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사법 개혁은 개혁(改革)인가 개악(改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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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 할지라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는 법 가치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어록 중 하나로 소개되어 과거엔 초, 중, 고 교과서에도 실려 전해 내려오던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순간인가부터 교과서에서 다 삭제되었다. 삭제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고려대 철학과 교수 한 분과 서강대 정치학 교수 한 분이 과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정말 했는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0년대 초부터는 관련 학회에 공동 발제도 내시다가 한 분이 별세한 뒤, 다른 한 분에 의해 아예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이 나오면서 그 연구는 정점을 맞는다.

이러한 계몽에 힘입어 2004년에는 헌법재판소를 통하여 결국 초, 중, 고교 교과서에서 모두 이 말이 삭제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교과서에서 이 대목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개정 청구의 진정한 취지는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 관계를 넘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법 집행을 하면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를 악용한 일면이 있으니 그것을 바로 잡는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우리는 최상의, 최적의 민주주의 사회를 출현시켰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 소크라테스의 신화가 깨진 뒤, 공교롭게도 연이은 신화들이 다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십일조 영웅 록펠러의 또 다른 실체는 사실 악덕 고용주였다"라든지,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든 미국 대통령 "링컨의 남북전쟁은 사실은 노예해방이 아닌 노동시장 탈환이었다"든지, 그야말로 우리 저변의 모든 신화는 다 파괴되어 버린 듯한 실정이다.

문제는 신화에 대한 믿음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는 법 체계까지도 잘 믿지 않는 정서가 누룩처럼 급속도로 퍼지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올해 초 우리 사회에 들어선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신설은 사법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처인가, 아니면 더 극대화시키기 위한 조처인가.

그런가 하면 최근 '사법부 블랙리스트' 색출을 위한 법원 내부 감사 소식이 법원 담벼락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법에 관한 의심을 더하여 주는 조처인가, 불식시키는 조처인가.

소크라테스의 신화를 깨면서 "악법만 법이 아니다"라고 했어야 할텐데, 혹시 본의 아니게 "그 모든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강한 믿음을 심어주었던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운 나날이 아닐 수 없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 격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이다(Dura lex, sed lex)"는 경구에서 온 말이다.

2세기 로마의 법철학자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Domitius Ulpianus)는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이는 진정 참으로 [지키기] 어렵지만, 기록된 법인 이상 수용해야 하는 법이다)"라고 한 바 있다.

이에 기초해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자신의 책 <법철학(1930)>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며,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언명으로 와전되었다는 전언이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면서 "법은 골라 가면서 지켜라!"고 말하지 않은 이상, 그의 죽음은 "악법도 법"라는 프락시스 텍스트에 배치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유명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역사적으로 이미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순교에 비견한 바 있다. 왜 그런가? 법을 지키려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정명제 하나가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법정 정원 또는 회랑마다 새겨져 있는 칸트의 "Fiat Justitia Ruat Caelum(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정언 명제와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하는 정의는 사람이 아닌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기록된 판결 텍스트 말이다.

사법개혁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이 텍스트의 권위가 무너져 내릴까 소시민들은 심히 염려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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