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유대인 삶의 중심,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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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안식일 이해>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2. 안식일: 유대인 삶의 중심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삶과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특별한 날이다. 유대인들은 이날을 중심으로 일주일의 생활주기가 시작되며 끝마쳐지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요일 명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는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요일의 이름들이 따로 없다. 다만 안식일을 기점으로 그  다음날인 일요일은 '제1일'(욤 리숀), 그 다음날인 월요일은 '제2일'(욤 쉐니)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안식일만큼은 '제7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안식을 의미하는 '샤밭'이라는 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안식일이 일주일 주기로 반복되는 삶의 중심이면서 다른 날과 구별되는 특별한 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하루를 계산하는 방법은 그 날의 해가 지는 시각에서 시작되어 그 다음날 해가 지는 것으로 마쳐진다. 그에 따라 안식일도 금요일 저녁 해가 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토요일 해가 지는 것으로 마쳐진다. 비록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지는 시각부터 시작이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식일을 여유 있게 준비하기 위하여 금요일에는 오전 중으로 일과를 일찍 마치고 귀가한다.  따라서 금요일 오후 거리는 한산하여 귀가가 늦어진 사람들만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던 금요일 오후를 안식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유대인의 예비일'(요 19:42)이라고 불렀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그런 점은 이스라엘의 주말인 금요일판 신문에는 각 지역의 정확한 안식일 관련 공고문이 게재되어있다. 이 안식일 공고문에는 금요일과 토요일의 해지는 시각 곧 안식일의 시작 시간과 마치는 시간이 분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록 면적이 적은 이스라엘이라도 지역마다 해지는 시각이 조금씩 다르다.

3. 안식일과 안식의 의미

안식일은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일을 중단하고 편히 쉬는 날이다. 이것은 6일 동안 창조사역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제7일인 안식일에 쉬셨다는 성경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제7일인 안식일에는 모든 일에서 안식하셨다는 창세기 2:3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쉬는 날로 삼았다. 안식일에 일을 쉬어야 한다는 규정은 출애굽 여정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어들이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다른 육일동안은 당일 먹을 만나를 준비하지만, 금요일에는 다음날인 안식일을 위한 양식까지 거두어 들여야만 했다. 즉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이 날에는 양식을 얻기 위하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두 가지 의식이 있었다. 하나는 낳은 지 팔 일만에 받게 되는 할례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한 안식일 준수이었다. 마카비1서에 의하면, 헬라군대와 전쟁을 하였던 유대 대항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준수하기 위하여 안식일에는 전쟁에 나가 싸우기보다 오히려 칼에 맞아죽는 쪽을 선택하기도 하였다(마카비 1서 2:31-38). 유대 랍비 중의 한 사람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철저히 안식일을 지킬 때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철저한 안식일 준수가 삶과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안식일 규정을 철저하게 실천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모든 삶의 영역과 관련하여 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회당을 가야만 하는데, 회당까지 걸어가는 것이 혹시 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안식일에 온 식구들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유대인 랍비들은 안식일 규정에 관하여 끝없는 논쟁을 하면서 이에 대한 사례 법들을 만들어 왔다. 그러한 논쟁 중의 하나가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벌린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쉽게 경험할 수가 있다. 이스라엘의 항공사인 ‘엘알항공사’는 안식일에 비행기 운행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텔아비브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이스라엘 공항에서는 안식일 동안 공항관계자들이 공항업무를 쉬기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 자체가 중단되고 있다. 따라서 항공사들도 이스라엘로 향하는 비행기 시간표를 모두 안식일 이전이나 안식일이 끝난 이후의 시간대로 조정해야 한다. 호텔에는 안식일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안식일이 시작되면서 이 승강기는 자동적으로 매 층마다 정지하도록 되어 있어서 사람의 탑승여부와 상관없이 매 층을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오르내린다. 승강기의 정지 버턴을 누르는 것 자체가 일로 취급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정통파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안식일이 시작되면서 도로의 입구마다 철제 바리케이크가 설치되는데, 이는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나 타지방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차를 몰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차를 몰고 들어갈 경우 그곳의 유대인들이 돌을 던져 차를 부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일정거리 떨어진 회당까지는 걸어갈 수 있지만, 안식일에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은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여기는 통곡의 벽을 안식일에 방문할 때도 두 가지를 할 수가 없다. 하나는 사진촬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필이나 펜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행하는 것은 모두가 안식일 규정에 어긋난다.

그러면 과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금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유대인 랍비의 해석에 의하면, 안식일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불을 켜는 것이다. 불을 켬으로 인하여 어두움이 밝은 상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에 불을 켜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기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것도 포함된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정통파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적당한 시간에 전등불이 자동적으로 껴지도록 장치를 해놓은 집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가 없는 집에서는 금요일 저녁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불을 켜놓고 다음날인 토요일 해질 때가지 소등을 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식사를 위하여 자동으로 점화되어 음식물을 데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특수 가스오븐이 상품화되어 팔리기도 한다.  

안식일 규정에도 예외적인 적용은 있다. 설령 안식일에 생명과 관련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하에 비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이웃에 살고 있는 이방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럴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도움의 내용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사는 동안 그런 일을 자주 경험하기도 했었다. 하나의 경우는 냉장고의 전기코드가 빠진 집에 가서 전기코드를 꼽아준 일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냉장고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면, 보관한 음식물이 모두 상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가족들 모두가 굶어야 하는 긴급한 사태가 발행할 수 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려는 유대인들의 노력은 안식일 규정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율법의 근본정신을 상실하는 율법주의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 때문에 생기는 어려가지 생활의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타협적인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수 천년동안 노력해온 유대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두려는 경건한 모습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는 배격해야 하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경건성에 관하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고 말씀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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