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선교칼럼] 사역 현장 이야기: 러시아에서, 이렇게 예배한다
야로슬라블이라는 도시는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250km 지점에 있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관문도시이다.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여 협력한지 벌써 25년이 되었다. 수많은 기도와 협력과 교육 과정을 지나고 10년의 세월을 건축에 매진한 결과, 현재는 아주 멋진 사역의 장이 되어 활발한 사역들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야로슬라블 은혜교회 25주년 감사예배 현장, 새벽 5시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그곳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6시간을 달린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주말 농장을 가기에 새벽에 나왔음에도 정체가 심했다.
집회는 10시에 시작하여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교회에서 손님들이 초청되었다. 이곳에서는 초청받은 목사들 모두가 설교하고 축하하면서 지난 역사를 회고한다.
오전 집회가 끝나고 간단하게 모두가 식사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모여 오후 집회를 시작한다. 계속되는 설교와 기도와 찬양과 설교 속에, 나는 너무 힘이 든다. 몸이 뒤틀린다. 6시간을 운전하고 왔는데 조금의 휴식도 없이 벌써 몇시간째 앉아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첫째, 러시아 사람들은 인내심이 매우 강하다. 매우 비대한 몸으로 앉아서 견디는 모습이 대단하다. 어린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앉아서 놀라울 정도로 잘 견디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둘째, 매우 똑똑하다는 생각(?). 이 많은 설교를 한꺼번에 듣고 기억하여 무엇을 삶 속에서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그저 앉아서 듣고 즐기고 웃고, 이것에 만족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집회가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오후 7시에 마쳤기 때문이다. 장장 9시간에 걸친 집회, 지난 번에도 이런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때는 8시간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셋째, 러시아 목회자들이 설교를 매우 잘 한다는 것이다. 수준도 높아졌고, 내용이 너무 좋다. 말씀에 근거해 다른 길로 나가지 않고 매우 잘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수준이다. 이전에는 간증 위주로 할렐루야를 외쳐대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의 인내의 부족인가? 그건 아니다. 한국의 예배 형태는 1시간을 기준으로 대형교회일수록 틀에 짜인 기계처럼 돌아간다. 대부분 1시간을 기준으로 진행되는데, 그리고 빨리빨리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문제는 바로 문화이다.
문화의 이해는 나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장시간 앉아서 듣고 배우는 일을 매우 즐겨한다.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우 진지하게 동참한다. 모두가 노트에 기록하면서 경청한다. 한 사람도 움직이는 법이 없다. 신기할 정도인 것이다.
주일예배도 기본이 두 시간이다. 그리고 보통 세 시간이다. 주일예배가 행사가 아니고 삶인 것이다. 말씀을 듣고, 일상을 나누고, 누구든지 나와 찬양하고, 시를 써 와서 낭독한다. 성도들의 삶 속에 드러난 문제들을 내어놓고 함께 기도한다.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대부분 이러한 형태로 예배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예배가 진행되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 본다. 아무리 좋은 설교와 찬양과 순서라 해도 대부분 나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거친 항의가 들어왔을 것이라고 본다. 인내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인내를 둔하게 여기는 태도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 250km. 보통은 5시간, 주일 오후가 되니 8시간 걸려서 집에 도착한다. 허허, 2일간의 일정이 꿈 같은 시간이었다. 다른 별세계에 갔다 온 느낌이다. 인내의 끝이 어디인가를 시험하는 시간들이었다.
러시아 교회는 이렇게 예배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대부분 이렇게 하루 종일 예배와 찬양과 간증과 지난 시간을 회고하면서 공동체가 나갈 방향을 모색한다.
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다는 것이 이렇게 쉽지 않다. 불편함을 참고 견디고, 장시간 무의미할 정도의 시간을 길바닥에 깔고, 입술이 아래위로 터지는 경험도 때로는 해야 하는 것이다.
편리함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 아직도 현장은 아날로그 시대이다. 어쩌면 이런 예배가 러시아 문화에서는 살아있는 예배가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된다.
세르게이,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