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7) 고백의 기도
사람들은 보통 기도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말한다. 기도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도가 불변하신 하나님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면, 수많은 간구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기도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하나님, 명문대 합격시켜 주세요. 하나님, 좋은 직장 취업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 꼭 맞는 배우자 허락해 주세요.”
아무리 많은 간구의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불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뜻일 뿐이다.
어떻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분은 단지 그분의 길을 갈 뿐이고 우리의 기도는 그저 소원을 털어놓는 것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인가? 그분은 전지한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이 모든 것을 털어놓기 전에도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신다.
다시 말해, 절친한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과 같지 않다. 절친한 친구는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 알게 되므로 꼬치꼬치 케묻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가?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 그분은 케물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 성급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고백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어렵게 회개와 후회의 운동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특별히 고백은 더 쓸데 없다는 것이다.
이미 고백하기 전, 하나님은 그 고백의 내용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런 그 분께 고백한다 한들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기도하는 우리의 저 속 깊은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예가 우리에게는 더 맞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기도로 하나님을 변화시키려 했던가! 불변하신 하나님을 말이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수많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기도한다.
“전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작은 저에게 무엇을 할 수 없겠습니까! 당장 저의 이 어려운 처지에서 구원하여 주소서!”
물론 그래도 하나님은 응답이 없으시다. 하지만 일천번제를 잘못 해석한 결과, 천 번 정도 계속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천 번을 기도해 보라! 하나님이 변하시는가를! 절대로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것은 내가 장담한다!
확실한 건 이것이다. 이런 자들이 진정 회개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렵던가! 하나님을 변화시키려 했던 것에 대하여 회개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따라서 진정한 설명은 유일하게 하나이고, 이것만 바람직하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다만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이다. 곧 하나님은 당신의 고백에서 어떤 것도 찾지 않으신다. 어떤 죄도, 어떤 허물도! 그것은 당신의 절친들이 찾는 것들이다.
다만 고백하는 자가 찾는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전지하신 분께 고백함으로써 먼저 알게 되는 것은, 당신이 마음 속에 은밀하게 숨기려 했던 많은 것들이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의미다. 오직 이때만, 이 고백의 때만 사람은 마음이 성결해진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