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독립과 시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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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6)

* 본지는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의 논문 <'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IV. 이스라엘 독립과 시온주의

땅(공간) 관점의 성서신학은 19세기 말 시온주의라는 새로운 형태로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결실은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나타났다. 시온주의의 사상적 뿌리는 그 용어 자체이기도 한 시온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시온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다윗이 여부스로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였다. 당시 시온은 여부스 사람들이 요새로 사용하였던 예루살렘 남동쪽에 위치한 한 언덕이었다. 시온의 어원적 의미도 '요새' 혹은 '바위'를 뜻한다. 다윗이 점령하였던 예루살렘은 시온요새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였다. 다윗에 의해 '다윗성'이라고 명명된 그곳은 '시온'과 동일시되기도 하였다(대하 5:2).  

예루살렘 내의 한 지역에 불과하였던 시온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새로운 의미로 바뀌었다. 시온은 더 이상 예루살렘 내의 한 지역이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발전한 것이다. 이는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일종의 제유법적 표현이기도 했다. 같은 지역을 지칭하는 시온과 예루살렘이 각기 다른 뉘앙스를 지닌 지명으로 나뉜 것이다. 곧 시온은 성전이 위치한 특정장소를 지칭한 반면 그 이외의 다른 지역은 예루살렘으로 통칭된 것이다. 예루살렘이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는 지명이라면, 시온은 신앙적 측면이 강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온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솔로몬성전이 파괴되고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비운의 역사를 통해서였다. 바벨론에 끌려와 지냈던 유다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귀환의 날을 기다리며 시편을 지어 불렀다. 그런 시편들은 그들이 돌아가게 될 고국을 시온으로 지칭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편은 137편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앞으로 귀환하게 될 고국을 시온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포로들은 세속적 관심보다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에 더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온이 돌아갈 고국이라는 구체적인 지역성을 의미하면서 또한 신앙적으로는 놓치지 말아야 할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실체와 이상 사이를 넘나드는 시온의 이중성은 후대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디아스포라 생활 속에서 그들을 지켜준 근거가 되었다. 실체로서의 고국 이스라엘은 현실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었지만, 이상향으로서의 시온은 언제나 그들의 마음속에 변함없는 중심지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것이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 이후 2000여 년 동안 유대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었고, 결국에는 독립을 안겨준 정치적 시온주의를 태동시킨 원동력이었다.

A. 시온으로의 귀환(쉬바트 치온; Return to Zion)

시온으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쉬바트 치온'은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생활 속에서 조국에 대한 희망을 견지시켜준 중요한 신앙개념이다. 이 용어는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생겨났다. 그러나 시온으로의 귀환은 주전 538년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실제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이다. 성경은 네 명의 지도자들인 세스바살, 수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의 주도아래 고국으로의 귀환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다. 에스라서는 당시 대략 50,000명의 유대인들이 귀환에 참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약 11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시온으로의 귀환을 가리켜 '쉬바트 치온'이라고 부른다. 여러 차례의 귀환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들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앙적 부담감을 안고 살았기 때문에 '쉬바트 치온'은 시온우선성이라는 중요한 신앙개념을 모든 유대인들에게 심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하여도 여전히 고국인 시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염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쉬바트 치온'라는 신조어로 생기면서 시온으로의 귀환이 부각된 것은 당시의 역사적 정황이 이전에 경험했던 바벨론포로의 재연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바벨론포로 때처럼 언젠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미래희망을 그 용어 속에서 표현하였다. 그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1800여년이 지난 19세기말 시온주의의 알리야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시온주의로 인해 본격화된 알리야 운동이 있기 전에도 시대마다 크고 작은 알리야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쉬바트 치온'의 영향력이 컸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록 고국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져 지내는 처지였지만, 그들에게는 시온지향성이라는 형태로 'peopled land'가 언제나 자리하고 있었다.

B. 시온지향성의 유대인 관습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시온과 동떨어져 존재한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시온 지향적이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시온은 어느 것보다 우선순위를 지닌 마음의 지향점이기도 하였다. 유대민족이 이스라엘 땅과 불가분적 관계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근거한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의 선물로서의 '에레츠'이며 '나할라'이다. 그런 땅에 대한 신앙이 메시아 도래에 대한 기대와 결부되면서 그들의 삶 속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성전파괴와 그 결과로 인한 거듭된 추방은 유대인들에게 더 없이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온으로의 귀환을 꿈꾸며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시온으로의 귀환 기대는 긴 고난의 역사 속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중단 없이 이어졌다.

그런 점은 유대인들의 신앙관습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은 항상 예루살렘 쪽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하루에 세 번씩 드리는 기본 기도문인 '아미다'의 18개 기도항목 중에는 시온으로의 귀환을 간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매년 지키는 유월절과 대속죄일의 마지막 기도는 "내년에는 이 기도를 예루살렘에서 하게 하소서!"(Next year in Jerusalem)이었다.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드리는 감사기도에서도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는 분'으로 지칭된다. 이런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은 모두가 시온으로의 귀환을 열망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를 기억하기 위하여 지키는 유대인들의 생활관습 역시 유대인들의 시온지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옛날 성전이 서 있었던 성전 산을 접근하면서 옷을 찢는 일, 집에 회반죽 칠을 하면서 한 부분은 미완성인 채로 남겨 놓은 일, 가장 즐거운 결혼식 마지막 순서로 포도주 잔을 땅에 떨어뜨려 깨는 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관습들은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 137:6)라는 시편 구절을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화시킨 예들이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의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면서 시온과의 연대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항상 그곳으로의 귀환을 열망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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