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칼럼] 민중신학이 전염되는 개요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민중신학 교도는 불어나는가?

▲민중신학 관련 도서들.

▲민중신학 관련 도서들.

민중신학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민중신학 교도는 불어나는가?

민중(民衆)이란 말은 북에서 사용하는 인민(人民)이라는 용어를 남에서 쓸 수 있도록 중화시킨 용어이다.

“뭔 개소리여? 듣는 ‘민중’ 기분 나뻐” 할 성 싶지만, 우선, 같은 민(民)자가 사용되었음에도 국민(國民)이라는 말과 달리, 명시적 계급을 이르는 말이 바로 ‘민중’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명확한 국적을 갖고 그 국가를 구성하는 성원을 뜻하지만, 지배를 받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강력한 전제를 띤 용어 ‘민중’은 국적이 불분명하다.

그래서 프로파간다가 ‘민족’이면 민족으로 휩쓸리고, ‘맘(mom)’이면 맘충으로 휩쓸리고, ‘퀴어(queer)’면 퀴어로 휩쓸리고, 당이면 당이 이끄는 대로 휩쓸린다. ‘국가’를 무력화시키는 카테고라이징(categorizing) 원리가 ‘민중’인 것이다.

민중의 소리, 민중가요, 민중예술…, ‘민중’이란 용어의 쓰임새가 이제는 보편화됐다. 이 단어가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 정착하게 된 데는 개신교 신학자/목회자들의 공헌이 지대하다.

민중(民衆)이란 말에 끌어다 쓰고자 했을 때, 마땅한 원어는 히브리어, 희랍어 성서를 통틀어 아마 네 개 정도가 고려됐을 것이다. 어떤 지역의 거주민을 뜻하는 암(עַם)이라든지, 단순 모임을 뜻하는 카할(קהל), 그리고 단순히 몰려든 군중을 뜻하는 오클로스(ὄχλος)와 라오스(λαός).

이중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차용된 어휘는 ‘오클로스’이다.

이유는, ‘암’의 경우 국가 개념이 희박하고 땅을 종교적 신념으로 섬기던 구약 시기 그 신념을 지닌 개체들을 일컫던 용어이고, 이것을 헬라문화로 옮김에 있어 라오스는 비교적 신분 정체성이 있는 ‘백성’으로 번역되고, 오클로스는 정체성이 특정되지 않은 ‘떼, 무리, 집단’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의 이행에 있어 ‘민중신학’이 초점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 된 신념에서, 이념이든 신학이든 뭉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뭐가 나쁘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 동시대의 수많은 열매로 알 수 있다. “사람이 먼저”인 이념, 교육, 신앙, 공동체 등은 언제나 그 ‘사람’의 자리에 ‘당’을 중심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을 위치시킨 다음, 그 당과 집단의 소수가 이익을 갈취하기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딴다라가 코미디나 특이한 연기를 하고 받는 것도 아니고, 이념 강연을 하고 1,500만원을 챙기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마디로, “사람은 ‘먼지’입니다”.)

사실 이 폐해는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하고 그 자리에 자기를 위치시키는 목사들이 일으키는 폐해를 수천만배 압도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후자의 폐해는 ‘신’이 ‘악신’으로 변용되어 그 세계를 관장하지만, 전자는 그나마 그 ‘악신’마저 사라지기에, ‘법’도 사라진 세계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악신도 신이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고등한 사회일수록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를 신봉하는 이유는 ‘무법천지’가 ‘악법천지’만 못한 까닭이다.

우리나라가 이 민중신학이 전이되는 개요를 살아 숨쉬는 예시로서 잘 보여주고 있다.

민중신학의 초석을 다진 안병무는 살아 생전 자신의 신학을 설파하는 강의에서, 인자 예수를 가르치는 대목에선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우리가 아는 그 예수님이 아니라,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땅도 없는 그 시대의 민중, 곧 그 ‘오클로스’를 떠올리고 운 것이었다고 그의 제자들은 전한다.

‘인자(Son of Man)’를 나사렛의 예수가 아닌, 복수(plural)의 사람들로 규정한 핵심 원리에 기인하는 셈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민중신학인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서에서 흔히 ‘people’로 번역된 어휘들, 곧 단지 ‘많다’, ‘밀려든다’는 의미를 뜻하는 ‘populos’에서 유래한 말 ‘people’이 가진 본래 의미를 ‘민중’(民衆)이라는 개념으로 투사시키려는 시도는, 그 ‘people’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훼손한 것이다.

성서 저자들은 그 어떠한 계급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미로서, 결국 ‘하나님 백성(the people of the Lord)’이라는 의미로 진작시키려 한 것인데, 그만 개나 소나 민중신학은 도리어 낮은 계급(플로레타리아트)으로 찬탈해 버린 격이 되고 말았다.

이를테면, 세례 요한이 “야 이 독사의 새끼들아!” 할 때 그 독설을 처음으로 맞은 대상은 정작 오클로스(민중)였음을 알아야 한다(눅 3:7).

민중이 독설을 맞은 후 곧바로
텔로네스(세금 공무원)도 회중으로 따라붙고, 스트라테우노마이(군인 공무원)도 따라붙어 회개의 세례를 받는다.

그러고 난 다음 이들 모두를 향해 부르기를 ‘오클로스’가 아닌 ‘라.오.스’라 부르는 장면이 누가복음이라는 복음서에 잘 보전돼 있다. (참고로 누가는 가장 급진적 친 플로레타리아트 저자다.)

따라서 기독교 하나님을 오클로스의 하나님으로만 규정짓는 것을 신약성서는 지지하지 않는다.

국한문 ‘민중(民衆)’은 철저히 이데올로기에 의거해 가공된 말임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라오스) 중에는 군인도 있고, 세무 공무원도 있고, 독사의 새끼들도 다 들어있는 까닭이다.

결국 민중(民衆)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계급’인데도, 존재하는 것처럼 운용하고 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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