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튼 바이 라이노’가 말하는 복음과 힙합(上)
'쇼미더머니', '고등래퍼'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다소 낯선 장르였던 '힙합'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가운데 기독교 신앙을 가사에 녹인 비와이가 음원 차트를 휩쓸고 우승까지 거머쥐며, 기독교계에서도 힙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를 선보이는 힙합 아티스트 리튼 바이 라이노, 이창수 전도사를 최근 홍대 레드빅 카페에서 만났다.
음악뿐 아니라 아트 디렉팅까지 담당하는 이창수 전도사는 싱글 ‘21c 전도사 존재선언문(sampled. 옥한흠 목사)’을 예로 들며 그의 사역을 설명해 나갔다. 앨범 재킷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가 그린 루터를 모티브로 한다. 루카스 크라나흐는 마틴 루터의 가까운 친구이자 실력과 인성을 갖췄으며, 생활이 어려워질 수 있음에도 당시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점들은 이창수 전도사가 교육받은 개혁주의 신학 배경과 성경관, 지향점을 나타낸다. 그렇게 재탄생 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그렇게 그는 입체적, 그리고 역설적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그의 융·복합적 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과 ‘픽션’이 어우러진 그의 곡에는 평양 대부흥 100주년 설교 때의 음성이 더해진다. 이창수 전도사는 ‘설교’에 대해 ‘종합예술’이라며 설교가 가진 의미와 가치에 감탄했다. 힙합은 그의 삶까지 이어진다. 그가 판매하는 상품 또한 개별 구매 건마다 높은 단가로 주문 제작을 하는 등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기계화, 사전 대량생산을 통해 낮은 단가를 추구하는 현시대와 대조된다.
먼저 힙합에 대해 소개하자면.
“간단히 얘기하면 힙합은 하이브리드 문화(Hybrid Culture)예요. 힙합은 음악일 뿐 아니라 문화, 운동입니다. 그 특징으로는 기존의 것을 재창조하고 재해석하는 문화가 있죠. 융·복합하고 한계 없이 나가는 거죠.
지나온 시대의 단면을 정의할 수 있을진 몰라도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힙합을 정의할 수 있는 문화 인류학자는 없어요. 힙합의 창시자도 불가능하죠. 지금 세대를 힙합 제너레이션이라 부르는데, 2018년대 힙합을 만나는 사람은 이점을 유의해야한다 생각해요.
“현재 힙합은 주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힙합이 주류다.” - 다큐멘터리 ‘힙합 에볼루션’ 중
이런 글이 있어요. 일단 힙합은 지금 시대의 ‘주류 문화’ 치고는 나이가 굉장히 어려요. 또한 아무도 예측 못 한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죠. 미국 전역에 끼친 영향을 넘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 문화사에 있어 유일무이한 일이죠. 이전 날에 ‘주류’라 불렸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력과 교육, 훈련받을 시간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 같은 경우는 관람자가 알맞은 정장 차림으로 입장해야 하는 전통이 있어요. 이런 복장 규정은 힙합 이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디스코 문화에서도 비슷하게 있었습니다.
반면 힙합은 초등학교도 가기 힘든 빈민가 아이들이 만들었고, 힙합의 춤, 그라피티, 랩 등은 교육받지 못한 이들 가운데 가장 힘없는 사람이 만든 거예요. 그런 문화였기에 무형식의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다르고, 약간의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마음먹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힙합을 진지하게 보려는 사람은 정말 단면을 보면 안 되고 진정성을 봐야 해요. 노래 하나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힙합을 사랑하고 힙합을 통해 삶이 변화된 이들에게 굉장한 모욕이고 실례일 수 있어요.”
- 소셜미디어를 통해 힙합 안의 ‘존중’ 문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힙합 안에서 드러나는 복음적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힙합의 탄생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케이알에스 원(KRS-ONE)은 힙합의 태동기에 나타난 대표적 MC인데, ‘더 가스펠 오브 힙합(The Gospel of Hip Hop)’이란 책을 썼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의 뜻을 온전히 취했다기보다는, 거대한 비유를 한 거예요. 힙합의 태동과 정신을 너무 잘 말해주는 중요한 책이죠. 인류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때 그 장소에서 힙합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당시 미국 사회에는 LA 폭동 이상의 끔직한 재앙이 있었을지 몰라요.
