 안 쉬고 한 번에 약 50km를 달릴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말의 소유자는 마부가 되지 못한 채, 마부가 되는 일에 낱낱이 간섭한 것이다. 결국, 말을 모는 것에 대해 말의 이해에 따라 말을 몬 것이다. 그러나 왕실 마부는 말을 모는 것에 대해 마부의 이해에 따라 말을 몬 것이다.

우리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알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종종 나 자신에게 슬프게 말했다. "여기에 능력도 있고 재능도 있고 자격도 되는 사람은 충분하지. 다만 마부가 부족할 뿐이야."

너무 오랫동안, 대대로, 우리 인간들은 말을 모는 것에 대한 말의 이해로 부려졌던 것이다. 은유를 사용하기 위해 표현하자면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간적인 개념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지시받고 양육되었다.

보라, 이로 인해 우리가 부족한 것은 높임이다. 인간 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교육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인내심이 부족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한때 상황은 달랐다. 내가 감히 이런 식으로 표현하자면, 스스로 마부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는 말을 모는 것에 대하여 마부의 이해를 따라 말을 몰았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들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스승은 세상에 의해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이 작은 나라에서 저주를 받고 있는 바, 그들을 향해 온 세상의 증오를 일깨우고 있는 가르침을 선포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이것이 그들의 과업이다. 이 열두 제자는 증오하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것도 가장 소름 끼치는 규모로 소요를 벌이고 있는 세상의 의지에 반역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이해는 멈춘다! 너무나 오랜 뒤에, 심지어 지금도, 이해는 이것에 대한 희미한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멈춘다. 이것은 사람을 미치도록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몰 수 있을 만한 이해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겪어야 하는 기독교이다. 열 두 제자가 이 기독교를 겪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처럼 잘 부려졌다! 그래, 진실로 그들은 그랬다!

그들은 왕실 마부가 그들을 몰고 있을 때와 같은 그런 한 조의 말과 같았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있었던 이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위로 그들의 머리를 높이 치켜 들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높이 그들의 머리를 들지 못했다!

필요하다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60km를 달릴 수 있었던 저 한 조의 말처럼, 그들도 그렇게 달릴 수 있었다. 그들은 마구를 벗지도 않은 채로, 어느 곳에서도 멈추지 않은 채로, 단 한숨에 70년을 달려왔다. 아니,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 가운데 있었던 만큼, 그들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빈둥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원까지."

이것이 겪어야만 하는 기독교였다. 그래, 그들은 겪었다. 그들이 해낸 것이다. 그들은 잘 부려졌다. 그래, 그들은 그랬다!

오, 성령님이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 성령님이여, 생명을 주는 영이시여, 여기에 능력이 부족한 것도, 교육이 부족한 것도, 지혜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오늘날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당신께서 우리를 타락하게 하는 무엇이든 가져가는 겁니다. 필요한 것은 당신께서 우리의 능력을 빼앗고 생명을 주는 겁니다.

당신께서 사람에게 능력이 되기 위해 그에게서 능력을 빼앗을 때, 사람은 확실히 죽음의 떨림과 같은 그런 떨림을 경험합니다. 오, 처음에는 말이 두려움에 떨면서 반항할지라도, 그러나 한 순간에 왕실 마부가 고삐를 잡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인지 깨닫는다면, 주님께서 능력을 빼앗아 가고 생명을 줄 때, 그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하소서!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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