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환난 ‘제거’하러 오신 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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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6) 환난이 길이다!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여러분, 환난을 경험하십니까? 아직도 고난 중에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기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믿음으로 견딘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의 고난을 제거해주실 겁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런 설교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믿는 자들이 더욱 어려움과 고통 중에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설교에 반대한다. 이것은 오히려 거짓 위로로 포장된 거짓된 길로 안내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한 마디로 결론부터 짓고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곤경, 어려움, 환난과 같은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길이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좁은 길”을 소개하기 위해 오신 분이다. 좁은 길이 좁은 이유는 그 길이 곤경이요, 어려움과 환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키에르케고어의 <고난의 복음>에서는 “환난 자체가 길”이라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설교는 이 환난이 제거될 것처럼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난이 길인 경우, 환난을 제거하면 길이 사라진다. 환난이 길이니까. 진리의 길이 환난이라면, 어떻게 환난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환난을 제거하면 진리가 사라진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자.

나그네가 길을 걸을 때, “아, 이 길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연히 길을 걷기에 어렵게 만드는 무언가 발생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아마 조금 쉽게 동일한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 혹은 이 길은 다른 시간 때에는 쉬울 수 있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길인 경우는 이런 길이 아니다. “어려운 길”이 아니다. 형용사와 명사의 결합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길, 이것은 의심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어려움과 길을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에서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리의 길은 환난, 어려움 자체가 길이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는 기쁨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슨 일이든 마음먹고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일을 시작했다면 반 이상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에 대한 확고한 준비는 일의 반이라도 해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환난이 길인 경우, 해야 할 과업은 확고하게 고정된다.

일단 일을 시작했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의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환난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환난이 길일 때, 절망적인 의미에서 무언가 피할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환난이 길이므로 피하는 것을 바랄 수도 없다.

고난당하는 자는 이미 충분히 인내하는 중에 있다. 그는 한 순간이라도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곁눈질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는다.

그의 모든 힘과 능력을 다하여, 그는 환난을 당하고 있으며, 환난 중에 기뻐하고, 환난이 길이라는 생각으로 기뻐한다. 과업이 실제적으로 힘을 공급해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업은 물론 맡겨진 것이니까.

과업이 맡겨진 사람은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업이 힘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가 권위를 갖고 과업을 맡기는 방법을 알고 있을 때, 마부가 노련한 경험을 통해 과업을 맡기는 방법을 알고 있을 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움이 된다. 역시 마찬가지로 과업이 영원의 권위를 가지고 확고하게 준비되어야 할 때, 그것은 어른을 위한 것이다.

아이가 명령을 내리는 법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두고 있는 것이 불행하다면, 혹은 말이 이류의 마부를 두고 있다면, 아이와 말은 그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능력의 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 고난당하는 어른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시작할지 모르며 불안해하며 자신의 영혼을 굴복시킬 때, 실제로 아이보다 더 약하다. 그러나 그때 환난이 길이라는 것 역시 정말로 기쁨이다. 왜냐하면 그때 과업은 즉각적으로 가까이 있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언제나 힘들다. 따라서 나는 환난과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믿는 자는 “고난의 사절단”이다.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잠시 이 땅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믿는 자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은 환난을 제거할 수 없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환난이 제거될 것처럼 설교하는 것은 길을 제거하는 설교와 같다. 환난이 길이니까. 또한 환난을 제거해달라는 기도는 진리를 제거해달라는 기도와 같다.

오히려 환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진리 안에 있다는 증거다. 더 강한 정신을 갖자. 저 하늘까지 놓여 있는 진리의 길은 진실로 환난이다. 우리는 이에 좌절할 필요도 없다.

속담이 시작이 반이라고 말했다면, 환난이 길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인 자는 영원히 죽을 때까지 그의 과업은 확고하게 고정되고 흔들리는 법이 없고 죽을 때까지 완성한다! 그러니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전 우리에게 주신 충고를 잊지 말고 세상을 이기기를 축복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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