힙합의 혜성 같은 등장과 확산을 보면 감동적일 만큼 복음적이에요. 지금 한국의 ‘쇼미더머니’ 등을 보면 힙합이 포스트모더니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정신에 노예가 된 것 같지만, 기원을 찾아가면 힙합은 초반에 폭력과 마약을 반대했고, 백인의 권력에 반대하는 반(反)문화였어요. 다음세대를 보호하고 계몽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했죠. 특히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정부와 학교가 포기한 흑인 빈민가 공동체 안에서 어찌 보면 구원 같은 거였죠. 또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교회에요. 공동체의 메시지를 쥔 사람이 목사와 래퍼였죠. 흑인 힙합 운동의 정신과 토대에 분명 교회의 역할이 있어요.”
- 세속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에 도전장을 내미는 만큼, 크리스천 힙합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변질의 위험 없이 갈 수 있는지.
“변질의 위험이란 어디서든 항상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거로 생각해요. 결과와 성과만 보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세속주의, 성과 우선주의, 숫자놀음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봐요. 성경은 우리에게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십자가는 과정에서 열매를 보여주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겐 십자가가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저희에겐 승리잖아요.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으로 열매가 맺힐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안전한 곳을 떠나 위험이 있는 곳으로도 향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준비와 교육, 믿을 수 있는 동역자와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열정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도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지금 시대의 힙합만 볼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 힙합 아티스트든, 힙합을 하는 크리스천이든 예수님을 믿고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힙합의 기원과 역사, 뿌리, 정신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일반 힙합은 단어와 내용보다 리듬과 라임 등 형식적 면이 중요한데, 이 점에서 CCM과 힙합의 괴리감은 어떻게 하는지.
“괴리감이 없을 수가 없어요. 있는 게 정상이에요. 오히려 괴리감이 없으면 위험해요. 그건 복음에 깊이 젖어 성경적 가치관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라는 종교에 함몰된 종교인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성육신(成肉身)적 모델을 감당해야 한다고 봐요. 하나님이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죠. 예수님께서 100% 하나님, 100% 인간이셨듯, 크리스천 힙합 역시 100% CCM이고 100% 힙합이어야 한다고 봐요. 흑백논리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갈등 없는 편한 길로 가지 않고 양쪽 모두 온전히 100%에 가까울 균형을 고민하는 가운데, 비록 완전하진 않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을 거예요. 어떻게든 결과와 성과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열매를 맺는 것이 복음적 성취라고 생각해요. 복음의 확장성 측면에서 봐도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고 봐요.”
-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리스천 힙합은 단계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할지.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단계 중 한국교회의 이전 세대는 구속과 회복 측면에 대한 이해나 실천이 약했었고, 약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고 봐요. 한국교회가 확장된 교세에 비해 사회적, 문화·예술적 영향력은 쪼그라들었어요.
교회가 직장과 같은 세상 속에서의 일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가르치면,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 어떤 분야에서는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게 돼요. 복음이 들어가야 할 사회 각 분야, 선교지에서 크리스천이 없어지는, 그 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죠.
그렇다고 이전 세대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록이나 힙합을 사탄의 문화라고 하던 것도 우리 한국 기독교 문화 예술계 선배님들의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기에 문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고민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그런 신앙의 선배님들과 단절되는 게 아니라 대화하고 싶어요. 선배님들의 바른 신앙에 대한 열심과 이제 다음 세대가 가진 다양한 장점들을 취합해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게 한국교회 다음 세대 기독 문화인들의 숙제라고 봐요.
그리고 이제 신앙적 선배들의 유산을 계승하고 다음 세대 회복의 점진성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관계적, 문화적 측면을 간과하고 당장 회복을 이루려 한, 우리 열심이 초래한 급히 온 면이 있어요. 선한 의도였지만 결과에 대한 급한 열심이 과정의 중요성을 생략시켰습니다. 종말론적인 시대 해석과 천국 소망이 너무 귀한 성경의 교훈이지만, 단순하고 급격한 개종, 숫자의 증가라는 목표와 방향이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같이 살고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천천히 깊이 뿌리 내려가면서 급격히 부풀었던 거품이 빠진다고 생각해요. 결국 한국교회 자체적으로 점검하면서 진짜들이 남고, 알곡과 가라지가 선별되는 시기가 아닐까요?
크리스천 힙합도 다른 기독교 문화 예술 분야처럼 신앙적 성숙만큼 문화 안에서의 성장과 성숙을 균형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거 같아요. 또 영성뿐 아니라 지성의 훈련과 개발을 이끌 멘토와 리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좋은 선수들이 많은데, 이제 선수뿐 아니라 좋은 감독이 필요하다고 봐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