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모세의 뛰어난 온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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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라보다 더하더라" (민 12:1-3)

모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인 미리암과 아론으로부터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 모세가 구스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 화근이 되어 시작된 갈등이었다. 여기에서 구스여자란 십보라가 죽은 후 모세가 두 번째 맞이한 부인일 수도 있겠지만, 이드로가 본래 구스 출신이었다는 점을 들어 십보라도 구스여자로 지칭될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구스여자 문제는 구실일 뿐 본질적인 불만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는가?'라는 모세의 영적 권위에 대한 것이었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여선지자로 활동하였고(출 15:20)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자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불평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시면서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편을 들어주신 그의 뛰어난 온유함이란 무엇일까?

우리말 성경에서 '온유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나브'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아나'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고대시대 대답하는 사람이란 종을 의미한다. 주인만이 질문할 수 있고 대답은 종에게 주어진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온유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세의 온유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모세의 두 번째 삶의 주기였던 미디안광야에서 나온 것이다. 미디안은 그에게 자신을 낮추는 광야학교이며 훈련장이었다. 광야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광야는 인간에게 미니멈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광야는 하나님에게는 맥시멈의 장소 곧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가장 불편한 장소인 광야는 인간에게 겸손의 온유함을 가르쳐주면서 하나님의 맥시멈을 경험하는 최적의 영적 훈련장이다. 그런 그의 온유함은 80세 나이에 출애굽 영도자로 부름을 받으면서 다섯 번이나 부르심을 거절하였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그의 나이 40세 때 동족 히브리사람을 위하여 애굽 인을 쳐죽이는 과격한 행동과는 전혀 대조적이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나름대로의 미디안광야가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맥시멈을 경험하면서 온유함을 얻은 바로 그 장소이다. 그런 시간과 장소는 우리들이 중생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시작하는 거룩한 삶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온유함의 장소를 계속 유지하고 있느냐이다. 모세는 자신이 얻은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함을 평생 유지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모세가 자신의 온유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위기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맥시멈을 구하였다. 오늘의 본문 2절 마지막 부분에는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가 등장한다. 여호와께서 미리암과 아론의 비난을 들으셨다는 것은 모세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한 내용을 들으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복음서는 예수의 복음전도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삼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수많은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런데 그런 바쁘신 사역을 이끄는 원동력은 예수님의 기도였다. 마가복음 1:35은 예수님의 기도생활 핵심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시는 시간은 '새벽 아직 어두운 때'였다. 어두움은 빛 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곳'에 계신 분이시다. 솔로몬이 언약궤를 새로 지은 성전으로 옮기고 나서 백성들 앞에서 행한 연설 속에 "여호와께서는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왕상 8:12). 실제로 언약궤가 모셔진 지성소는 외부의 빛이 완벽하게 차단된 캄캄한 곳이다. 그곳은 피조 된 빛이 아닌 창조주의 본질적 빛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새벽 아직 어두운 때'는 하나님의 본질적 빛을 경험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또한 예수께서 기도하신 장소는 '한적한 곳'이다. 여기에서 '한적한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레모스'는 히브리어로는 '광야'를 의미하는 '마드바르'이다. 물이 풍부한 갈릴리바다 주변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장소를 '한적한 곳' 곧 '광야'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자신을 비우는 광야의 온유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운 자리는 하나님의 맥시멈이 채워지는 영적 공간이 된다. 그런 점에서 새벽 아직 밝기 전의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는 온유함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맥시멈을 보충하는 충전소이기도 하였다. 우리들도 온유함의 배터리가 방전된 채 방치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팔복 중 세 번째 복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이다. 농경사회였던 성경시대에 땅은 삶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런 땅은 단순히 삶의 풍요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영적 영향력을 의미한다. 시 37:11에서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풍성한 화평'이란 혼자서 누리는 복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참된 복 곧 공동체적 샬롬을 의미한다. 온유함이 뛰어난 모세가 이스라엘 온 집을 다스린 것은 온유함을 통한 그의 영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다.

지금은 우리들의 첫 온유함이 배양된 우리의 광야를 되찾을 때이다. 그렇게 회복된 온유함을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기도로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풍파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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