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 연세대 강연 논란: 페미니즘의 아이콘인가 적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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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페미니스트 문화현상 (上)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걸린 은하선 씨 강연 관련 대자보를 유심히 읽고 있는 학생들. ⓒ크리스천투데이 DB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 걸린 은하선 씨 강연 관련 대자보를 유심히 읽고 있는 학생들. ⓒ크리스천투데이 DB

불꽃페미액션의 도심 시위 등 페미니즘 논란이 거센 가운데 매주 영화로 세상을 바라보던 박욱주 교수님께서 연세대 은하선 강연 논란을 집중 분석합니다. -편집자 주

◈페미니즘의 넓이: 아름다운 페미니즘과 천박한 페미니즘

작년과 재작년, 헐리우드 영화계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어닥쳤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페미니즘의 열기를 반영하듯 두 해 연속 여성 주인공의 삶을 묘사한 <라라랜드>와 <셰이프 오브 워터>에 상을 몰아주었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된 <라라랜드>는 미국 현지에서 평단의 호평뿐 아니라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그 외에도 차별받는 여성 과학자들의 분투를 그린 <히든 피겨스>가 호평받았고, 슈퍼히어로 영화 가운데서도 <원더우먼>이 최근 DC 유니버스의 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최근 한국 사회와 문화계에서도 페미니즘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여혐-남혐 논란이 불을 댕겼고, 미투 운동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현 한국의 페미니즘은 어떤 이들에게는 조롱과 적대감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게는 충분한 이용가치를 가진 기회이며, 그 외 다른 이들에게는 즐거움과 환호의 대상이다.

한국 사회와 문화계 전반에 지금처럼 페미니즘이 주목받은 시기가 있었을까? 페미니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체 페미니즘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상이 그러하듯, 페미니즘 역시 한두 문장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넓이를 품고 있다. 페미니즘의 개진과 발전에 일생을 진력한 세계적인 학자들의 수도 적지 않고, 그보다 가벼운 단계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페미니즘 내에도 여러 지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 지류들이 각기 주장하는 바를 일일이 검토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분류 기준을 채택해 페미니즘 내부의 지류들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처사가 될 것이다.

여러 걸출한 페미니스트들 가운데서도 독보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이리가레이(Luce Irigaray)라는 학자가 있다. 193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대 페미니스트 이론 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철학자이자 언어학자다. 그녀는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이를 통해 페미니즘을 두 가지 지류로 분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벨기에 출신의 저명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이.

▲벨기에 출신의 저명 페미니스트 철학자, 루스 이리가레이.

이리가레이가 본 페미니즘의 첫 번째 지류는 바로 보부아르로 대표되는 순진하고 구태적인 페미니즘이다. 보부아르의 주장은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떠올리는 대표적 이미지, 즉 남성 중심 사회가 선사하는 억압에 전투적으로 저항하며 남성들이 가진 기득권을 쟁취하는 데 목표를 둔 페미니즘을 대변한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Le Deuxième Sexe)>이라는 대표 저서를 통해, 남성 중심의 세계가 여성을 남성에 비해 열등하고, 남성에 귀속되어 있는 제2의 성으로 규정하는 데 반기를 들 것을 천명했다. 이런 성관념은 문화적인 것이지, 여성의 실존적 본질에 속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부아르가 제시한 근거였다.

이에 그녀는 여성이 더 이상 제2의 성이 아니라, 남성과 마찬가지의 힘과 권리를 누리는 제1의 성으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했다. 이 <제2의 성>은 1949년 프랑스에서, 1953년 미국에서 영문 번역본으로 각각 출판되면서 전 세계 여성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선사했고, 이후 현대 서구 페미니즘의 경전과 같은 저서로 여겨져 왔다.

▲페미니즘의 경전인 &lt;제2의 성&gt;의 저자,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니즘의 경전인 <제2의 성>의 저자,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이리가레이는 이런 보부아르의 페미니즘이 가진 내적 모순과 맹점을 간파하고 폭로하는 가운데, 페미니즘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하려 했다. 이리가레이가 보기에, 보부아르의 페미니즘은 남성들이 자행해 온 성차별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힘의 탈취에 의한 남녀 평등 실현이라는 테제 설정은, 그간 관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억압되어 온 여성들의 한풀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남녀를 불문한 인류 본연의 인간됨에 대해서는 깊게 성찰하지 못한 처사로 보였다.

