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①] 추도(모)예배도 제사? 왜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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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

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이번엔 설 명절을 맞아 박 목사가 쓴 '왜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가?'를 두 번에 걸쳐 싣습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질문]

성당에 다니는 친구의 불만입니다.

"왜 너희 개신교도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거냐? 우리가 제사를 지낸다고 조상을 신으로 받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상에 대한 예를 표시하는 건데. 너희도 추모예배는 드린다며? 그것과 제사 지내는 것과 뭐가 달라? 절하는 것 때문에? 그럼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절하면 그 사람 섬기는 거냐? 성경에 그러지 말라고 써있어?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셨던? 오히려 네 부모님을 공경하랬잖아. 그 공경심을 돌아가신 분에게도 연장할 뿐인데 왜 그걸 못하게 한데?"

[답변]

카토릭의 비교우월성?

이 문제는 전도할 때마다 개신교에 대한 반발로 심심찮게 듣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카토릭에선 술 담배 문제와 함께 개신교에 대한 비교우월성(?)을 자랑하는 양 소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신자마저 확실한 이해가 없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문제만큼 오히려 개신교가 카토릭에 대해 확실한 비교우월성을 입증할만한 쉽고도 분명한 근거가 있음에도 그렇게 설명되어지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사실은 비교우월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말로 하자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술 담배의 경우를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카토릭의 입장은 'Free Smoking'을 권하고 개신교는 'Smoking Free'를 강조합니다. 전자는 술 담배를 마음 놓고 해도 된다는 것이고 후자는 술 담배의 중독과 해악에서 해방되자는 것입니다. 혹시 카토릭이 금하지 않는다고 했지 마음 놓고 하라고 권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학교 갔다 와서 공부하면서 전자 오락 게임해도 된다는 허락을 했다 칩시다. 그럼 아이가 공부를 하겠습니까 오락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오락입니다. 특히 술 담배처럼 중독성이 있는 문제를 해도 된다고 하면 술이 술을 마신다고 거의 모두 술 담배에 중독 되지 절제할 수 없습니다.

절제하면서 적당히 하면 인간관계에도 좋은 것 아닌가라는 것은 단지 핑계입니다. 간단하게 술 담배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끊겠다고 하지 술 담배가 좋으니 마음 놓고 더 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술 담배를 하고 있는 사람조차 끊겠다고 하는데 교회가 나서서 해도 좋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지 않습니까? 아이들한테 공부하라고 자꾸 이야기 하는 것과 오락 게임 해도 된다고 허용해 주는 것과는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술 담배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존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술 담배에 의존해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술 담배 하면서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상대의 입장에서 접근하라

신자들이 전도하면서 은연중에 누구나 범하는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상대가 완전 불신자이든 타종교인이든 자꾸만 기독교의 교리로 설명하려 드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 안에 완전히 들어와야만 그 진리가 제대로 이해됩니다. 믿음 밖에 있는 자들에게 교리적으로 접근해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오히려 반발만 생깁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 반대되고 상충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윤리, 도덕, 철학, 종교의 사상을 넘어선 차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도 할 때에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아직은 믿음 밖에 있다는 것을 항상 감안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접근하셔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9:22)라고 했습니다. 이미 믿음 안에 들어온 신자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기독교 교리가 자신에게는 너무 쉽고 자명하게 되었으므로 자기도 믿기 전에는 똑 같이 이해하기 힘들었고 반발했다는 사실을 잠시 잊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쉬운 진리를 못 알아먹지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말로 더 설명하려 듭니다. 그래선 논쟁밖에 안 됩니다. 이미 신자와 불신자 간에는 서로 사고의 방향이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입장에선 제사를 일차적으로 우상 숭배로 보지만 불신자 쪽에선 질문자님이 겪은 대로 단순히 조상을 공경하는 좋은 일로 간주합니다. 서로 보는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자와 제사 문제를 논할 때에도 먼저 그들 입장에서 접근한 후에 나중에 신자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이 맞는 순서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꾸 기독교 교리로만 납득시키거나 강요하려 드니까 서로 말이 어긋납니다. 결국에는 "어쨌든 제사가 나쁘니까 네가 그 점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줄게"라는 식으로 논쟁을 마칩니다.  

따라서 먼저 불신자에게 신자도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아니 지내고 있다고 말씀 드려야 합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들의 논리대로 따지자면 신자도 추모예배(이하 예배로 통칭)로 부모를 공경하는 예를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서로 토론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 됩니까? 예배와 제사가 정말 내용이 같고 형식만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두 가지 형식 중에 어느 형식이 좋은 것인가? 또 그런 형식이 과연 비교우월성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아니면 각각의 형식 안에 혹시 부모 공경 외의 다른 내용은 없는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서로 형식을 따지지 말자

겉으로 달라 보이는 어떤 두 가지 형식이 진정으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당연히 그 형식을 두고 문제 삼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쉬운 예로 피크닉 가면서 시원한 콜라를 마시기 위해 미제 아이스 박스에 넣든, 미리 냉장고에 하루쯤 넣어 얼려서 갖고 가든, 스티로플 박스에 얼음과 함께 넣어 가든, 아니면 그냥 들고 가서 시원한 계곡물에 담가 두든 별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찬 콜라를 마시자는 동일한 목적은 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온도의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때와 형편에 따라 적당한 방법을 선택하면 됩니다.

