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108년, 평양 밖 북조선 2] ‘손이 시렵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했다
‘통일 조국의 평양특별시장’을 꿈꾸는 강동완 교수님(전 부산하나센터장)이 보내오신 ‘평양 밖 북조선’의 생생한 사진입니다. 2019년 1월 1일, 휴전선 너머, 북·중 국경 지역에서 직접 담아낸 ‘날 것 그대로’ 북한의 오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북한에서 “동네 우물이나 강가에서 물을 길어 쓴다”고 탈북민이 말했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수도꼭지로 뜨거운 물이 나오고 싱크대로 물을 흘려 보내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라 했다.
북한의 인프라가 아무리 열악해도, 설마 그 정도일까 생각했다.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 선전하는 북한정권이 아니던가.
2019년 새해 첫날, 북중 접경을 달렸다. 온도계는 영하 25도를 가리켰다. 압록강변 바람이 마치 날카로운 송곳처럼 살갗을 스쳤다. 그런 혹한의 추위에 아랑곳없이 북녘의 여성들은 강물에서 질긴 삶을 이어갔다.
물을 길어서 쓰는 정도가 아니라, 한 동이의 물을 구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였다. 꽁꽁 얼어붙은 강변에 나와 두꺼운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해야 했고, 눈썰매에 물통을 끌고 옮길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머리에 물통을 이고 미끄러운 빙판길 언덕을 오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들의 뒷모습은 너무도 마음을 아리게 했다.
평양이 아닌 시골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하지 말자. 만약 그대의 딸이, 그대의 아내가, 그대의 어머니가 한 짐의 빨래를 머리에 힘겹게 이고,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을 든 채 그 길을 걸어간다 해도 그리 말할 수 있을는지.
북한을 악마화한 우리 사회의 이념적 편향성이 문제라는 말은 더더욱 하지 말자. 누군가에겐 한 줌의 물을 구하기 위해 살을 에는 고통을 감내하도록 해 놓고, 자신은 홀로 높은 자리에 앉아 만세를 부르라 하면 그건 분명 악마에 지나지 않는다.
이벤트성 쇼나 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진정 남북한 주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을 보장해 주는 일이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지 않았던가….
글·사진 강동완 교수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썼다. 저자는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음은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북중접경 2,000km를 달리고 또 걸었다.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이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눈앞에 허락된 사람들만 겨우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으니 망원렌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당겨서 보고 싶었다. 0.01초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분단의 오랜 상처를 담고자 했다. 대포 마냥 투박하게 생긴 900밀리 망원렌즈에 우리네 사람들이 안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찍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렌즈의 초점을 아무리 당겨보아도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저 한 점에 불과했다.
사진은 또 다른 폭력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된 모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고자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손가락은 카메라 셔터 위에 있었고, 눈동자는 오직 북녘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