무엇보다도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거기에는 자기와는 다른 이 즉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보다는, 이권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경쟁원리가 부각되고 있었다. 결국 여성을 억압해온 남성의 자리에 여성이 들어가 같은 방식으로 권력과 이권을 누리겠다는 사고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리가레이는 제2의 성이라는, 피해의식 어린 이념을 해체하려 성의 차이를 강조하고, 이 차이로부터 현상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를 촉구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리가레이가 말한 성의 차이는 단순히 남녀의 신체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나 사회적 역할 구분의 차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전통적 성의 차이에 대한 관념은 보부아르에게도 그랬지만, 이리가레이에게도 온전한 인간 이해를 위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리가레이가 본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는 존재론적 차이였다. 성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 경험 및 세계 이해 방식, 자기 의식이 현상하는 방식, 기분의 현상 방식,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 그리고 궁극적으로 초월 경험의 방식에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유발한다.

그래서 남녀의 평등이란, 단순히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경제적 권력만을 쟁취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두 성별 간의 친밀한 실존적 연합과 관계, 그리고 상호주체적 이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이리가레이의 성찰이었다.

▲페미니즘이 목표로 설정한 남녀평등이란 무엇인가? 이 평등의 성격규정을 위해 이리가레이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수긍했다.

▲페미니즘이 목표로 설정한 남녀평등이란 무엇인가? 이 평등의 성격규정을 위해 이리가레이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수긍했다.

이리가레이의 페미니즘은 서로에게 타자인 남성과 여성을 인간됨의 조건들 안에서 조화롭게 이해하고 돌아볼 것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페미니즘의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이처럼 아름다운 페미니즘 축에 속할까? 아니면 보부아르 페미니즘의 정서를 따르는 혹은 그보다도 더 저급하게 남성-여성 간 배려 없는 경쟁과 이기적인 힘의 투쟁을 조장하기 바쁜 천민자본주의화된 페미니즘인가?

만일 국내의 페미니스트들이 최근 논란이 된 은하선 같은 인물을 한국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여긴다면, 정말이지 천박한 페미니즘이 한국 여성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의 뿌리: 남종과 여종(욜 2:29), 기독교의 남녀평등 정신

은하선이라는 인물이 설파하는 페미니즘은 뭇 남성들이 지배적으로 누려 온 성도덕의 타락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이 부도덕함에 대한 자기정당화 권리를 여성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성적 부도덕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고 즐길거리로 삼는 것처럼 여성 역시 그런 권리를 가져야 하며, 사회는 이에 대해 어떠한 편견과 도덕적 판단도 내려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인물이 미디어에서는 마치 한국 페미니즘의 얼굴인 양 소개되고, 이도 모자라 국내 일부 주요대학에서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국 페미니즘의 수준이 진정 그것밖에 안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횡행하고 있는 것인가?

은하선의 부적절한, 때로는 자가당착적이기까지 한 말과 행동들은 과연 페미니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없지는 않다. 남녀의 진정한 평등과 여성의 자유는 하나의 조건이자 수단이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어떤 다른 결실 및 가치를 추구하고 달성하는 도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진정한 가치는,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질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때 향유하게 될 결실 혹은 가치가 무엇이냐를 제시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 결실과 가치가 단지 여성 개개인의 부적절한 욕망들을 마음껏 향유하고 그간 억압당한 것에 대한 피해의식의 발로를 정당화하는 데 있다면, 페미니즘은 여성들 자신의 품격을 격하시키는 사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여성들이 획득한 기회의 평등과 부당함으로부터의 자유가 순전히 이기적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경우, 페미니즘은 그간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루지 못했던 위대한 업적들을 남길 수 있는 사상으로 격상된다.

기독교 내부에도 페미니즘은 존재한다. 오늘날 생태여성신학(eco-feminist theology)이라는, 학문적으로 전문화된 페미니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 기독교계 일각에서도 남녀 평등을 위한 여성의 권리 신장이 복음사역의 한 중요한 방편으로 인정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피니(Charles Finney)의 여성우대 정책이다.

▲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동시에 기독교 페미니즘을 실천했던 찰스 피니. 그가 교수로 일했던 오벌린 대학 교내에는 피니를 기리는 채플이 건립되어 있다.

▲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을 주도한 동시에 기독교 페미니즘을 실천했던 찰스 피니. 그가 교수로 일했던 오벌린 대학 교내에는 피니를 기리는 채플이 건립되어 있다.

변호사로 일하다가 복음 전파에 소명을 얻어 부흥사로 헌신한 피니는 1835년 오하이오주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 신학교수로 초빙됐다. 대학교수 봉직 당시 피니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들에게 고등 신학교육 기회를 부여했다. 남성과 여성이 차별없이 동등하게 대학교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이는 당시 일부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여성들에게 출산과 자녀양육, 가사와 남편공양 등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만을 강요하고 노예제 유지를 옹호할 때 시행된 일이다.

