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11) 그리스도인의 이중성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이 두 마음을 품은 것인지 나누었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더 나눌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두 마음을 품은 것이 무엇인지 나누기 전에 한국교회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마 고난당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수 믿으면 더 큰 고난이 온다고 새가족 성경공부 시간에 가르쳐 보라. 몇 명이나 예수님을 영접할 것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의 고통을 제거하고 삶의 희망을 얻고자 종교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구하는 것이 세상의 성공, 명예, 위대함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성공해야 하고 위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논리일 것이다.
누구나 자식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동안 개신교에서 예수 믿으면 범사에 형통한다고 얼마나 강조해 왔던가.
하지만 성공이나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자식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여전히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의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는 무엇이 두 마음을 품은 것이고, 무엇이 한 마음을 품은 것인지 철두철미하게 파헤친다. 엄밀하게 말해, 그리스도인은 성공이나 명예나 위대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것만 구하는 데 마음이 하나가 된다 해도, 마음은 분열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일단 다시 한 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이 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면, 진리 안에서 선을 품어야 한다. 한 가지를 마음에 품는 것이 가능하려면 오직 선을 품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고, 그 선을 실현하려면 ‘진리 안에서’ 선을 품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두 마음을 파헤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두렵고 또 두렵다. 두 마음을 언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서로 말하지 않도록 기도하자. 왜냐하면 비판은 여전히 두 마음을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마 7:3).
이 이야기를 더 전개하기에 앞서, 각자 자기 자신만을 살피자. 여기에는 필자인 나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은 구속하지만 정작 말하는 나는 구속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내가 제외되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되지 않게 하소서. 이것도 여전히 두 마음을 품은 것이니까.
설교자가 다른 사람들을 설교로 위로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교자 자신만은 제외된다.
정작 설교자 자신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위로받을 수 없고 은혜 받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설교자가 범할 수 있는 치명적인 두 마음이다. 설교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위로받기를 거부한 것이고, 결국 여기에는 교만이 숨겨져 있다.
이런 이야기 역시 이미 치명적인 두 마음일 수 있다. 설교자를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조금 더 마음을 성결하게 하자. 이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하도록 힘쓰자. 또한 앞으로 다룰 이야기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
설득의 즐거움을 느끼기 원하는 마음, 누군가를 설득해서 만족하기 원하는 마음,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만족감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두 마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해야 할 일을 망각한 마음이다. 주여, 이 글이 모든 것을 쫓아내고 오직 선만이 관심사가 되게 하소서!
이처럼 오직 선만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락가락한다. 선을 마음에 품었다가, 어떤 때는 세상 것을 구했다가, 어떤 때는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기도 한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다면, 그래서 이 연약함 속에서도 오직 선을 마음에 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데 승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이 어느 길에 서 있든 필경 선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원컨대, 이 글이 치유하는 일 말고 누구도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원컨대, 이 글이 누구도 화를 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다만 진리가 되게 하소서.
원컨대, 이 글이 진리로 침투하여 숨겨진 것을 폭로하게 하소서.
원컨대, 이 글이 두 마음을 제거해 버리고 선을 위한 마음을 얻게 하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