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안식일 이해>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II. 유월절과 관련된 관습
1. 서론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방법은 1년을 주기로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명절을 통해서였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이다. 이 중에서 유월절은 다른 어느 명절들보다도 중요하였는데, 그것은 유대력에서 1년 중 가장 먼저 지켜지는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월절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출애굽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나무의 뿌리와 열매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유월절은 기독교 신앙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학적 면에서도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사건들은 시기나 의미 면에서 신약시대의 유대인 명절 유월절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신약에서 나타난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은 유대인의 역사를 통하여 주어졌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삶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지켜왔던 유월절 명절을 탐구하는 것은 지나간 역사 속의 한 옛 풍습을 고찰하는 인류문화적인 관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배경과 더불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을 조명하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2. 유월절의 명칭들
성서에 나타나 있는 유월절에 대한 명칭들은 그 나름대로 유월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성경에 등장하는 명칭들과 그와 관련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월절
우리말 성경에서 '유월절'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 명칭은 가장 대표적인 명칭이다. 히브리어로는 '하그 하페사흐'(hag ha-pesah)이며 영어로는 'the Feast of the Passover'라고 번역한다. 이 명칭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인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히브리어 '파사흐'(Pasah)는 '위로 넘어 간다' '뛰어 넘다' 등을 의미하는 동사 '파사흐'(Pasah)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런 재앙이 그들을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후에 이르러 '페사흐'는 유월절 절기를 위하여 잡는 양이나 유월절에 드려지는 제물 전체를 가리키는 전문용어(technical term)가 되었고(출 12:11, 27), 더 나아가 유월절 명절 자체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기도 하였다(출 12:48).
(2) 무교절
우리말 성경에서 '무교절'로 번역하고 있는 이 명칭은 히브리어로 '하그 하마쵸트'(hag ha-Mazzot)이며, 영어로는 'the Feast of the Unleavened Bread'이다. 마쵸트(Mazzot)는 누룩을 전혀 넣지 않고 구운 빵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마챠'(Mazza)의 복수형이다. 유월절 명절 동안에 행해지는 여러 가지 규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누룩을 넣은 빵이나 과자를 먹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기를 '무교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레위기 23장에 근거하여 이 절기를 엄격히 구분하면, 절기의 첫날인 14일 하루는 유월절이고, 나머지 7일간은 무교절이다. 이것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절기가 어느 계기를 통하여 하나로 결합되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하지만, 이 두 명칭은 큰 차이 없이 혼용되어 왔다. 신약성서에서도 이 두 가지 명칭은 엄격한 구분 없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막 4:1 눅 22:7).
(3) 아빕월
신명기 16장에 의하여 유월절은 아빕월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아빕월은 유대력의 첫 달로서 지금의 3-4월경에 해당된다. 어원적으로 '곡식의 어린 이삭'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빕'은 그런 이삭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인 '봄'의 명칭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이것과 관련하여 유월절을 '하그 헤아비브 '(hag he-Abib) 즉 'the Feast of the spring'라고 부른다. 이렇게 유월절을 아빕월과 관련시켜 부르게 된 것은, 유월절의 시기가 봄 곧 이삭이 나오는 계절인 것도 있겠지만, 그것과 함께 일 년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