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의 성화와 실화] 주현절 마지막 주차
예수, 모세, 엘리야가 타보르 산에서 대화할 때 베드로가 이상한 제안을 하는 장면이다.
“스승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스승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합시다…”
초막은 왜 짓는다는 것이었을까.
본래 이 제안은 베드로가 무서워 엉겹결에 튀어나온 말이라 소개했던 원문이다(마가). 하지만 누가는 베드로 자신도 알지 못하고 했던 이 말이 실상은 의미가 상당한 말임을 포착하여 옮겼다.
주석가나 설교가들은 대개 이 장면을 그리스도께서 과거의 교조적 군상들ㅡ모세와 엘리야ㅡ로부터 인준을 받는 것처럼, 또 그것은 마치 그가 다시 온 모세요 엘리야의 화신인 것처럼 소개한다.
하지만 이 본문의 도상은 오히려 그들을 만나줬던(모세는 율법 수여 때에, 엘리야는 승천 때에), 영광의 광채 속의 하나님이 바로 땅에 내려와 현현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표지한다.
팔레스타인의 초막절은 전통적으로 추수절기의 끝자락임을 감안할 때, 베드로의 제안은 이 놀라운 해후의 장면을 본, 즉 타보르 위에 텐트를 치고서 ‘이제 저 아래 심판의 불바다가 벌어지는 것을 함께 봅시다!’ 하는 극히 종말론적 제안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 베드로의 제안은 어떤 의미에서는 맞고, 어떤 의미에서는 오해이기 때문에 본인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말하였다고 누가는 보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모두의 심정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심판은 언제나 더디게,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는 것인가?
이렇게 해서 곧 사순절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