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19 유관순> 윤학렬 감독
안티 크리스천이이었고 불신자 중 불신자였던 윤학렬 감독. 그는 ‘오박사네 사람들’, ‘LA 아이랑’ 등 시트콤 1세대 방송 작가로 활동하다, ‘오! 해피데이’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특히 그는 무속인들의 투자로 드라마 제작사까지 설립할 정도로 교회와는 거리가 멀었던 자다.
그런 윤학렬 감독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후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삶의 이야기와 지역교회의 사명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 <1919 유관순>도 연출했다. 최근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도 영화 관람 운동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 원래 불신자로 무속신앙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는데요.
“제가 희곡을 전공했는데, 그러다 보면 굿을 연구하게 돼 있습니다. 신과 제사, 절대자를 숭배하는 행위에서 음악, 연극, 미술, 모든 예술 모든 문화가 파생되거든요. 민속학을 부전공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무속인과 교류하면서 이름을 날리면서 보람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게 다른 신을 섬기는 겁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자신한테 절을 하라고 합니다. 십계명에도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 땅이 선교사님들이 오기까지 뭐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어둠의 땅이었어요. 그런 땅에 하나님께서 선교사들을 보내시고, 그분들의 피로 이 땅이 회복되고 축복받게 된 것을 알게 됐죠.”
-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나요?
“무속인 드라마 제작 사무실 옆에 성형외과가 있었는데, 거기 권사님이 절 보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더니 제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교회 한 번 데리고 나가려고 새벽 2~3시까지 기다리기도 하셨죠. 한 번은 어떤 개그맨 분이 절 찾아와서 손바닥만한 성경책을 주더니 ‘나의 하나님이 감독님을 사랑하신다’며 우는 겁니다. 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 하면서 왜 우는지 몰랐고, 성경은 쓰레기통에 버렸었죠. 또 어떤 택시 기사님은 장로님인데 제게 ‘특별한 분 같다’고 ‘기도해줘도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불자는 기도해주겠다고 하면 대부분이 좋아해요. 참 여러 곳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형외과에 계신 권사님이 강도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어쨌든 먼 길에서 기도해주러 오셨으니 기도를 받는데, 갑자기 제가 눈물 콧물 흘리면서 20년도 더 된 오래 전 작은 교회에서 새벽기도한 장면이 스치는 거예요. 그때 마음 속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지켜보고 너와 함께 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후 집에 있던 부적도 다 떼고 장모님도 다른 종교를 믿으셨는데, 가족 복음화가 다 됐습니다.”
- <1919 유관순>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원래는 북한 인권 영화를 준비했었어요. 억류됐던 임현수 목사님이라던가, 북한의 잘못된 구조를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가진 인권 영화를 만들려 했었죠. 그러다 작년에 서대문 역을 가는 도중 어떤 약속이 취소되면서 옆에 있던 서대문 형무소에 가게 됐습니다. 거기 서대문 8호 감방이 재현돼 있는데, 100년 전 기독교 여성 운동가의 삶이 다 기록돼 있는 겁니다. 그날따라 그게 눈에 선명히 보였어요. ‘이런 신앙인들이 있었구나. 3.1운동이 단순히 나라를 되찾으려 한 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던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 <1919 유관순>은 비교적 노골적인 기독교 영화 같았는데요, 이런 기독교 영화는 처음이신가요?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도 기독교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철가방 우수氏’라고, 중국집 배달하시던 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불우한 고아 출신이시고 전과 4범인데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그 후 고시원에 살고 월 72만원을 벌면서 많은 어린이를 도와주다 교통사고를 당하셨죠. 사람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고 다음에 ‘지렁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집단 따돌림, 청년 자살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근본적인 대안을 생각하며, 대다수 다중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또 지역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제작한 영화가 있습니다.”
- <1919 유관순>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당시엔 하나님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대인데, 먼저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건국 당시 이승만 장로가 제헌국회에서 목사에게 기도를 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100년 전 모두가 무서워할 때 소녀 유관순은 광장에 나와 무리를 이끕니다. 그녀 말고도 어린 학생, 기생, 임산부와 같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야기합니다. 목사에게만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사명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 전도 영화 관람 운동 이후 반응은 어땠나요?
“빼앗겨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소중한 것을 소중한지 모르고 귀한 걸 귀한 줄 모릅니다. 특히 아이들과 청년들이 ‘정말 저랬었냐?’고 많이 물어봤습니다. 탈북청소년을 보면 펑펑 울면서 못 일어나기도 합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아이들은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거든요. 목사님들도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얘기해주셨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민감해지니, 하나님께서 우릴 그냥 만들지 않았고, 우리와 함께 이루고자 하신 일들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우리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저를 문화와 관련된 영적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시려 하시려는 거 같았어요.
문화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무시무시합니다. 누가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느냐에 따라 문화의 도구가 달라집니다. 영화와 영상이 복음의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문화를 통해 복음의 불이 일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