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없이,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만 힘 90%를 낭비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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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5) 아이의 능력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우리는 보통 환난이 닥치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때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면 대부분 환난에서 구해달라는 것이다. 환난은 우리에게 달갑지 않다. 우리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기도하고, 때로는 마치 원수처럼 보인다.

우리는 인생의 큰 비전을 세울 수도 있다.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환난을 만나게 되면 잠시 멈춰야 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장애물이고, 장애물을 만났다는 것은 혹시 이 길이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변 사람들부터 충고하기 시작한다. 욥에게 환난이 닥쳤을 때, 욥의 세 친구가 충고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환난이 닥치면 우리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올바른 길인지 잠시라도 멈추어 기도해야 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키에르케고어의 <고난의 복음>에서는 이런 생각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리스도인에게 펼쳐져 있는 길은 “환난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곧 이 길은 환난이다. 하지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기쁨이 있을까?

환난이 길인 경우, 결과적으로 고난당하는 자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그 과업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사숙고하느라 정력을 소모할 필요도 없고, 즉각적으로 할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환난 중에 기뻐할 수 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아이를 생각해 보라. 아이는 힘이 강한 남성과 비교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른보다 뛰어난 장점이 있다. 그것은 아이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과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그런 고민은 부모의 책임이다. 어느 날 엄마는 아이에게 말한다.

“얘야, 너무 시간이 늦었구나. 그만 들어가서 자렴.”

제대로 된 아이라면, 엄마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왜 자야 하는지, 지금이 정말로 잘 시간인지 이런 따위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 고민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는 엄마의 명령에 순종하여 잠을 청한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평안한 모습인가!

이에 비해 아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힘이 센 남성은 잠을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그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에게 지금 어떤 과업이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심지어 이런 시국에 지금 잠을 청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걱정한다. 그러다가 결국 잠을 깬다.

“내가 잠을 잘 수 없다면, 여기에 누워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그는 다시 일어난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일을 할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어른의 곤경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다시 아이로 돌아가 보자. 아이는 언제나 명령을 내리는 어른(주인)과 그 일을 실행해야 하는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부모가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면 모든 일은 평온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어른은 이중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정확히 곤경에 빠진 상태다.

어른들은 정말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한 무능력하지도 않다. 과업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른은 성년이다. 어른은 아이처럼 누가 명령을 내리고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일을 맡기고 명령하는 주인(부모)과 순종해야 하는 자(아이)가 분리되어 있는 반면, 어른은 스스로 주인이자 종이다. 명령을 내려야 하는 주인과 그 일을 순종해야 하는 자가 동일하다.

이것이 어른의 곤경이다. 갑자기 종의 일에 주인이 끼어들고, 주인의 일에 종이 끼어든다. 이런 일이 어른에게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 되기보다 불안정해지고, 우유부단해지고, 동요하게 된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는가? 무엇보다 환난이 닥칠 때이다. 환난이 닥칠 때, 그는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허물기도 하고 다시 세우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그는 미풍에도 흔들거리지만 한 지점에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앞으로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마침내 상황은 더욱 곤란해져, 그의 모든 정력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데 낭비되고 만다. 마치 식물이 결실기에 접어들어 초라해지는 것처럼, 그도 역시 분주하고 시시콜콜한 심사숙고로 열매 없는 소원의 결실기에 접어들어 초라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낭비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만 90%의 힘을 쓰고 10% 정도만 실행하는 데에 쓴다.

이에 반해, 아이는 실행하는 데만 100%의 힘을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얼마나 어른의 불행한 일인가! 한 사람이 주인과 종의 두 가지 일을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문제는 환난에서 벗어나려 하는 자들의 상태가 이렇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믿는 자에게 환난과 고난은 필연이다.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놓고 기도하지 말라. 환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 환난은 길이기 때문이다.

환난이 길이라고 믿으라! 환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 오히려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라. 그때 아이처럼 과업은 명확하다. 100%의 힘으로 앞으로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앉아서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다. 일을 멈출 필요도 없다.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일에 함께 할 것이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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