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칼럼] 배은희 목사의 삶과 신앙
근대 기독교 자료 중 1934년 출판된 <방애인 소전(方愛仁 小傳, 전주 유치원)>은 일제 강점기 한 신앙인의 삶이 이리도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방애인 성자’는 이북 황주에서 1909년에 출생하여 개성 호수돈여고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 전주기전여학교에서 재직하게 되었다.
교회 일과 남들이 외면하는 거리의 정신병자를 보살피며, 고아들을 손수 업고 다니는 거리의 천사로 살았다. 그 시절에는 거리에 정신병자도 고아도 많았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24세의 나이로 아깝게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다. 아침 한 끼 금식하면서 기도로써 모든 일을 실천했고 서문밖교회 옆에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을 처음으로 세웠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예수님을 닮으려 했던 한 여성의 삶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의 저자 배은희(裵恩希) 목사의 삶 또한 그러하였다. 저자는 경북 달성(현 대구 달성) 출신으로 17세 때 일찌기 부친을 여의고 잠시 방랑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자신이 살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였으며, 교회 안에 숭덕학교(崇德學校)를 세워 피폐했던 농촌계몽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스스로 전도자를 자임하며, 학교장으로, 젊은이들의 스승으로 1인 3역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 후 평양신학교 재학시절에는 1919년 3.1독립운동을 맞이하여 학생시위 운동에 앞장서 민족의 울분을 터트리기도 하였다.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3월 8일 대구만세시위에도 주도적으로 가담하였으며, 이후 일제 당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일경의 눈을 피해 마산과 부산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다.
당시 경주지역 계남교회 시무할 때 전주 서문밖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던 만남으로, 1920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1921년 서문밖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활동을 하면서 1927년 경성(京城)에서 조직된 국내 유일의 민족유일운동으로 조직된 신간회(新幹會) 전주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지역의 민족의식과 자립자활의 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교회 안에 유치원 설립과 야학을 개설해 계몽과 교육에 앞장섰다. 야학은 한때 학생수가 5-6백명에 달하였다.
또한 배 목사는 농촌교회 부흥운동을 모색하며 1929년부터 ‘독신전도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는데 그 대상 지역은 전북 일대였다.
후에 ‘독신전도단’을 ‘복음전도단’으로 개편하여 재출발했으나 일제와 신사참배 문제로 갈등이 생겨 강제해산 당하는 아픔을 겪고 투옥되기도 하였다.
배 목사의 청년과 다음 세대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보여준 조선성자 『방애인소전』책 서문에서 “그를 보고 들은 대로 또는 그의 고향인 황주를 찾아 그의 부모님들에게 눈물겨운 일화도 듣고, 남겨둔 적은 일기 두어 책을 얻어서 옛사람이 된 방애인양보다 장차 움터 나올 미래의 수많은 조선의 성자를 향하여 이 적은 전기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배 목사는 이 책을 통해 “기독 청년에게 희생은 사랑”이라며 “청년들이 조선 교회를 살리자”고 역설하며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었고, 젊은이들의 신앙적 스승이 되었다.
배 목사는 1932년과 1936년 두 차례나 전북노회 노회장을 역임하며, 1936년 산상보훈을 해설한『천국오강(天國五講(성서연구사)』을 출판하였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소화 3년(1925) 무주군 적산산성에서 청년들에게 산상보훈을 강해하였고, 그 해 8월 경성시 우이동에서 개최하는 조선 남녀 기독청년연합회에서 산상보훈을 강해 한 일이 있어 청년들의 요구에 응하여 방인근 선생의 주선으로 소화 6년(1931년) 출판 인가가 되었으나 출판비로 어려움을 겪다 몇 몇 친구들의 원조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1939년 출판한『기독교는 무엇인가 (상편, 성서 연구사)』라는 그의 설교집은 그가 복음을 들고 강단에 선지 30년을 회고하며, 시대사조를 따르는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회개, 참회를 공개하며 기독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인생관, 신관, 속죄관, 진리관, 생명관, 신앙관, 심판관, 천국관 등 11강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렇듯 목회와 저술을 통하여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신앙적 문제에 깊은 성찰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1943년 일제 패망 직전에 더 이상 교회에 머물며 정상적인 목회활동이 어렵게 되자, 스스로 전주교회를 사임하고 건강 악화로 요양하며 그의 사역은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일제가 패망하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으며 전북치안대책위원장을 맡았고, 1946년 광복 이듬해인 6월 12일 서울 승동교회(勝洞敎會)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2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까지 선출되었다.
해방 직후 혼란기에 처했던 교회를 이끌어갈 총회장으로 선택받은 것은, 그의 올곧은 신앙과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 6.25전쟁 중이던 1951년 경북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목사로써 해방된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영광과 기회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조국에서 신앙의 정도를 걸어가고자 고뇌했던 한 목회자가 남긴 세 권의 유작을 주목하게 된다.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신앙스승이 된 배은희 목사의 삶의 여정, 그래서인지 저자 배은희 목사의 삶과 신앙이 아름답게 돋보인다.
이효상 목사(교회건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