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장경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류의 4대 발명품은 돈, 수레, 에너지, 그리고 (기업 조직으로서) 주식회사라고 한다. 서양이 1인당 소득 수준에서 중국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1750년경부터인데, 서양이 동양을 앞서게 된 것은 서양이 '주식회사'라고 하는 기업 조직과 이를 활성화하는 '시장경제'라고 하는 경제체제를 먼저 발견하여 실용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시장경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주: 시장경제는 자유경제,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유기업경제라는 말로도 불린다.)
시장경제의 본질은 '자발적 교환을 통한 사회적 협동'
인간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사회는 사람들이 분업을 통해 서로 교환하고 협동하는 사회다. 인간사회가 분업을 통해 협동사회가 된 이유는 개개인은 능력, 선호, 개성 등에서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개인차가 있기 마련인 개개인이 자급자족보다는 각자가 상대적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즉 비교우위(比較優位)가 있는 일에 특화(特化)하고 협동한다면 사회는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발적 교환과 사회적 협동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시장이다.
남대문시장은 항상 붐빈다. 남대문시장은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삶에 대한 생동감이 넘쳐난다. 남대문시장은 조선 선조 때 처음 생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자연스럽게 생긴 시장이다.
이렇듯 시장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과 생산물을 '자발적으로 서로 교환하고 협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지 누가 지시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발적 교환을 통한 사회적 협동이 시장경제의 본질이다.
자발적 교환은 왜 이뤄지는가?
자발적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환의 결과 이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발적 교환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에서 이익이란 사적 소유를 뜻한다. 따라서 자발적 교환이 이뤄지려면 사적 소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적 협동은 왜 이뤄지는가?
연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자. 연필이 만들어지려면 원자재, 장비, 기술 동원에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동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연필 제조에 관여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연필을 원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다. 연필을 만드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서로 다른 종교를 믿고, 심지어는 서로 미워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연필이 만들어지는 것은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협동은 이익이 있기 때문에 이뤄진다.
자발적 교환과 사회적 협동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자발적 교환과 사회적 협동은 가격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밀튼 프리드먼에 따르면, "가격시스템이란 중앙의 명령 없이, 사람들을 서로 대화하게 하거나 서로 좋아하게 할 필요 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서로 협동하게 하는 기구(mechanism)다." 가격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가격이다.
가격이 자율적 배급(自律的 配給) 기능을 하는 경제가 시장경제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 간의 경쟁을 통해 가격과 교환양이 결정된다. 가격 변화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 때(똑같은 얘기로, 공급이 수요보다 적을 때)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공급보다 적을 때(똑같은 얘기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때) 가격이 내린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가격이 변화하여 시장의 불균형을 조정한다. 이 같은 가격의 기능을 '자율적 배급 기능'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격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자발적 교환과 사회적 협동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러한 경제체제가 바로 시장경제다.
2. 시장경제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출발
사람들은 경제학을 돈 버는 일을 다루는 학문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은 경제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활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분야인데, 1903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이 윤리학으로부터 독립시켜 오늘날과 같이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애덤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國富論)』의 기여가 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이 책을 썼는데, '국부론'이란 긴 원제(原題)의 약칭(略稱)이고 원제는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으로, '어떻게 해야 국가가 번영할 수 있는가'를 제시한 책이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소개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무엇을 추구했는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어떻게 해야 국가가 번영할 수 있는가'를 규명하려 했다. 이를 위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성향을 경제 분석의 기초로 삼았다. 그 첫 번째 성향은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한다'는 것.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이 아무런 더 이상의 변화나 발전을 원하지 않을 만큼 현실에 대해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만족할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을 것이다"고 애덤 스미스는 썼다.
그 두 번째 성향은 인간은 교역(交易)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 스미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기 위해 남들과 교역하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본능은 억제하기보다는 이용하는 것이 부(富)에 이르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미스경제학의 상징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
『국부론』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한다.
