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108년, 평양 밖 북조선 6] 기차 하나에도 혁명을 실어야
눈 내린 산모퉁이를 돌아 열차 한 대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온다. ‘최후 승리’라는 푯말을 정면에 위용 있게 써 붙이고 산자락을 휘감아 돈다.
‘제2의 천리마 대진군’ 호라고 쓰인 기관차 옆에 빨간색 글귀가 눈에 띄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내주신 선물기관차(주체 88)’라고 쓰였다.
지금 2019년이 주체 108년이니, 주체 88년이면 20년 전에 김정일이 선물로 보내주었다는 기관차다.
20년 동안 3대 혁명 승리를 위해 달리며 ‘영예상’을 수상했다는 푯말이 기차를 장식한다. 열차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낡은 기관차가 여전히 ‘최후 승리’를 향해 달리며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을 외쳐댄다.
고난의 행군 시절, 기차 빵통 위에라도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던 사람들. 영예상을 수상했다는 저 기관차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까….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이라는 외침은 낡은 기적 소리에 파묻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기차 하나에도 혁명을 실어야 하는 사람들….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고 선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어제의 오늘을 근근이 살아내고 있다.
글·사진 강동완 교수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펴냈다. 저자는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음은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 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북중접경 2,000km를 달리고 또 걸었다.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이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눈앞에 허락된 사람들만 겨우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으니 망원렌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당겨서 보고 싶었다. 0.01초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분단의 오랜 상처를 담고자 했다.
대포 마냥 투박하게 생긴 900밀리 망원렌즈에 우리네 사람들이 안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찍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렌즈의 초점을 아무리 당겨보아도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저 한 점에 불과했다.
사진은 또 다른 폭력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된 모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고자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손가락은 카메라 셔터 위에 있었고, 눈동자는 오직 북녘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