불신자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오직 부모를 회상하고 공경하는 예를 표하는 목적 뿐이라면 괜찮습니다. 제사 지내며 절을 해도 됩니다. 신자도 진정으로 살아 생전에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고 이미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표시를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불신자는 신자에게 "왜 너희는 자꾸 제사라는 형식을 따지느냐 결국 부모 공경의 뜻은 같지 않느냐?"라고 반발합니다. 그 논리에 따르면 개신교의 예배는 그들이 말하는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가 제사를 구태여 금지하지 않은 셈입니다. 역으로 말해 신자더러 형식을 따지지 말자고 요구하려면 그들도 예배를 부모 공경의 제사로 인정해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 신자와 불신자 간의 논쟁을 해결하는 열쇠가 있습니다. 불신자의 논리대로 하자면 신자의 예배도 그들 식의 제사입니다. 그럼에도 불신자가 현재의 제사 형식을 끝까지 고집하겠다고 들면 예배의 형식이나 내용 둘 중에 하나가 마음에 안 들든지, 제사의 형식이 더 좋든지, 제사에는 부모 공경 외에 다른 내용이 더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 됩니다.

알기 쉽게 말해 개신교의 추모 예배에도 내용(A)과 형식(a)이 있고, 천주교와 불신자가 선호하는 제사에도 내용(B)과 형식(b)이 있음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제사와 추모예배 간에는 이론 상으로는 다음 네 가지 경우만 발생할 수 있습니다.  
1)A=B and a=b: 내용과 형식에서 전부 동일-이미 제사와 예배의 형식이 다르므로 현실에선 발생하지 않음(차후 논의에서 제외)
2)A=B  but  a X b: 불신자들이 예배와 제사가 내용은 같은데 형식만 다르다고 주장하는 경우
3)A X B but a=b: 불신자들이 똑 같은 형식의 제사를 지내도 그 속에 자기들이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체 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
4)A x B  and  a X b: 신자가 제사와 예배를 내용과 형식에서 다 다르다고 보는 경우

현재 신자와 불신자 간에 제사 문제가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는 불신자는 2)가 맞다고, 신자는 3)과 4)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이 정확하게 검토되기 위해선 A, a, B, b(예배의 내용과 형식, 제사의 내용과 형식)이 과연 무엇인지부터 분명하게 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서로 말꼬리 잡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배의 내용과 형식

내용(A):

1)부모에 대한 회상과 공경, 생전에 효도 못한 것에 대한 회개, 남아 있는 형제끼리 서로 돕고 화목하게 지내려는 합의와 실천,
2)부모님(신자였다면)이 천국에 가 계신 것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 천국에서의 재회에 대한 소망을 가꿈, 인생의 살고 죽음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묵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자녀들이 남은 여생을 주님 뜻과 소명에 헌신하기로 결단, 자기에게 맡겨준 후손들을 말씀과 기도로 잘 양육하며 믿음의 기업으로 세움 등등

형식(a):

1)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아래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찬송, 기도, 말씀 선포 등 통상적인 예배의 형식대로 함,
2)형제들이 함께 모여 각자 좋아 하는 음식을 마련해 놓고 예배 후 나눔, 부모의 기념품, 유언 등을 살펴 보고, 사진이나 생전에 녹음 혹은 녹화 해 놓은 것을 다시 듣고 봄.    

간단하게 정리해 놓고 보아도 제사에 없는 내용(A-2)이 있음을 당장 알 수 있습니다. 또 신자의 예배 내용에선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사실은A-2)가 A-1)보다 더 우선합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집니다.

-천주교에서도 예배를 드리지만 제사 지내는 것도 허용한다고 하면 더 중요한A-2)의 내용을 생략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서두에서 제사 문제가 오히려 천주교에 대해 비교 우위성을 증거할 수 있다고 말한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예배와 제사의 내용은 같고 형식만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예배 안에 A-2)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불신자니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백배 인정하여 형식만 다르다고 쳐도 그들이 예배는 추모의 제사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방식의 제사만 주장하는 이유는 형식에서 a-1)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인정하기 싫다는 뜻입니다. 천주교가 제사를 인정하면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주장을 결과적으로 동조해 주는 셈이 됩니다.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제사의 내용과 형식

내용(B)

1)A-1)과 같은 내용
2)죽은 부모의 혼백이 직접 그 자리에 와서 제사에 차려 놓은 음식을 보고 즐거워 함, 자식들이 현재 건강하고 형통하게 사는 것이 조상의 음덕(陰德)이므로 부모에게 감사해야 함, 앞으로도 복 받고 잘 살기 위해선 돌아가신 부모를 더 잘 섬겨야 함,
3)죽은 부모가 혹시라도 이승에 미련과 원한이 남았다면 자식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좋은 곳(?)에 가서 안식을 구하기 바람, 그래서 후손들에게 액운을 끼치지 않기 바람,

형식(b)

1)정해진 규율에 따라 음식을 준비하고 정렬하며 특별히 생전에 부모가 좋아하던 음식을 별도 장만함, (예,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부터 동쪽에 놓고 흴수록 서쪽에 배열), 반드시 술과 탕국이 준비되어야 함, 제사 모시는 조상 숫자만큼 밥과 국을 세트로 준비해야 하는 것 등)
2)남자 자식들만 절하면서 엄격한 순서에 따라 절차를 진행함, 각 절차 마다 고유의 의미가 부여 되어 있음,
3)제사 후에 지방(紙榜: 종이에 적은 神主)을 불에 태워 하늘로 올리고, 음식물을 바가지에 담아 집안 주위에 뿌림,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는 제사의 내용과 형식에서의 문제점

제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도 상기에 정리한 사항들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 해 놓았음에도 성경적으로 봐서 얼마나 잘못이 많은가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신자가 제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오직 하나(B-1)뿐입니다. (계속)

20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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