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아원…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가는 아이도”

[2019 북한자유주간⑭] 인권 토론회 열려(2)

▲북한 고아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미주 기독일보

▲북한 고아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미주 기독일보

제16회 북한자유주간 5일째인 2일 오후 2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가정연구위원회(family research council) 건물에서 북한 고아들에 대한 인권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온 한 북한 고아원 출신 탈북 여성의 증언과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의 발언을 아래 요약했다.

북한 고아원 출신 탈북 여성 증언

고난의 행군 때,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했지만 배급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이 쇠약해지고 배급도 중단돼 앓다가 돌아가셨다. 결국 나는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사람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고 식인을 한다는 흉흉한 소식까지 들렸다. 아사자 규모가 누구는 100만 명 또는 300만 명이라고 할 정도로 비극적인 기간이었다.

당시 엄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중국으로 장사하러 떠나셨다. 하지만 엄마는 어딘가로 팔려가 돌아오실 수 없었다.

우리는 4남매였지만 이후 모두 흩어지게 됐다. 나와 막내 남동생은 고아원을 가게 됐다. 내가 간 곳은 당국이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는데 3층짜리 협소한 건물에 정말 많은 아이들을 있었다. 그 중에는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가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곳 생활이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남동생과 같이 탈출했다. 탈출 후 건강이 좋지 않아 할머니 집으로 갔다가, 몸이 나은 후에는 할머니에 의해 다른 고아원으로 가게 됐다.

새로운 고아원은 부부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170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고아원을 운영했다. 그렇게 운영하다 보니 나라에서는 영웅이라는 호칭을 줬고 굉장히 유명한 고아원이 됐다. 그래서 중국이나 각 곳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다.

지원이 나오면 국가에서 부대가 따라온다. 그리고 중국에서 온 지원 단체가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반을 실어간다.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부부가 팔아서 이득을 챙기고 아이들에게는 하루 두 끼 먹을 수 있는 식량만을 제공했다.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했다. 곧바로 2시간 가량 밭에서 일하게 된다.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기상구호를 외치며 마을을 뛴다. 기상구호는 강성대국이었다. 그렇게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북한 사적지 청소를 했다. 그후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다. 어린이들은 학교로 언니와 오빠들은 일터로 갔다.

학교 일과를 마치면 고아원으로 하교를 한다. 하교 후에는 산에 오른다. 하루에 한 단씩 나무를 해온다. 낫이 없어 손으로 나무를 해야 한다. 동생이 그 때 나이 6살이었고 나는 10살이었다. 남동생이 너무 어리다 보니 내가 항상 동생 몫까지 두 단을 했어야 했다. 남동생이 너무 작아서 그 짐을 매고 올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몫까지 같이 매고 내려왔다.

나무를 못하면 저녁 식사를 못했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에 다 같이 생활총화처럼 하루총화를 한다. 하루에 잘못한 것들, 못한 것들을 말해야 한다. 본인 뿐 아니라 다른 친구의 잘못까지 눈여겨보다가 말해야 했다. 공동생활을 하니 한계가 있어서 친구들과 돌아가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할 테니 너는 저런 말을 해라"는 식으로 짜기도 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훈계를 받는다.

그 다음에는 오락회를 갖는다. 춤추고 노는 시스템인데 그 전에 울었던 사람도 활짝 억지로 웃어야 했다. 오락회가 1시간 끝나면 10시에 점호를 한다. 그 생활이 고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부부의 아들 3명이 있었다. 아내가 다 있는 성인들이었다. 그 부부의 아이들은 고아원의 여자 아이를 자기의 노예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을 지명한다. 그렇게 지명이 되면 오빠가 하라는 대로 무조건 해야 한다. 말을 안 들으면 170명을 모아 두고 때린다.

그러면 다음날 엄마는 그것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엄마가 보호를 해주는 편이었다. 외부에 친척이 있어 말이 새 나갈까 조심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오빠의 말을 안 들은 다음 엄마의 허락을 받아 시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빠에게 보고를 안하고 갔다고 170명이 다 모여 있었다. 동생이 나보고 이제 죽었다고 했다. 엄마한테 보고하고 갔다고 했지만 아이들을 그 겨울에 신발을 벗고 30분을 운동장에 서 있게 했다. 그리곤 허리띠를 가지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돌아와 들어갈 수 있었다.

여러 곳을 맞아 손과 다리가 아팠다. 한 달을 치료하면서 엄마 방에 있었다. 아빠 방에 한달 있으면서 지내다 보니까 오빠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예쁜 아이들은 부부방에서 함께 지낸다. 엄마가 새벽 2시에 일을 나가면 아빠는 학대를 한다.

한 달쯤 지나니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갈 데가 없어 서성이고 있으니 식당에서 잠자는 언니들이 들어오라고 했다. 언니들은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안다. 그 뒤 나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빠의 말을 잘 듣고 참으면 직책을 갖게 된다. 엄마는 친척들이 외부에 있고 해서 이야기가 새나갈까 봐 나를 다른 고아원으로 보냈다.

