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의 날은 언제나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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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의 聖畵(성화)와 實話(실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프랑스 셍 제르베 셍 포르테스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가장 오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이콘이다. 심장에 못이 박혀 있다.

▲프랑스 셍 제르베 셍 포르테스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가장 오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이콘이다. 심장에 못이 박혀 있다.

한글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이 다른 성경보다 우월하다는 과도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영어 킹제임스에 이런 대목이 있다.

“… how greatly I long after you all in the bowels of Jesus Christ”.

빌립보서 1장 8절이다. 이것을 한글 흠정역이라는 데서는 이렇게 옮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너희 모두를 얼마나 많이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같은 아류인 한글 킹제임스역이라는 데서는 이렇게 옮긴다.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러나 이들이 악마표 번역이라고까지 폄훼하는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개역성경이 KJV에 더 가까운 셈이다.

1. ‘심장’의 배경: 암흑기

통상 구약의 마지막 문헌인 말라기와 신약의 첫 문헌인 마태복음 사이를 암흑 시대라 배웠을 것이다. 이 중간기 마지막 문서 예언자인 말라기는 주의 날/ 종말이 ‘갑자기’ 임한다 예고하며 마지막 예언을 닫는다.

왜 ‘갑자기’였을까. 사람들이 나이트클럽에서 술 마시고 흔들기만 하느라 그랬을까? 결혼 준비에만 몰두해서 그랬을까? 안 그랬다. 암흑은 무슨 암흑, 이 역사적 암흑기의 실제는 그 어떤 시대보다 깨어 있던 시기다.

헬라 제국의 시조인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유산으로 남긴 드넓은 영토를 그 부하들이 나눠먹는 과정에서는 속주민인 유대인을 신사적으로 대했지만, 안정적인 분할 통치로 접어들면서는 헬라화를 강제했다.

우상에 민감한 유대인에게 헬라화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우상숭배 문화였기에, 자연스레 저항을 불렀다. 헬라화가 이들을 깨어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성전정결 사건이다.

2. ‘심장’의 성전 정결: 투쟁기

안티오코스 4세는 강력한 헬라화 과정에서 히브리어 경전을 찢고 불태워버리기, 돼지고기 강제로 먹이기 등 말할 수 없는 욕을 보였다.

원로였던 엘아자르는 돼지고기를 거부하다 매 맞아 죽었고, 일곱 아들 둔 신심 두터운 한 여성은 정결례를 끝까지 고수하다 아들들과 함께 사지가 잘려 나가는 학살을 당하였다. 이제 유대인에게 남은 것은 항쟁밖엔 없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 북서쪽 한 성읍에 사절을 보내, 그리스 신(神)들을 향한 제사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마치 인민군 수괴가 우리 남한의 현충원을 유린하는 것만큼이나 모욕의 절정이었다.

이때 이를 수용해 신사참배하는 한 유대인을 제단에서 칼로 찍어 죽이고 사절단까지 같이 죽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마치 북에서 내려온 돼지 일행이 현충원에서 참변을 당하는 사태라고나 할까…. 제국의 사절단까지 죽여놨으니 사단이 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사태를 주도한 인물 마타디아는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당대 경건주의자들을 끌어들여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게릴라 항전을 본격화했다.

이를 우리는 ‘마카비 항쟁’이라 부른다. 마카비(마카베오)는 마타디아의 아들 이름이다. 그는 체구가 크고 용장이었다 한다. 제국의 군대를 두들겨 패 죽이는데 능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마카비(망치)와, 그의 본명을 붙여 읽어 유다 마카비라 불렸다.

마카비는 네 차례의 큰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는 등 3년간의 힘겨운 저항 끝에, 주전 164년 음력 11월 25일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는 세레모니를 과시할 정도로, 제국이 무시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세력이 됐다. 거기까지 완수한 마카비는 전사한다.

3. ‘심장’의 자유와 독립: 전성기

마타디아의 테러로 촉발된 마카비 혁명은 마카비가 죽은 후 그의 막내 동생 요나단에게 지휘권이 승계되면서 제국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권력으로 급부상했다.