피니의 남녀평등 사상은 기독교적 페미니즘의 정신을 대변한다. 피니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져야 하고,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원과 재화를 획득하고 다스릴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며, 가사와 육아 외에도 자유롭게 외부 활동에 힘쓸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런 평등은 여성들이 남성 사역자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거기에 깊게 감화되지 못한 이들을 돌아보고 가르쳐,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확장을 위해 힘쓸 수 있게 하려는 데 주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른바 "남종과 여종(욜 2:29)"의 예언 성취를 위한 사회변혁, 그리고 이를 위한 남녀평등, 이것이 기독교 내부에 자리잡고 있던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이었다. 여성들 자신의 사적 욕망과 안락함이 아니라, 주를 위해 평등해야 한다는 것, 즉 남성도 주를 위해 헌신하고, 여성도 주를 위해 헌신할 기회의 평등이 피니가 모범으로 제시한 기독교 내부의 페미니즘이었다.

한국 페미니즘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보부아르 식의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전에 피니와 같은 기독교적 남녀 평등 및 페미니즘 정신이 발견된다. 한국에 남녀 평등이라는 가치를 최초로 전래한 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1885년 4월 입국)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한 구한말-일제강점기 시대의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

언더우드는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한국에 미리 들어와 고종의 신임을 얻은 알렌의 광혜원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다 한 해 뒤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연세대의 기원이 된 경신학교였다.

경신학교 개설 당시 한양 도성에는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 어린이들을 납치해 삶아 먹는다는 악의적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에 언더우드는 불가피하게 고아들을 위주로 학생을 모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때 고아가 된 여성 어린이들도 학생으로 받아들여 교육을 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여성들만을 위한 교육기관도 생겨났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보다 두 달 늦게(1885년 6월) 조선에 입국한 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은 입국한 지 1년만에 여학생 한 명을 데리고 여학교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이었다.

이화학당은 학생을 모집하는 데 있어 경신학교보다도 더 큰 난관을 겪었는데, 이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시행하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조선인들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이에 초기 이화학당은 경신학교와 마찬가지로 고아 그리고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기생들을 모아서 힘겹게 교육 및 선교사역을 수행했다.

▲초창기 경신학교(왼쪽)와 이화학당 학생들. 경신학교와 이화학당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했다.

▲초창기 경신학교(왼쪽)와 이화학당 학생들. 경신학교와 이화학당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했다.

경신학교와 이화학당이 당시 조선의 여러 관습적 편견과 구설수에도 여성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한 의도는, 당연히 피니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남종과 여종을 양육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남녀평등 및 페미니즘의 시초였다고 볼 수 있다. 이화여대가 한국 페미니즘 및 여성운동의 산실이 된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은하선의 연세대 강연이 여러 연세대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화여대와 함께 한국 최초로 기독교 정신을 갖춘 여성 지식인의 양육을 개시한 곳에서 천민자본주의화된 '자칭' 페미니스트를 강연자로 선정한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 볼 수 있을까?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보면, 은하선이라는 인물을 강연자로 부른 사실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학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앞서서 실천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여러 방면의 인물들을 강연자로 초청하는 것이 문제시될 수는 없다.

다만 연세대 총여학생회에서 어떤 명목으로 은하선이라는 인물을 초청했는가가 문제시될 수 있다.
 
▲반대 시위를 하는 한 학생이 &ldquo;예수님을 모독하면서 국내 최초의 기독교 대학에?&rdquo;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김진영 기자

▲반대 시위를 하는 한 학생이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국내 최초의 기독교 대학에?”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김진영 기자

만일 은하선의 강연을 가볍게 듣고 가볍게 넘기는 이벤트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었다. 애초 은하선이라는 인물 자체가 무슨 심오한 페미니즘 이념을 가진 게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빌려 출판 및 방송활동 기회를 얻은 엔터테이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은하선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을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한 기회로 삼는, 페미니즘의 사적 이용가치만을 따지는 인물일 뿐이다. 그녀의 행태는 여성성 및 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온 페미니스트들의 진정성을 위협한다.

은하선이라는 인물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이란, 실상 페미니즘의 부정적 면모 및 부작용을 총망라한 페미니즘의 '적폐'라 할 수 있다. 적폐는 포용이 아닌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연세대 총여학생회에서 은하선을 한국의 모범적 페미니스트로 인식해 초청했다면? 강연 기획자의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역사의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은 한국 남녀 평등의 길을 연 초기 한국기독교 선교사들과 사역자들의 헌신과 업적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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