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그린 동서양의 화가, 렘브란트와 운보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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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토착화와 기독교 문화

▲김기창의 ‘탕자, 돌아오다’.

▲김기창의 ‘탕자, 돌아오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에 관한 이야기는 구속사의 중요한 장면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아들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인간의 구원을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한다.

아들이 저 멀리 나타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반겨주었다. 자식의 나약함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그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매일 마중나왔던 것이다. 그들이 포옹했을 때, 아들은 후회의 말을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말렸다.

아들을 꼭 껴안은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좋은 옷을 마련하고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고 했다. 이렇게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준다.

이 명장면을 화폭에 담아 전한 화백이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와 한국의 김기창 화백이다.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의 대표적 화가이자 17세기 최고 화가로 손꼽히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유럽 회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는 장로교 신자였지만, 외가는 가톨릭 신자로 남아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을 함께 받고 자랐다.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은 1667년경, 죽기 2년 전 완성한 그림이다. 그의 마지막 대작으로 1766년 러시아로 팔려 오늘날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슈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의 작품은 두터운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것들로, 특히 종교화에 있어 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수는 유화·수채화·동판화·데생 등을 포함해 2천여 점이나 된다.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는 무엇보다 두 사람의 '조용한 친밀감'을 보여준다. 아들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는데, 낡고 보잘 것 없는 신발, 굳은살이 박힌 발. 누더기 같은 옷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입고 있는 풍성한 옷은 마치 어머니의 뱃속처럼 아들을 보호해주면서, 두 사람간의 일대 일 관계를 감싸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관계는 당사자들끼리의 관계로. 제 삼자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옆에 서 있는 나이 많은 형은 마치 재판관 같은 자세로,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듯 뻣뻣하게 서 있다. 그는 포옹을 원하지도 않으며,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하인들까지 포함하는 일가족으로부터도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돌아온 탕자'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에 있다.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 있고, 그림의 다른 두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쏠려 있다. 그 안에서 자비와 화해. 용서와 치유가 함께 담겨 있다. 아들뿐 아니라 아버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거의 소경에 가까운 노인이 흐느끼면서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처받은 아들을 축복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가 렘브란트는 티투스라는 아들 하나를 제외하고는 자식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었으며, 티투스마저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그런 렘브란트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서양화로만 보던 성화를 한국화로 완성시킨 화백이 있다. 그는 또 다른 '돌아온 탕자'를 그린 운보 김기창 화백이다. 6·25 전쟁의 비극적 소용돌이 속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작가가 1년여에 걸쳐 제작한 판화작품 '예수의 생애' 시리즈 중 하나이다.

6·25 전란 당시 1·4 후퇴로 처가가 있는 군산으로 피난가 처가의 창고 하나를 방으로 개조 해 3년간 피난살이를 했다. 그때 군산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 곤궁한 시절, 운보는 '예수의 일생'이란 대업을 완성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예수와 당시 등장인물, 배경을 모두 한국인과 한국 복식, 배경으로 바꾸어 성경의 내용에 따라 29점을 그렸다.

운보는 서울로 올라와 1954년 4월 임시로 꾸민 종로 화신백화점 5층 화랑에서 성화전(聖畵展) 을 열어 이 작품들을 처음 선보였는데, 그 독특한 '한국화' 작업이 신선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연작의 배경은 조선 시대.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초가, 기와집이 세필의 한국화적 기법으로 표현돼 있다.

기독교의 토착화, 한국적인 정서,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서 그만의 운필과 구성 등에 있어 특별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운보의 '탕자 돌아오다'에서는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 외에 뒤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들을 맞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예수의 일대기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과 비슷하다고 인식한 작가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2천년전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국내로 설정해 한국화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8세 때 장티푸스를 앓으면서 청각장애를 일으켜 정상적으로 학교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한글과 일어, 한문 등을 익혔고, 그림에 대한 재능이 일찍 발견되었다.

운보의 어머니는 감리교 신자로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개성 정화여학교 교사를 지낸 바 있는 신여성이었다. 김은호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화가 수업을 한 것도 어머니의 배려 덕택이었다.

결국 이 그림들은 그의 어머니와 스승, 그리고 당시 한국이 처한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인지 1952년 1년여에 걸쳐 그려진 이 그림 이후로 운보의 작품세계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의 문화권에서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때, 그 토착화는 불가피하게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경우 그 문화권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선교 방법으로서 토착화를 다양하게 시도한 적도 많고, 특히 남미에서는 유럽과는 많이 차이나는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토착화된 기독교 예술의 모습 중에서 기존의 문화 속에 기독교가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아니면 그 지역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반영되어 스며들었는지를 주목하여 비교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럴 때 기독교 문화는 점차 확산되고 발전될 것이다.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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