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가 18일 정년을 7개월 앞두고 조기 퇴임했다. 이재철 목사는 이날 퇴임식이나 이취임식, 감사예배 같은 일체의 행사를 열지 않았고, 1-4부 예배에서 4차례 설교 후 남은 짐을 정리해 아내와 함께 교회를 떠남으로써 13년 4개월 간의 100주년기념교회 사역을 마무리했다. ‘예우’도 없었으며, 이후 국민연금으로 생활할 예정이다.
한국교회는 1970-90년대 부흥기 동안, 주로 목회자들의 ‘카리스마’에 의존했다. 목회자들은 강력한 복음 선포와 함께 목회에 ‘올인’하는 헌신적 사역으로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었다. 그 시절 교회는 시스템보다 1인 리더십으로 움직였다. 그 폐해가 현재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그 시대에는 분명히 쓰임을 받았다.
그 시절 헌신적인 사역과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초대형교회들이 생겨났고, 지역사회를 넘어 나라 전체의 주목을 받는 교회도 생겨났다. 그러던 중 시간은 흘렀고, 대형교회를 일군 목회자들은 교회법에 따라 은퇴해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러 잡음과 부작용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은퇴 목회자와 후임 목회자 간의 갈등이었다. 은퇴 목회자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이므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거나, 후임 목회자가 ‘전임 목회자’의 흔적을 지나치게 지우려 할 경우 교회에는 상처가 생겼고, 심한 경우 성도들끼리 편을 갈라 분쟁했으며, 더 심한 경우 교회가 둘로 나눠지는 경우도 있었다.
비교적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목회 계승이 이뤄져 후임 목회자가 성실히 목회하다가도, 여러모로 전임자에 비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영성이나 설교 실력 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후임 목회자가 결국 그 큰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해 자진사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분쟁을 방지하면서 원활한 사역 계승을 이루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은퇴하는 목회자들이 자신의 아들이나 사위, 친척이나 가까운 관계의 지인에게 목회지를 물려주기도 했다. 감리교 같은 경우 징검다리 세습이나 교차 세습 같은 편법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도들이 원한다’는 이유를 댔지만, 사회 여론은 대부분 싸늘했다.
아직 한국교회에는 모범적인 사역 계승의 모델이 많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그 동안 장로 호칭제와 교회 재정 투명 공개, 정관과 상임위원회 같은 시스템에 의한 교회 운영 등 시기마다 한국교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던 100주년기념교회는 이번 교회의 초기 시스템을 정립한 이재철 목사의 퇴임에서도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했다.
특히 100주년기념교회가 이재철 목사 퇴임 후 시작하는 ‘공동 담임목사’ 제도는 ‘1인 리더십’에 익숙한 한국교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제도이다. 교회가 너무 대형화돼 한 사람의 역량으로 버티기 어려울 경우, 보통 ‘분립 개척’을 선택한다. 높은뜻OO교회가 계속 생겨나고 있는 김동호 목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100주년기념교회는 여성 목사를 포함한 4인이 영역별 공동 담임목회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는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관리를 위해 설립된 100주년기념교회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한조 목사는 영성 총괄, 김광욱 목사는 목회 총괄, 이영란 목사는 교회학교 총괄, 김영준 목사는 대외 총괄 등 각자 맡은 분야를 책임지면서 공동으로 담임목회를 시작한다. 이는 초유의 실험으로,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이재철 목사는 후임 공동 담임목사들의 새로운 시대가 조속히 개막될 수 있게끔, 당초 은퇴 예정일인 내년 6월 셋째주일보다 7개월 앞선 이날 퇴임하게 됐다.
이재철 목사는 18일 마지막 설교에서 인상적인 설교를 전하기도 했다. ‘거침없이(행 28:30-31)’라는 제목으로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육체의 소욕을 거침없이 버려야, 깊은 영성을 얻을 수 있다. 오늘을 거침없이 버려야, 새로운 내일을 얻을 수 있다”며 “하나님께서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얻기 원하신다면, 교우님들은 이제부터 이재철을 버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여러분은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한다”며 “이재철을 크게 버리면 크게 버릴수록, 후임 공동담임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더 크게 누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철 목사의 이러한 간곡하고도 비장한 당부에는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 일어난 전임-후임 목회자 간의 갈등 사례들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다.
특히 평생 생활하던 서울 합정동 양화진 일대를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경남 거창 웅상면 한 마을에 집을 짓고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이루며 살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그의 아름다운 퇴장이 한국교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전임과 후임 목회자 간 하나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