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안식일 이해>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3. 초막절의 배경과 역사
(1) 초막절의 배경
이스라엘의 다른 삼대명절들처럼 초막절도 출애굽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역사경험과 가나안 땅 안에서의 농경 문화적 요소라는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배경의 관계성에 관하여 학자들 간에는 농경 문화적 요소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에 의하여 재해석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명기 16:16에서는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일 년에 삼차 즉 세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하여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가 증거 하는 실례로서는 초막절이 나머지 다른 명절들 보다 더 오래된 순례절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와 어머니 한나는 매년 실로에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매년제"를 드렸는데(삼상 1:3,21; 삿21:19), 그것은 초막절에 해당되는 절기였다. 이때에는 포도수확기로서 이와 관련된 무도회가 열리기도 하였다(삿 21:16-21).
초막절이 있는 시기는 일 년 수확의 성수기로서 포도와 감람나무 열매를 보호키 위하여 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간이 초막을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농경 문화적 한 풍습은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이란 신앙역사로 재해석되어 초막절이란 명칭과 더불어 초막절 행사의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즉 초막절에 짓는 초막은 추수를 위한 초막에서부터 광야생활 중 이스라엘이 거주했던 장막으로 상징화되었고 또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하게 되었다(레 23:42). 이런 과정 속에서 초막절은 다른 두 명절인 유월절과 오순절과 함께 출애굽 구원과 관련된 일련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의 해방, 오순절은 시내산에서의 언약체결과 율법수여, 그리고 초막절은 가나인 입국에 이르기까지의 광야경험과 그런 생활 속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다.
초막절과 관련된 성서의 규정들은 절기 기간 동안 화제를 여호와께 드림으로서 거룩한 성회로 삼을 것을 명하고 있으며(레 23:36), 특별히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에서 복을 주신대로 힘껏 여호와께 예물을 드릴 뿐 아니라 다른 이웃들과 함께 온전히 즐거워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신 16:15-17; 레 23:4; 느 8:17). 이러한 온전한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네 가지 식물 인 "아름다운 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버들"(레 23:40)을 취하여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신명기에서는 매 7년마다 정기 면제년이 되는 해의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듣게 하라고 하였다(신 31:10-11). 이것은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는 교육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율법이 근본적으로 계약법이란 점에서 초막절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중요한 절기이기도 하였다.
(2) 성서시대의 초막절
성서시대의 초막절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극히 희소하여 과연 초막절이 어떻게 지켜졌는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서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제한된 자료를 근거하여 볼 때 초막절이 갖고 있었던 의미는 다른 어느 절기보다 컸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왕정 이전시대에는 실로를 중심으로 초막절 행사가 있었고 이 때에 추수감사제를 위한 무도놀이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후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봉헌식을 거행한 시기가 초막절과 일치되고 있다(왕상 8장). 이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보다는 초막절이 그 만큼 중요한 절기였음을 보여준 실례라고 하겠다. 이스라엘이 남북왕국으로 분열된 후에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올라가는 북 왕조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 제단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하였던 북 왕조의 여로보암 왕은 7월의 절기 곧 초막절을 8월 15일로 날짜를 옮겨 지키게 하였다(왕상 12:28-32). 또한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을 공격하는 예언자들은 절기에 관련된 언급을 자주 하였는데 그 절기들은 대부분 초막절을 지적한 것이었다(사 30:29; 암 5:21-27; 호 9:1).
바벨론 포로 이후시대에 초막절 절기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것은 초막절이 갖고 있는 언약갱신이라는 성격과 종말론적인 의미가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에스라는 초막절에 율법을 백성들에게 낭독함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신앙개혁을 시도할 수가 있었다(느 8장). 또한 그 시대는 포로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케 된다는 소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추수한 곡식을 거두어들인다는 초막절의 'In-gathering'(모음) 의미가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관되었다.
더구나 초막절은 한해가 마감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는 신년이라는 시기도 현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는 종말론사상과 긴밀하게 연관성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초막절에 서로 나누는 축제의 즐거움은 메시아시대에 있게 될 마지막 잔치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삼대명절을 통하여 표현된 출애굽 구원의 유형 중에서 마지막 종말적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막절의 종말론적인 강조는 신약시대에 유대인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었으며, 그런 요소는 근래에 발견된 쿰란공동체의 문헌 속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