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영화 <향수>
탄생
1739년 파리의 한 여름, 악취가 진동하는 시장 좌판에서 만삭의 몸으로 생선을 팔던 한 여인이 그 자리에서 아기를 출산한다. 사생아다.
그녀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생선 내장찌꺼기 모아두는 곳에 아기를 버린다. 이 일로 산모는 영아살해 죄로 처형되고, 아기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아남는다.
성장
장 바티스트라 불리는 이 소년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냄새 맡는 능력이다. 어둠 속에서도 냄새나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뿐 아니라, 아무리 먼 곳에서 나는 냄새도 찾아갈 수 있다.
무두장이가 된 소년은 어느 날 미묘한 향내에 끌려 쫓아갔다가, 향내 주인인 여자가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그만 그녀를 죽이고 만다.
수련
죽은 여성에게서 나는 향내를 만끽하느라 죽음의 의미도 미처 인식 못하는 장 바티스트는, 그 일이 있은 후 우연히 향수 제조업자 발디니를 만난다. 발디니는 한물 간 향기 예술가이다. 젊은 라이벌이 만든 신제품에 번번이 밀린다.
장 바티스트는 그런 발디니에게 새로운 향 레시피 1,000개를 만들어주는 대신 향을 오래 지속시키는 보전 기술을 배운다. 장 바티스트가 향수의 본고장 그라스로 간 날 밤 발디니는 레시피를 끌어안고 꿈에 부풀어 자다, 집이 무너져 죽고 만다. 자기를 낳아준 모친을 포함, 부지중에 벌써 셋이 죽은 것이다.
성찰
그는 그라스로 가는 중에 산에서 목욕을 하다, 그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놀랍도록 정확하게 냄새 맡는 능력을 소유한 자기 자신에게서는 정작 냄새가 안 난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상 최고의 향기 만드는 일에 서둘러 박차를 가한다.
성취
지상 최고의 향기 만들어내는 일은 젊은 여성들에게서 향을 채집해 가공하는 일이다. 도시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 연쇄살인 소문이다.
머리를 깎인 젊은 여성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장 바티스트의 향기 채집법이 바로 여성의 머리털과 피부에서 향을 추출해내는 기법이었던 것이다.
꼬리가 잡힌 장 바티스트는 광장에서 공개처형될 위기에 직면한다. 최고의 향수는 다 완성된 상태이다. 그 동안 추출해 모은 향수를 한데 섞는다. 희생당한 여성은 13명.
처형과 부활
사형집행일 날, 그는 자기 몸에 향수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기다린다. 그를 데리러 온 간수들은 그 향을 맡자 그에게 부복하고 도리어 그를 에스코트한다. 자기 딸이 희생당해 이를 악물고 기소를 하던 검사조차 그의 향내를 맡자 “오, 나의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 하며 회개의 눈물로 그를 맞이한다.
형 집행의 최종 결정권자인 주교는 그 향을 맡자 그를 강림한 메시아로 칭송한다. 이제 처형장으로 간 장 바티스트는 위풍도 당당하게 나아가 “형틀에 매달라!” 외쳐대는 성난 군중을 향해 손수건에 향수를 뿌려서는 날린다.
날아가는 손수건의 방향을 따라 향이 코에 닿자 군중은 “천사다! 천사께서 내려오셨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군중은 그 향내로 욕망이 불일 듯 일더니,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시작한다.
승천
군중의 이런 허망한 반응에 실망한 장 바티스트는 처음 자기가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악취가 나는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 사이, 사람들은 향에서 깨어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모르는 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법 집행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서둘러 애먼 용의자 하나를 붙잡아 교수형에 처하고 일단락지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향수를 꺼내 들고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자기 머리위에 붓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노숙자들은 그 향기와 더불어 뿜어 나오는 광채를 보고는 “천사다! 천사!” 하고 외치며 황홀한 표정으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를 먹어치웠다.
향수
잔혹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좀머씨 이야기>의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소설 <향수>의 줄거리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이야기는 이 시대의 정의 곧, 이제 하수 같이 흐르게 되었다는 공의와 그 수요의 형식을 반영한다.
인간이 소유한 감각능력 중 가장 열등하다는 후각기관은 어떻게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특히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각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체 인지기관의 최고 권능인 눈과 귀가 우리 인식을 주도하는 것 같지만, 절대 다수가 실은 냄새에 가장 격하게 반응한다.
고대로부터 자연과학자들은 후각이 ‘역겨운 냄새 또는 달콤한 냄새’ 오로지 둘밖에는 인지 못하는 기관이라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후각은 아무리 악한 것도 좋은 냄새를 뒤집어쓰고 현현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
반대로 아무리 정의로운 것도 악취로 인식당하면 그것은 끝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사무친다. 그런 대중의 반응은 마치 그라스 광장에서 서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감행했던 담합(Cartel)과 유사하다.
그라스와 바티스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그라스와 바티스트. 주인공의 이름인 장 바티스트에서 ‘장’은 요한(John)의 불어식 음가이다.
따라서 장 바티스트는 ‘장 밥티스트’ 즉 세례 요한을 은유한다. 이 은유의 운율에 맞추어 향수의 도시 그라스는 그레이스 곧 ‘은혜의 도시’를 일컫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기독교 인구 1,000만에 육박하는 우리들의 도시를 일컫는 말이요, 장 바티스트는 젊은 군중의 머리카락 냄새와 피부 냄새로 자신의 노회함을 은닉하는 정의로운 기독교 사제들을 표지한다.
그들이 지어낸 이 시대의 대표적인 경구가 “언론사 J는 교회 같고, 그 앵커는 목사 같고.”
교회 같은 언론이나,
언론 같은 교회나,
사실은 장 바티스트가 겪는
장애들을 앓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본래 자기 냄새는 못 맡는 법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냄새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냄새만은 맡지를 못 하는 인간 특유의 후각 기능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