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위해 선(善)을 원하는 자의 ‘두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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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16) 승리만 원하는 그리스도인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여러분,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악을 악으로 되갚지 마십시오. 선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믿습니까?”

“아멘!”

우리는 종종 이와 같은 설교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설교에 대해 100% 동감한다.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세상에서 승리만을 원하는 그리스도인 역시 두 마음을 품은 자이기 때문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만 선을 원한다면, 보상을 위해 선을 품은 것이고 두 마음인 것은 확실하다.

그는 선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다. 섬기려 한 것이 아니고 선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엄밀해지자. 조금 더 마음이 청결해져야 한다. 아마도 마음이 청결한 자와 두 마음을 품은 자 사이에 경계를 결정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승리를 위해 선을 원하는 자의 두 마음은 굉장히 교활하다. 이 두 마음은 언제나 숨겨진다.

어느 정도냐? 저 분명하고도 아주 분명한 세속적인 두 마음보다 아주 건방지다. 이 두 마음은 진리 안에서 선을 품은 청결한 마음에 가장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착각이다.

높이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저 심연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늘 높이 울려 퍼지는 교만이 저 겸손하고도 비천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 그럴듯한 근사치, 이 그럴듯한 두 마음은 영원하고도 본질적인 구별을 조작함으로써 저 밑에서 흘러나온다.

맞다, 그는 보상을 위해 선을 원한 게 아니다. 그냥 선이 승리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통해” 선이 승리하기를 원했다.

“주여, 제가 선의 도구가 되게 해 주소서! 제가 쓰임받고 싶습니다! 저를 통해 선이 승리하게 해 주세요!”

그는 ‘선택받은 자’가 되기 원했다. 세상의 보상?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경멸하고 있는 것이 세상이니까. 그를 조롱하고 그를 얕잡아보고 그를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가치한 종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가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한 마디만 해볼까? 자긍심은 이런 자가 요구하는 보상이다. 바로 이런 요구에 그의 폭력적인 두 마음이 존재한다. 그래, 폭력적이다. 그가 폭력으로 선을 빼앗고, 폭력으로 참견하고, 선에 대한 봉사를 강요한다.

도대체 왜 선이 그를 통해 승리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안 되는가? 이것은 두 마음일 뿐이다. 이것은 두 마음 속에 숨겨진 고집, 또는 아집이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선을 원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만큼 강력해 보여도 여전히 두 마음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 선과 선의 승리는 별개다. 적어도 그를 통한 선의 승리는 완전히 별개다. 그는 선이 승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면 벌벌 떤다.

혹은 선의 승리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으면 참을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멀미거나 선에 대한 구토 증세다. 참을 수 없는 충성심의 가벼움이다. 이것이 그가 두 마음을 품었다는 증거다.

선의 승리가 지연될 때, 그는 참을 수 없다. 시간 싸움이다. 충성된 종의 삶을 생각해 보라. 충성된 종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승리? 그런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냥 매일에 반복적인 어려운 삶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리 안에서 선을 품은 충성된 종이었다. 그는 선에 의해,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는다. 선은 숫양의 기름보다 순종을 더욱 가치 있게 한다(삼상 15:22).

사람이 밤낮으로 ‘선을 위하여’ 산다면, 그 일로 떠들썩하게 만든다면, 그 일로 요동친다면, 아픈 환자가 침대 위에 몸을 던지듯 시간 속에 자신을 던진다면, 아픈 환자가 옷을 벗어던지듯 자신을 위한 모든 배려를 벗어던진다면, 그가 이 세상의 보상을 조롱한다면,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다면, 그때 그가 상상하듯이 많은 사람들은 그를 열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두 마음을 품었으니까. 토네이도가 꾸준히 불고 있는 산들바람을 닮을 수 없는 것보다 두 마음은 더욱 이 열정을 닮을 수 없다.

이 두 마음이 조바심이다. 모든 조바심은 이와 같다. 이것은 일종의 심술이다. 이 근원은 이미 아이에게 있다. 아이는 시간을 들이지 않으니까.

이것은 저 두 마음을 품은 자에게도 나타난다. 같은 사람에게서 시간과 영원은 화해할 수 없으니까. 그는 선의 느림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긍휼하기 때문에 선은 오랜 고난을 당한다는 것, 자유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은 아무런 힘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약한 자들을 지혜롭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선은 모든 기만을 물리친다는 것, 그는 이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 없이도 선이 살 수 있다는 것, 그 없이도 선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겸손하게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가 두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의 열정으로 보면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선의 승리를 신속하게 처리하려 했던 반역자 유다가 될 수도 있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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