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 (10) 위대함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 없다. 이런 마음은 필연적으로 분열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설정한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절망이고 달성한다 해도 종국에서는 절망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함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절망이요, 좌절이다. 위대함을 성취한다 해도 절망인 이유는 그는 더 큰 적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허무”라는 적이다.
막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이렇게까지 인생에서 노력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따라서 위대함을 마음에 품으면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절망은 마음이 분열된 상태다. 절망 중에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수 없다.
약한 자, 그는 악에서 자기 자신을 떼어낼 수가 없다. 악한 자, 그는 선에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게 절망의 본질이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선에 저항하며 악을 품는다 해도 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모든 반역이 마치 이와 똑같다. 일반적으로 왕은 반역에 의해 폐위되는 일이 발생한다. 왕은 반역자들로 인해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럼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은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지상의 왕과 같지 않다. 곧,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은 하나님을 폐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어떤 반역도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공격에 의해 다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을 향한 공격을 하나님은 언제나 공격자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돌려놓고 만다. 나는 아이들과 장난하고 놀 때, 가끔 아빠를 때리려 하는 손을 돌려 스스로를 때리게 한다. 그럼 아이는 그런 자기 자신을 보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공격은 장난이 아니다. 심각하다.
위대함을 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보라. 하나님께 삿대질한다. 위대함을 구했건만, 그토록 대단한 일을 꿈꿨건만 도대체 왜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져야 구원하시겠냐는 거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향한 공격처럼 보여도, 이미 자신의 내면의 절망이고, 결국 내적인 분열로, 두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이런 싸움이 겉보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삿대질인 것처럼 보여도, 심층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이 분열되어 스스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건 또 하나의 비극이다. 위대함을 꿈꾸다가 스스로 싸운 꼴이니까. 자기 자신과 싸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차라리 외부에 있는 적과 싸우는 것이 낫다.
스스로 싸우고 있음에도 그게 싸움인지도 잘 모른다. 스스로 자멸하고 있으면서도 자멸인 것도 잘 모를 때가 많다. 두 마음을 품은 상태여서, 혼란이 말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사도의 권면대로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약 4:8).
위대함을 성취한 사람도 이와 다를 것도 없다. 허무에 빠져 내적으로 분열된 상태에 이르면 그나마 다행이다. 왜냐하면 이런 절망은 곧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축복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위대함을 성취한 사람들은 보통 자아도취 상태에 빠진다. 마치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런 위대한 자가 된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이런 자의 착각은 너무 커서 스스로 그런 상태에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일명 ‘교만’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하나 뽑자면 이런 자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고칠 수는 없다. 그러나 위대함을 성취하고도 허무에 이른 사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결국 이 절망을 통과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이제 글을 마무리해 보자. 어떻게 두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의 혼란상태에서 벗어나 어떻게 진리 안에서 선을 품을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한다. 마음을 성결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을 고백해야 한다. 얼마나 세상 속에서 위대해지려 했는지를 하나님 앞에 이실직고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실 것이다. 마음을 성결하게 하실 것이다. 그때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될 것이다. 더욱 더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 진리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속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정당화하려는 어떤 신학, 어떤 사역도 위험하다. 그 근본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위대함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