"그(주: 수출업자)는 사실상 일반적으로 공익(公益)을 증진시킬 의도가 전혀 없으며, 자신이 얼마나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 해외산업보다 국내산업의 부양을 선호하면서 그는 단지 자신의 안전만을 추구할 뿐이고,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국내 산업을 경영함으로써 그는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전혀 자신의 의도에 들어 있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인용은 어떤 생산업자가 국내 생산을 통해 안전하게 돈을 벌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어떤 이유로 수출가격이 올라)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수출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1,000 쪽이 넘는 책의 423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어 477쪽에도 나온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각자가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이 아니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유도된다. ...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목적에 기여하게 된다."
인용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최고선(最高善)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지나가는 이야기'로 꼭 두 번 등장한다. 그런데도 이 말은 스미스경제학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가격 기구'를 뜻한다. 가격 기구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원을 마치 사람의 손처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주: '가격의 자율적 배분 기능'을 말함) 아담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나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씨 덕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다."
스미스경제학은 이기심이 바탕이 된다고 오해 받는다
앞의 인용에 따르면,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업자나 빵집 주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일을 하게 되는데, 이 결과로 소비자들은 고기, 술, 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스미스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활동에서는 '이기심'이 바탕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애덤 스미스는 오해를 받아 왔고, 이 오해는 시장경제에 대한 오해로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결코 최고의 원칙이나 유일한 원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다만 친절, 박애, 희생정신보다는 이기적 본능이 인간에게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을 뿐이다. 그는 경제학자 이전에 도덕철학자였고, 목사의 아들이었다.
이기심은 나쁘지 않다
그러면 '이기심'은 나쁜 것인가? 밀튼 프리드먼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의 '이기심'은 인간의 경제 활동 뿐만 아니라 모든 활동에서도 바탕이 된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선교사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선교지로 떠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이기심의 발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에 대한 오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경제발전의 믿음직한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장경제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란 물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지탄받곤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반(反)기업정서가 유별나게 심하고, 부자가 죄악시(罪惡視)되는 나라다. 시장경제가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체제라는 오해는 이제 풀려야 한다.
서양은 다르다. 이탈리아를 보자. 이탈리아어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뜻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기업인이 이익을 남기지 못해 세금을 내지 못하고, 종업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고, 나아가 처자식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그것은 죄 중에서도 최고의 죄,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된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경제를 탄생시켰다
스미스경제학의 상징인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를 탄생시켰다. 따지고 보면, 시장이란 이기적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다. 시장은 친척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심지어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들끼리 벌이는 대부분의 일에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이를 가르쳐준 애덤 스미스는 243년이 지난 지금에도 존경받는 스승으로 살아 있다. 역사상 대표적인 자유주의·시장주의자로 알려진 하이에크는 만약 시장경제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
시장경제의 대표적 장점의 하나는 시장경제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은 연구 분야가 폭넓은 학문이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정형화(定形化, stylized)하여 분석한다. 예를 들면, 경제학에서 소비자는 '모두 효용을 극대화하고,' 기업가는 '모두 이윤을 극대화하는' 존재로 가정하고 정형화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한 예로, 경제학 분야에 '거시경제학'이 있는데, 이는 한 나라의 경제활동을 '정부, 소비, 투자(기업), 해외(수출입)' 네 부문으로 나누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총계(總計, aggregate)하여 분석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제학 분야는 거시경제학처럼 '개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폭넓은 경제학 분야 가운데 '개인'을 다루는 분야가 있다. 바로 '시장경제'다.
인류 역사는 한 마디로,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그래서 자유는 소중하다. 시장경제에서는 자유주의 이념이 바탕이 된다. 인류의 사상 가운데 핵심적 가치를 개인의 자유에 두고 발전해 온 사상이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자유,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치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개인을 사회의 궁극적인 존재로 강조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렇게 발전해 온 자유주의의 실천적 측면이 시장경제다. 그래서 시장경제에는 개인이 등장한다.
3. 성경은 '시장경제 교과서'
나는 경제학도로서 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하는 경제체제라고 믿는다. 시장경제는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생겨나 인류를 잘살게 해왔다. 그러한 시장경제는 어떤 원리, 이를 테면, 자발적 교환, 사적 소유권, 법치, 자유기업, 경쟁, 인센티브 등이 바탕이 된다.
이들 원리는 성경에서도 발견되어 나에게 '성경은 시장경제 교과서'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박동운의 경제와 기독교>에서 자유주의·시장경제 시각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종교가 되었는가?'를 다루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