요나단은 시리아나 이집트가 키운 권력들 틈바구니에서 국제 정세에 탁월한 외교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차세대 패권국인 로마와의 친분까지 쌓아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정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죽는다.

마카비 형제들 가운데 이제 마지막 남은 생존자 시몬이 그의 지위를 승계 받았다. 시몬은 동생 요나단이 닦아 놓은 외교 지위를 이용해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얻는 쾌거를 이룬다.

이 자유와 독립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제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정치적 자유,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아도 되는 종교적 자유였다. 유대인 역사상 전무후무한 자유독립 국가 시대를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지위를 완벽하게 다 들어먹은 것이 바로 헤롯이었다. 오늘날의 우리처럼.

4. ‘심장’의 말기: 투쟁의 고착화

항쟁의 출발점인 마타디아는 결과적으로 항쟁과 투쟁의 과정에서 모든 아들을 잃었다. 한 가문의 아들들이 유대인의 정체성 수호에 다 희생된 것이다.

이와 같은 숭고로 출발한 자유독립 왕조는 헤롯이라는 포악한 사기꾼을 만나면서, 나라를 통째로 헬라 제국에 갖다 바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편 제2, 제3의 마타디아를 꿈꾸는 민족주의에 매몰된 젤롯 메시아들이 대거 등장하는 전거가 되었다. 투쟁이 고착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광야로만 나가는 세력들로 고착화됐는가 하면, 그 어떠한 메시아도 자기들만 감별하겠다고 벼르는 아집의 세력들로도 변질됐다. 배에 기름낀 기득권 계층은 예나 지금이나 제국이 선사하는 수많은 ‘위원회’의 회원 지위를 감지덕지 여기는 의회주의자들로 매몰돼 갔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통 유대교라기보다, 토템과 터부화된 자기 이데올로기 고착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 시대에 오로지 ‘노랑 리본 패찰’로만 자기네 메시아를 감별하는 토템화된 심장, 이를테면 오로지 ‘태극기 패찰’로만 자기네 메시아를 감별하는 터부화된 심장들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시기보다도 깨어 있는 시기 같지만, 그 패착과 고착화된 심장이 주의 날을 어느날 ‘갑자기’ 임한 종말인 것처럼 낯설게 만드는 주범이 된 것이다.

5.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고 옮기지 않은 한글 킹제임스 아류가 오역인 이유는, 여기서 ‘카르디아(καρδία)’를 쓰지 않고 ‘스플랑크나(σπλάγχνα)’를 쓴 이유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총 11회 나오는 ‘스플랑크나’는 ‘카르디아’와 더불어 마음, 심정 등 다양한 형이상학에 사용되었고, 역시 ‘카르디아’와 더불어 심장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스플랑크나’는 오장육부 같은 물리적 신체 기관의 의미로서 한층 강화된 용언이다.

바울은 이 용언을 쓸 때, 우리 자신의 마음(밭)이라기보다는 성전 된 그리스도의 몸 기관으로서 우리 신체의 어떤 용적/ 그릇을 표현할 때 쓴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의 용적 기관(심장 스플랑크나)이 좁아졌다고 견책한다. 이를테면, 오네시모를 가리켜 내 심장 스플랑크나(심복)라고 빌레몬에게 호소한다.

결론은 이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고 했을 때 그 심장은, 그 자체로서 그리스도를 모시는 성전의 한 기관으로서 용적/ 그릇이라고 간주했을 때만 이 용법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사가랴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겨냥하여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긍휼을 바로 “하나님의 스플랑크나(심장)”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긍휼이란, 배우고 훈련으로 쌓는 어떤 덕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용적/심장인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왜 주의 날은 언제나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는 것이냐”까지도 밝힐 수 있다.

그를 모실/ 담을 그릇이 없는 까닭이다.

이 심장 없는 자들이 현대판 젤롯,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원, 곧 깨어 있는 자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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