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승리’,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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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36) 관점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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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승리?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이 단어를 수도 없이 듣다 보니 감정이 마취된 상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십자가가 어떻게 승리일 수 있는가? 인간적인 이해로 따지자면 십자가는 승리가 아니다. 오히려 파멸이요, 굴욕이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두 명의 강도들 사이에 주님이 십자가에 달린다. 한 마디로, 세상에서 범죄자 취급을 당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 분이 누구인가? 세상 만물의 주인이고, 세상의 모든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분 아닌가? 이 분이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 이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이 시험을 견딜 수 있을까?

게다가 사도들을 생각해 보라.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도, 능욕을 받고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갔다(행 5:40-41).

어떻게 이것이 승리일 수 있는가?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있었다면, 최대의 굴욕이요, 파멸로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승리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고, 이 관점은 물과 기름과의 관계와 같아 혼합될 수 없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승리했고, 이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로 바라보는 자들은 물론 승리의 날에 기뻐한다. 기다려 왔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점을 지지하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양하려는 자,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그는 열광하는 팬에 불과하다.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다른 관점으로, ‘전투의 관점’만 옳다.

이 관점의 차이를 한 번 더 서술하면 이렇다. 십자가 승리를 찬양하는 ‘승리의 관점’을 갖고 있는 자는 승리의 날에 승리를 기뻐한다. 승리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마치 저주와 같다. 그때 그는 자신 안에서 결점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한 것처럼 우리도 고난당해야 한다는 ‘전투의 관점’을 갖고 있는 자는 핍박을 받지 않는다면, 자신 안에서 결점을 찾았을 것이다.

오히려 핍박받고 능욕을 받을 때, 기뻐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핍박과 능욕은 역설적으로 승리요, 영광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을 깊이 생각해 보라.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보았다. 그분께서 능욕을 당하실 때, 세상의 주인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들은 그 현장에서 온 세상의 타락과 악이 밝히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이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들은 동일한 고난당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과거처럼 핍박받지 않는다.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의 희생의 결과를 누리며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은혜일 수 있는가? 그런 핍박의 시대에 살지 않는 것이 은혜인가?

우리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당했는지 안다. 그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다 죽어갔는지 알고 있다.

독립운동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핍박의 시대에 살지 않는 것이 은혜인가? 이런 관점은 승리를 찬양만 하는 열광하는 팬들의 착각이다.

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더 비참해졌다고 본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기술문명의 발달과 풍요 가운데 산다 해도, 영적으로는 이미 난민 상태다. 영혼은 고향을 상실하고 떠돌고 있다.

싸움이 치열했던 저 옛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그들 사이에는 어떤 분열도 없었다. 핍박당하는 중에도 서로는 언제나 하나였다. 전투 중에 서로를 격려했을 것이다. 핍박과 능욕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승리한 오늘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내부에 적이 있다. 기독교를 실질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자들이 다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싸움은 언제나 내부 분열로부터 시작된다.

교회 밖에 있는 이방인은 엄밀히 말해 전도 대상자이지,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적은 기독교 내부에 있다.

다시 한 번 복음은 교회에 소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인 척 하는 그리스도인 이방인이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나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복음으로 고난당하기로 결심한 ‘전투의 관점’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떨까? 영적으로 이해할 때, 싸움은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과거에 적은 언제나 외부에 존재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를 반대하는 자들이 기독교 내부와 외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져야 한다.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적은 내부와 외부 모두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싸움은 격렬해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싸움의 양상이다. 과거에 이런 적이 있었는가? 과연 이런 상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걱정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에 존재했던 ‘부흥과 은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교회는 똑같이 돌아간다. 사람들은 모이고 예배는 진행된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예배에 감동이 없다. 은혜는 생략되었다. 예배의 주인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주님을 찬양하는 자들만 득실거린다. 아무도 그 길을 걸으려 하는 자는 없다. 이것이 현 주소이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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