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1)
* 본지는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의 논문 <'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I. 서론: 성경의 땅 개념으로서 'Peopled Land'
이스라엘 역사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된다(창 12:1). 하나님께서는 그런 명령과 함께 두 가지 곧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12:2)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를 약속하셨다. 두 가지 약속은 시차를 두고 주어졌다. 전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나기 전에 있었고, 후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도착한 후에 주어졌다. 민족번성은 아브라함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가나안으로의 출발 전에 약속되었을 것이다. 반면 가나안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현실이라 도착 후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때로 하나님의 약속은 구체적인 문맥의 시청각적 요소를 통해 주어지기도 한다.
비록 시차를 두고 주어주긴 했지만, 이 두 약속은 서로 다른 별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를 이루는 두 요소일 뿐이다. 성경에서 사람이 없는 땅과 땅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전자가 쓸모없이 버려진 황무지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땅은 '사람들이 사는 땅'(Peopled Land)이다. 두 요소가 하나로 모여 있어야 참되고 복된 삶이 가능하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네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둘이 떨어지는 것은 포로와 같이 정상적인 삶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는 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땅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나라를 잃어버린 유랑민 생활 속에서도 고국 이스라엘에 대한 열망으로 모든 역경을 견디어냈다. 그만큼 그들은 땅 중심의 성경적 신앙에 충실했었다. 그런 신앙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부르심을 받은 때부터 오늘날까지 4000년 기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그러한 땅 중심의 신앙이 가져다 준 결실은 1948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독립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이 우연에 의한 일반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그동안 견고하게 지켜온 성경적 신앙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섭리역사임을 의미한다.
땅 중심의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부름과 가나안 땅이다. 두 번째는 다윗의 예루살렘 선택과 시온신학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이스라엘 독립으로 이어지는 시온주의이다. 첫째가 가나안 땅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규명해주는 것이라면, 둘째는 가나안 땅의 구심점인 예루살렘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조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신학적 흐름은 세 번째로 이어져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건인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결실되었다. 4000년의 긴 역사로 이어지는 세 가지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역사라는 한 가지의 중심 주제로 요약된다.
II. 가나안과 토지신학
성경에 나오는 땅에 대한 신학적 연구는 최근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땅(land)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어떤 것보다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땅이 구원의 결과로 주어진 축복이라는 관점을 강조한 마르텐스(Elmer A. Martens)는 땅과 관련된 단어가 구약에서만 무려 2,504번이나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성경에서 네 번째로 많이 사용된 단어로서 성경에서 어느 것보다 더 핵심적 주제임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오는 땅 연구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다. 땅의 외형적 형태를 다루는 지형지리, 역사와의 관련성을 다루는 역사지리, 국경문제나 지파별 땅 분배 등을 다루는 정치지리, 또한 땅의 경제적 연관성과 문화와의 관련성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땅 주제를 단순히 인간 삶을 위한 경제적 요소로만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땅은 무엇보다도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거룩한 공간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땅과 이스라엘은 실제적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그래서 땅은 신학적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A. 땅과 관련된 성경의 용어들
1. 아다마
구약에서 땅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용어로서 '아다마'가 있다. '아다마'는 '붉다'(red)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돔'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붉은 색을 띈 비옥한 땅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산지에서 흘러내려와 주변 골짜기에 쌓인 충적토가 유명한데,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이를 '테라로사'(terra rosa) '붉은 땅'이라고 부른다. '아다마'는 경작이 가능하여 인간의 삶과 거주에 적합한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다마'의 반대 개념은 인간 생존이 불가능한 사막이나 광야이다.
2. 에레츠
땅에 대한 또 다른 성경 용어는 '에레츠'이다. 이 용어는 비옥한 땅인 '아다마'와는 달리 땅의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천지창조의 관점에서 본 땅이다. 즉 '에레츠'는 하늘 혹은 바다와 반대되는 개염의 땅이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이등분되거나, 하늘과 바다와 땅으로 삼등분 된다. 이런 우주의 구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에레츠'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에레츠'는 정치적 개념으로서 인간의 역사와 신앙으로 의미화와 역사화가 이루어진 땅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성서신학의 우선적 주제는 '아다마'가 아니라 포괄적 개념의 땅 '에레츠'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계시의 현장이기도 하다.
부르거만은 '에레츠'와 '아다마'의 구분을 공간(space)과 장소(place)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공간(space)이란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없는 완전하게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땅은 책임성 자체도 없는 공백상태의 공간이다. 반면에 장소(place)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땅, 무엇인가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 사건이 여러 세대에 거쳐 기억되면서 해당 공동체에게 정체성을 제공하는 땅이다. 따라서 공간(space)의 추구는 역사로부터의 회피이지만, 장소(place)의 추구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는 결단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하였던 땅은 풍요를 보장하는 '아다마'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역사와 통치가 기다리고 있는 '에레츠'였다. 그곳은 역사의 부름을 외면하는 무책임성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강조되는 거룩한 '장소'이다.
3. 나할라
땅과 관련된 또 다른 성경 용어는 '나할라'이다. 우리말 성경에서 '기업'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이스라엘에게 나누어주신 땅을 의미한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인구비율에 맞게 각 지파에게 나누어 줄 것을 지시받는다(민 26:53-56). 모세는 죽기 전 이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위임했으며(신 1:38; 3:28; 31:7),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이후 가나안땅을 각 지파들에게 나누어주었다(수 11:23). 그렇게 분배된 '나할라'는 이스라엘에게 개별 소유로 주어진 땅이었지만, 그것은 단지 사용을 위한 소유일 뿐 영구적 소유권은 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있었다.
'나할라'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신탁재산처럼 위임된 땅을 의미한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영구적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땅의 지속적인 소유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나할라'는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삶을 요구하는 땅으로 규정된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백성이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언약백성으로서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이 주어졌다. 신명기는 그와 같은 율법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하고 살아갈 근거라고 강조한다(신 5:16, 31, 33; 6:3, 18; 8:1; 11:8; 16:20; 30:16, 20).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도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할라'의 땅 가나안을 소유하며 살아가기 위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율법준수는 이스라엘이 '나할라' 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실제적 방법인 셈이다.
B.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가나안 땅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에게 적합한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은 단순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설(창2:8)하신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땅이다. 그러한 조화로운 삶은 에덴에서 발원하여 네 방향으로 흐르는 풍부한 물 근원에서 찾을 수 있다. 에덴은 물이 풍부한 땅이었다. 에덴의 중앙에서 발원하는 수원은 동산 전체를 적실 뿐 만 아니라 네 방향으로 흘러 네 강의 근원이 되었다(창 2:10-14). 여기에서 말하는 풍부한 수원과 사방으로 흘러 내려가는 강은 에덴에서 누리는 완벽한 조화와 풍요로운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과 땅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결국은 에덴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여기에서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은 곧 에덴의 풍요로운 삶으로부터의 추방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래의 삶이 에덴에서의 완벽한 조화였다면, 인간의 범죄로 인한 추방은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본질적 삶으로부터의 단절이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인류를 사방으로 흩으신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셨다. 그것은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땅 가나안을 약속하신 것에서 구체화되었다(창12:2-7). 온 인류의 흩으심 속에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원심에서 구심으로의 방향전환이었다. 인간 스스로 설정한 바벨탑이라는 중심을 없애버리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중심지인 가나안을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을 그곳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에 주신 새로운 땅 가나안의 약속은 단순히 그와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살아갈 생활공간이라는 세속적 의미를 넘어선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범죄로 인하여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간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계획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가나안 땅은 인간 전체에게 회복될 에덴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이다.(계속)
권혁승 박사(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