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슈퍼히어로와 신들의 전성시대 (下)
신화와 종교: 대중문화 속 종교학적 사고의 대두
<아메리칸 갓>이 이런 사상을 자연스레 담아낼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시리즈가 뭇 종교들의 흥망성쇠 원리를 숙고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 설정상 <아메리칸 갓>의 신들은 영원불멸의 존재 혹은 온 우주의 창조주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신앙과 염원이 농축된 종교에 의해 탄생한 초월적 존재로서, 그 종교가 흥할수록, 열성적인 신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큰 힘을 갖게 된다.
이 신들의 진영은 세 진영으로 나뉜다. 첫째는 뭇 사람들에게 잊혀져 자기 정체성을 힘겹게 지켜나가는 고대의 신들. 이들은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현재 거의 소멸되어버린 고대종교의 신들(오딘, 버팔로, 레프리컨 등)로서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들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는 현대의 신들과 타협하며 명맥만 유지하는 고대의 신들(불칸, 오스타라 등), 셋째는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들로 미스터 월드(세계화의 신), 미디어(TV와 미디어의 여신), 테크니컬 보이(컴퓨터와 인터넷의 신) 등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그래서 소멸되어 가는 옛 신들이 새로 등장한 신들에게 도전하는 이야기가 <아메리칸 갓>의 주된 서사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신들은 각각의 신화나 종교, 혹은 숭배대상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아메리칸 갓>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뭇 종교들이 서로 교류하고, 투쟁하고, 생성-소멸되어 온 인류 종교의 역사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런 사상은 단순한 문학적 허구의 산물이 아니다. <아메리칸 갓>의 원작이 소설가 닐 게이먼(Neil Gaiman)이 쓴 동명의 픽션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한 수준의 비교종교학적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종교들이 신비한 자연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숭배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가운데 제의와 교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발전한 종교들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종교들은 도태된다는 진화론적 종교론이 이 작품의 서사 전체에 반영되어 있다.
<아메리칸 갓>에서 기독교는 체계적인 교의와 신학, 설득력 있는 가르침, 그리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이미지를 힘입어, 고대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게 생존한 종교로 묘사된다. 물론 기독교의 유일신론은 부정된다.
영화에서는 각 민족과 교단이 각자의 방식대로 믿는 ‘예수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분파로 나눠진 기독교의 다원적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문화평론이나 학문적 고찰의 입장에서, 이 시리즈 전체의 설정과 서사는 대단히 흥미롭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이 작품에 접근하면 다소간 경계심 어린 눈길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대중문화 가운데서 <아메리칸 갓>처럼 비교종교학적 입장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뭇 종교들을 바라본 작품은 흔치 않다. 비견되기로는 영화 <맨 프롬 어스>(Man from Earth, 2007)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서구 대중문화에서 슈퍼히어로나 신들의 이야기는, 비록 신화적이고 이교적인 요소들이 혼합되긴 했지만, 대개는 기독교적 서사요소를 그 중심에 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서구문화의 중심은 여전히 기독교 문화라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는 듯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적 서사요소는 구석으로 물러가고, 명백히 종교다원주의적인 사고에 지배된 서사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영화나 TV 시리즈 등 대중문화가 여기에 앞장서고 있고, 그 이외의 영역에서도 이런 경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신화와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성 지상주의 세태 속 기독교 신앙
학계조차 이런 현실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대다수 신학 학술지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학에 관련된 연구들만을 개제했다.
그러나 현재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 종교사상을 다룬 연구들이 속속 게재되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 ‘신학=기독교 신학’이라는 공식은 복음주의나 오순절 계열 학계 바깥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 다문화, 다종교 경향이 낳은 결실이라 말할 수 있다. 한국도 이런 조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할랄 푸드라는 말을 들어보거나 이를 직접 사용해 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현재는 시장 도처에서 수입산 할랄 식품들이 눈에 띈다.
포스트모던 문화는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종교관을 근본으로부터 변화시키고 있다.
기준과 중심, 그리고 동일성의 거부, 다원성과 차이의 수긍을 골자로 하는 포스트모던 문화는 일차적으로 다문화 현실의 포용으로부터 출발해, 현재는 다종교 상황 및 젠더 다양성까지 적극 포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젠더 다양성에 관한 문제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다문화 및 다종교 상황에 대해서는 분명 기독교인들이 수긍해야 할 사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고유한 믿음과 가치들을 근본으로부터 파괴하면서까지 다문화 및 다종교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다원성 지상주의적 사고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인들에 대한 역차별과 폭력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이런 다원성 지상주의적 사고가 대중문화를 비롯해 사회 각계로, 학계와 종교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한 차례 시도된 바 있는 차별금지법 발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모든 조류들은 기독교 역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된 사회적 소산으로, 뭇 종교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비교종교학적이고 종교사회학적인 사고에 힘입은 것이다.
이제는 구원 신앙과 종말 신앙을 반영한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오히려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기독교의 구원과 종말 중심 세계관이 아닌, 온갖 종교들의 잡다한 세계관이 혼합된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할 것이며, 이런 경향은 대중문화뿐 아니라 사회와 학계, 그리고 종래에는 생활 전반에 만연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동안 기독교적 서사요소들에 크게 의존해 온 슈퍼히어로 및 신화 장르의 작품들마저 점차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마음놓고 관람할 만한 영화나 TV 시리즈는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단순히 “신화에 착념치 않는(딤전 1:4)” 단계를 넘어, 이제는 종교학적 사고의 일반화 경향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참 의미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기독교인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제를 무조건 회피하기보다 진지하게 살피고, 스스로가 온전한 기독교적 신앙의 삶을 지켜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임에 분명해 보인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