그곳에 가서 머슴처럼 일했다.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운영하는 남자 분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식당 일을 하고 와서도 그 남자의 몸을 다 펴주고 로션도 발라줘야 했다. 3개월 일했는데 너무 힘들어 늑막염을 앓게 됐다.

결국 이전 고아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그 때가 19살이었다. 아빠 눈 밖에 나고 오빠 눈 밖에도 나다 보니 삶이 굉장히 힘들었다. 20살이 되면서 탈출을 결심했다. 그렇게 고아원을 탈출 해 할머니에게 갔다. 할머니는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나왔느냐며 다그쳤다. 그 후 얼마 동안 친척집에 살았다.

남동생은 누나 없이 3개월을 지내다가 배에 물이 차는 병에 걸려 고아원에서 나오게 됐다.

친척이 없는 아이들은 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 남동생은 친척이 있어 죽으면 안됐기에 병이 나을 때까지 지내라고 할머니 집에 보내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시 고아원에 가라며 화를 냈고 다른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잘 곳이 없었다. 단칸방 남의 집을 빌려서 장사를 했다. 하지만 계속 빚만 지게 됐다. 남동생 약을 사다 보니 빚이 생긴 것이다. 고리대금을 썼고 대금을 갚지 못해 맞기도 했다.

남동생은 나를 엄마처럼 따랐지만 빚쟁이들이 와서 괴롭히니 탈북하라고 했다. 나는 '누나가 너를 두고 어떻게 사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동생은 조금 있으면 어차피 결혼할텐데 결혼 했다고 생각할테니 이제 가라고 했다.

탈북을 결심했지만 중국에 오는 것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곳을 선택을 했다. 중국에서 애를 낳게 됐다. 당시 나이가 21살이었다. 아이를 낳았지만 호적에는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들이 6개월일 때 또 탈북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가 있는 탈북자는 왕따를 당했다. 아기가 울면 잡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면제를 준비했다. 6개월 아기에게 수면제를 먹여가면서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됐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금도 누군가는 제가 살았던 고아원에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탈북자이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나와 같이 고아생활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나는 북한 인권을 위해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대표 발언

북한에 있는 고아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각 도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그리고 지방에서 운영하는 지방 고아원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외국인이 와서 볼 수 있는 고아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고아원은 저희 북한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잘 돼 있다. 간혹 이 고아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북한이 참 좋은 나라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최근 탈북해 중국에 넘어와 있는 꽃제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 고아원은 한마디로 노예를 가둬두는 장소다. 오전에는 공부시킨다. 30년 가까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오후에는 밭에 거름을 낸다. 먹는 것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꽃제비 생활을 시작한다. 지방에서 공급받는 것이 열악하다. 거기서 선생들이 떼먹고, 관리위원들이 또 떼먹고, 힘 있는 사람이 떼먹다 보니까 먹을 것이 없다. 그러니 4월 그 추운 날씨에도 살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마음) 맞는 아이들끼리 뭉치고 마음이 좋은 중국사람 집에 가 밥을 얻어 먹기도 한다. 그래도 남자들은 생존한다. 여자들은 거기서 그냥 팔리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 노예가 된다.

보여주기식 고아원이 있다. 이것은 김정은이 자기가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황당한 쇼를 하는 것이다. 그곳에 어려운 고아들이 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기준은 김정은에게 충성했던 충성파의 자식들이다. 이것이 북한 현실을 알려주는 고아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참 부끄러운 것은 이렇게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에서 북한 꽃제비들, 고아에 관심을 가져주고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꽃제비를 싫어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국력을 봤을 때 얼마든지 이 들을 살릴 수가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지금 일본 종군위안부 문제로 70년을 끌고 있다. 지금 중국에는 18세 미만 4만 명이 떠돌이 여자로 있는데 이들의 인권 이야기 또한 70년 후에 또 떠들어야 하는가. 사람의 인생은 나이를 돌릴 수가 없다.

애들은 살려라. 그 악마의 소굴에서 나온 애들, 제일 가까운 이웃나라 한국에서부터 거부당하니까 갈 곳이 없는 형편이다.

가족이 소중한 것은 북한 사람들도 똑같다. 대한민국은 동물보호법이 있다. 개도 보호를 받는 나라다. 그런데 탈북자, 일명 미성년자가 보호를 못 받는 나라이다. 지금 한국이 힘이 못 되고 있으니 세계가 일어나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자유북한운동도 돈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인육을 먹었다는 나라는 못 들어봤다.

악한 지도자 밑에 사는 북한 고아들. 탈북 고아들. 힘을 합쳐 그들에게 희망을 주라. 한 교회가 한 사람 살리기 운동. 그것이 김정은에게는 총알보다 무섭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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