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 위헌 소원 공개변론'이 개최됐다. 2011년 11월 이후 불과 7년만으로, 당시와 달라진 것은 '미투 운동'을 비롯한 페미니즘 의식이 강화된 것과 진보 측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뿐이다. 이미 정권 교체 이후인 지난해 10월, 청와대 홈페이지 내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이 2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 조국 민정수석이 답변에 나섰던 일이다.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측은 "임신·출산은 여성의 인생에 여러 번 일어나는 일로써, 낙태죄 조항은 여성이 임신과 출산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하여 여성의 자기운명 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 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임부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신 12주까지는 태아의 모체 의존도가 높지만 이후에는 독자 생존성이 높아 구분할 수 있다. 또 임부에게 부담이 적은 시기이다. 태아는 임신 12주 전까지는 독자적 생명 능력이 없는 불완전한 생명체"라며 "형법이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면서 여성들이 위험한 수술에 노출돼 있다"며 "임신·출산은 여성만 가능한데, 낙태죄로 여성만 처벌받는 것은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며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일견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형법상 낙태죄는 낙태를 하는 여성과 낙태를 도운 의료진의 처벌만 규정돼 있을 뿐, 임신을 하게 만든 남성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입법에 의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예외적인 낙태 허용 범위에 대해서도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낙태죄가 엄연히 존속하고 있는 지금도 낙태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상황에서, 낙태죄 위헌 판정을 내릴 경우 낙태가 더 광범위하고 일반적으로 실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형법상 낙태죄는 그 '선언적 의미'도 적지 않은데, 낙태를 놓고 수없이 고민하는 여성들 안에 그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사라질 우려가 있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이들은 '자기운명 결정권'을 주장하나, 그 결정권은 사실 임신 이전, 임신을 만든 그 행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상대인 남성들이 더욱 엄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 그 행위는 연애 중 애정표현로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 중 하나가 아니고, 우리 인간이 주관할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생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중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듯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도 지난해 11월 인사청문회에서 "임신한 여성들은 태아의 태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모성애가 발현되기 시작한다"며 "미 연방대법원에서 했듯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헌법재판소장의 발언이나, 위헌 소원 청구인 측의 "임신 12주 전까지의 태아는 독자적 생명 능력이 없는 불완전한 생명체" 발언이나,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사실 '독자적 생명 능력'이란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한동안 없는 것이다. 산모가 젖을 주지 않으면 아기가 생존할 수 있는가. 12주 전 낙태가 정당화되려면, 태어난 아기도 젖을 떼기 전까지, 아니 혼자 밥을 먹고 살아갈 능력이 되기 전까지는 죽여도 되는 것인가. 법무부 측 대리인 주장처럼, "발달의 연속성은 생명의 특징인데,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보호도를 달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주로 낙태죄를 찬성하는 측이 믿는 진화론적으로 봐도 맞지 않는다.
인권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은 '생명'이다. 이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믿는 한국교회는 낙태죄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낙태죄 존속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낙태 여부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낙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한국교회에 남겨진 더 큰 숙제다. 남성 청소년·청년 또는 성인들에 대한 성교육도 교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