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연구(41)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23장과 24장)은 나이가 많아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온 백성들에게 전한 두 차례의 고별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와 같은 고별사는 야곱이나 모세나 다윗과 같은 인물들의 생애 마지막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창 49; 신 32-33; 삼하 23:1-7).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그런 고별사를 전했다는 것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그의 위치가 그만큼 확고했었음을 의미한다. 여호수아가 전한 두 편의 고별사는 형태나 내용 면에서 유사성을 지니지만, 이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점은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첫 번째 고별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것인 반면에 두 번째 것은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23:2; 24:1-2). 그에 따라 고별사를 전한 장소도 차이가 있다. 첫 번째 고별사는 실로에서 전해진 반면 두 번째 것은 세겜에서 전달되었다(24:1).
여호수아가 전한 마지막 고별 연설은 시내산에 시작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관계를 갱신하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전한 고별사의 마지막 결론도 언약갱신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마쳐지고 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두 고별연설 속에서 강조된 주제가 공통적으로 언약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 강조되는 점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주도권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출주시는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이다. 23장에서 그런 점은 '싸우시는 하나님'(23:3)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앞서나가 싸우심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뿐 아니라 지파별로 그 땅을 나누어 갖게 하신 분이시다(23:4-5). 24장에서는 보다 큰 역사적 문맥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소개하고 있다. 곧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케 하여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는 것이다(24:2-13).
언약관계는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여호수아의 두 고별사에서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표현되어 있다. 23장에서 보여준 백성들의 반응은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23:6)'이다. 24장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는 것'(24:14)이라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는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이나 가나안 땅의 아모리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을 버리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24:15). 여호와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을 전적으로 섬기며 따라야 한다.
언약관계는 '그러므로'와 더불어 '만일'이라는 경우가 설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분이지만, 이스라엘은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할 능력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것이 '만일'이라는 경고를 필요로 한다. 23장에서 강조한 '만일'은 가나안에 남아있는 다른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왕래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된다(23:12-13). 언약의 걸림돌이 세상과 짝하는 세속화임을 강조한 것이다. 24장에서 '만일'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왕에 주신 복까지도 돌이켜 오히려 재앙이 되게 하신다고 경고하였다(24:20).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천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촉구하였다. 여호수아의 확고한 역사인식과 설득력 있는 신앙적 촉구는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전체 백성들의 결단을 이끌어 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소홀해 겼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새롭게 갱신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선도한 이스라엘의 정치-군사적 지도자였지만, 그에 앞서 그는 탁월한 영적 지도자이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