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3.1)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8)
*본지는 최재건 박사(하버드대학교 Ph. D. 연세대학교 교수 역임)의 논문 '삼일(3.1)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3.1독립선언서의 중요정신은 다음과 같이 구분 할 수 있다. 첫째로 민족의 독립, 자유정신이다. 자주독립 정신이다. 선언문은 "오등은 조선인이 자주민임과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한다. 공약 1장에서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에서도 보듯 민족의 독립과 자유였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즉 반외세의 가치인 민족의 자주 독립의 정신이었다.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누릴 권한의 선언이었다.
3.1운동은 독립 의지의 선언뿐 아니라 독립한 후 반봉건적 공화정인 국가 건설의 새로운 체제를 제시하였다. 왕정체제에서 벗어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란 방향의 제시였다. 인도주의, 정의, 자유에 기초한 민주국가로의 새나라 건설이었다. 정치적으로 반봉건적인 백성이 주인인 나라에로의 천명이었다. 백성이 주체가 되어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우선이고 특권층의 특권의식과 반민주적 제도에 대한 반기였다.
둘째로 민주정신이다. 민주운동이었고 민중운동이었다. 민주정신은 민중정신이기도하다. 3.1운동 때 온 백성이 궐기한 주동세력은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닌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인, 학생, 농민 중심이었다. 온 백성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전반에 걸쳐 민중이란 존재가 등장하였고 정착한 계기였다. 민중이 저항의 주체가 되어 황제와 지배층이 지키지 못한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의 강제 점령이 무효라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1904년에 한성감옥에서 저술되었고 미국에서 1910년에 출판된 이승만의 『독립정신』에도 공화국건설이 표방되었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의 건설이었다. 당대의 교회 관련 학교들은 근대 시민의식을 가진 민족으로 거듭나도록 민주주의 교육을 시키고, 민족정신을 함양하고 의식화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교회의 교육현상을 서양문화와 기독교적 민주주의에 의해 새롭게 각성되는 한국사회를 새 한국의 정신이라고도 평가하였다. 이에 따라 3.1운동 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의 인사에 김병조, 손정도, 도인권 등의 기독교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재정적인 지원도 기독교계인사들이 많이 담당하였다. 이는 서양문화와 기독교적 민주주의에 의해 새롭게 각성 되는 새 한국의 정신이라고 규정되었다. 조선 왕조와는 상관없는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족의 자유가 있을 뿐이었다. 독립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권회복과 민족의 자주독립이었고, 더 나아가 인간 존엄성의 확보였다. 각기 자유를 누리는 삶, 주권을 행사하는 독립 국가를 형성해야 하고, 우리민족이 독자적인 창의력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근본적인 소망이었다.
셋째로 대동단결의 정신, 연합의 정신이다. 일부 친일파를 제외 하고 온 민족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족적으로 참여하였다. 조선인은 당파심이 강해 단결을 못한다고 비하한 일본을 향해 종교, 계층, 성별, 지역 간의 장벽을 넘어 단결하여 항일하였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가 자리를 같이하고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서로 힘과 뜻을 모아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반적으로 배타적으로 알려진 기독교인들이 신앙상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내천(人乃天)의 동학 전통을 이어 온 천도교, 그리고 불교와도 참여의 연대를 형성하였다. 3.1정신에는 정당한 양심의 권위, 광명정대한 떳떳한 태도, 정의로움과 생존권을 주장하는 인도주의, 지역감정, 정파 간의 대립은 찾아 볼 수 없는 대동정신이 있었다.
넷째로 평등정신이다. 모든 민중이 각자가 주체적으로 평등하게 참여하였다. 지식인 엘리트가 뒤로 물러나고 민중이 앞장 선 민주정신의 실현이었다.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군국주의에 반발하여 온 백성이 주체적으로 수평적이고 다원적이고 쌍방적인 관계와 원리를 제시하였다. 백성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받들어 섬기는 정신이다. 동학이나 기독교의 민주정신은 한사람이 주체로 일어서면 민족전체가 하나로 일어선다는 점에서 삼일정신은 한사람의 주체의 깊이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정신과 철학이다. 조선시대의 양반, 중인 평민, 천민으로 나누인 계층의식이 남아있던 때에 이를 초월하였다.
다섯째로 저항정신이다. 삼일운동은 일제의 압제에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3.1 독립 만세에 한국인들은 일제의 폭정, 차별, 수탈에 저항하였다. 위대한 역사, 개인을 만들어 가는 데는 부정,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세계역사에서도 강대국의 세력에 저항한 나라들은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삼일 운동 후에 무력적으로도 저항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여섯째로 비폭력 정신이다. 저항의 방법은 비폭력, 무저항 정신이다. 군국주의 세력과 맞선 비폭력 평화와 정의, 도의와 진리, 우애, 협력을 나타내는 평화의 정신이다. 일본 군경의 총칼무단정치에 맞선 대안이었다. 거의 일년간 지속된 독립운동 중 무지비한 진압에 대한 마찰을 제외하고는 투옥과 사상자가 속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으로 저항하였다. 한민족의 자주민임과 독립의지를 질서를 따라 비폭력으로 세계에 알렸다. 시위 중 일어난 일부의 폭력은 일제의 무력 진압에 대응한 것이었다.
비폭력투쟁의 방식의 선언과 실천은 중국의 베이징대학생 중심의 5.4운동, 인도에서 간디(Mohandas K. Gandhi)의 사타야그라하(satyagraha) 운동으로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비협력 불복종, 무저항방법을 채택한 것과, 베트남 등의 아시아 민족국가의 독립 해방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투쟁방법 면에서도 세계사적으로 공헌하였다.
일곱째로 세계평화정신이었다. 일본의 식민지주의를 세계역사의 역방향으로 나아가는 일본을 향해 자주 독립된 국가와 민족사이의 우애와 협력 평화와 공존을 실현하는 새로운 세계평화 추구의 정신이다. "가해자의 관점을 넘어서고 피해자만의 관점에서도 벗어나 전체의 자리에서 서로 주체로서 정의와 평화를 열어가는 정신과 철학"이 있었다. 독립운동의 궁극적 목표인 국권회복, 민족 자주독립 나아가서 인간의 존엄성, 평화의 확보를 선포한 것이었다. 평화는 인류의 보편적 필수 요건이고 추구해야 할 정신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마 5:9)는 말씀 따라 평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peace maker)는 선언이었고 그 정신이었다.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고난이 있어야 한다. 한국민족의 역사는 평화의 역사였다. 기독교의 정신도 평화이다(살롬). 조선의 독립 선언인 3.1운동과 그 정신은 동양평화, 세계의 평화로 나아가는 필연적 귀결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