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할로윈, 무슨 짓을 해도(무엇으로 변장해도) 좋은 날
이영진 교수(호서대)가 SNS에 게재한 ‘할로윈 데이는 왜 10월 31일 오늘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31일에도 본지에 ‘할로윈인가, 핼러윈인가’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주
할로윈 데이는 왜 10월 31일 오늘인가?
알다시피 중세교회로부터 성인 추대(Beatificatio)란 제도가 있어왔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공경’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교회 역사상 공경(존경)할 만한 인물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제도이다. 일종의 풍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2세기 교회에서부터 이미 순교자를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특별한 인물을 영원한 공경의 대상으로 봉인한 것은 4세기경이다. 그러다 성인 추대의 권한을 교황으로만 축소한 것은 교황 우르반 7세 때이다(1634년).
성인은 아무나 세우는 게 아니다. 추천을 받더라도 여러 해의 검증과 인준 절차를 거친다. 역사를 바탕으로 순교한 사실이 확실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꼭 순교해야만 성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추대의 첫 단계를 복자(Blessed)라 부른다. 우리 지역에 ‘복자여고’란 학교가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은 이름이 촌스럽다 하지만, 가톨릭 종립학교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추대된 성인은 날을 정하여 기념해야 하는데, 2,000년 교회사 동안 성인의 수는 얼마나 될까. 어찌나 많은지(지금도 계속 추대되고 있다), 한 명당 하루씩 1년 365일을 다 돌아도 날 수가 모자랄 지경이다. 중세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그래서 날을 배당 받지 못해 남아도는 성인을 한 날에 모아 기념하기로 택일한 날, 그 날이 바로 매년 10월 31일이었다. 이 날을 일컬어 만성절(Sollemnitas Omnium Sanctorum)이라 부른다.
그런데,
10월 31일은 전통적으로 유럽의 유서 깊은 민속 축제일이기도 하다. 샴하인(Samhain)이라 불리는 이 축제는 로마가 정복한 켈트족에게서 유래한 명절이다. 켈트족에게 새해 첫날은 11월 1일이었으므로, 10월 31일은 송구영신의 날이었던 셈이다.
이 샴하인 축제(Samhain Festival)는 송구영신, 즉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다는 의미로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고 악령은 보내버린다는 의미로 새겨졌는데, 이 날 사람들은 자기를 악령 중의 하나로 보이게 변장함으로써, 옛 것인 유령들로 하여금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놀이로 즐겼다. 바로 이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잘 모이는 이 날을 교회에서 택한 실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융합된 민속 축제일을 기독교 만성절로 제정한 것은 7세기 초 교황 보니파체 4세로 알려져 있다. 이리하여 중세의 만성절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독교 축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교회적으로 볼 때, 이 축일엔 왜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는 것이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축일에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선행(Good Works)이다. 그 선행이란게 뭐냐. ‘성물’을 팔아 주는 일이었다.
따라서 교회 내지 성주는 수지를 보던 날이기도 했던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에 따르면, 동방박사의 해골이나 세례 요한의 해골도 전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갖다 박은 날이 바로 이 날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적으로는 종교개혁 기념일이기도 하지만, 세속적으로는 ‘할로윈 데이’로 기념되어 왔다.
현대 서양인이 ‘할로윈 데이’를 빼놓지 않고 기념하는 것을 보고서 우리나라 개신교인은 마귀 사탄이라 하지만, 사실 평범한 서구인은 (기독교인일지라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추석과 추수감사절(수장절)이 그냥 묻혀 들어가듯, 민속의 송구영신과 기독교 송구영신이 그냥 묻혀 들어가듯, 그냥 거룩한 날로 보는 것이다.
중세교회도 그런 실리적 취지에서 융합시켰을 것으로, ‘그리스-로마’라는 헬레니즘 문화 자체가 그런 경계에 약하다.
다음을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Halloween’을 발음할 때 ‘핼로윈’이라 하지 않고 ‘할로윈’이라 발음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그런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할로윈은 사실 ‘Holloween’이다. ‘Holiday’를 보통 할러데이라 하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불리게 되었을 수도 있으나, 통상 ‘Hallow’의 파닉스는 ‘Apple’처럼 ‘핼로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할로윈’이라 하는 바람에
‘Hollow’ 즉, 속이 비어 있다는 ‘랑그(Langue·사회적 언어 체계)’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빠롤(Parole·개인의 구체적 발화 행위)’과 ‘랑그’의 기호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ㅡ
참고로 우리 문화에 ‘윤달’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윤’, ’달’이라 하였을 때, 이 ‘윤’(閏)이라는 말이 속이 비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날은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것이다. 집을 이사해도 재수가 옴붙지 않고, 화장실을 고쳐도 재수가 옴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인의 기제에도 ‘Halloween(핼로윈)’은 그런 방식으로 ‘속이 텅 빈’, 그런 ‘랑그’로 굳어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무엇으로 변장해도) 좋은 날로 의미상 통용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는 그 기호에 대한 해석으로만 밝힐 수 있는 기제이다.
※ 복자, 곧 성인의 수가 얼마나 많은 지 보시려면 아래 링크
http://mimoonchurch.com/?p=4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