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조선 21] 초등학생이 내뿜은 한 모금 담배 연기
최근 북-중 국경을 다녀온 강동완 교수님(동아대)의 적나라한 진짜 북한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이번 방문길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 교수님은 “쉬운 사진이 아니라, 한 컷 한 컷 담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美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쇼’를 벌이는 동안, 주민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인 실상입니다. -편집자 주
처음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이들이 압록강변에서 줍고 있는 건, 강 건너편 중국에서 떠밀려온 페트병이었다. 한 짐을 지고 일하던 아이가 숲 속으로 들어가더니 입에 문 건, 다름아닌 담배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 정도나 되었을까. 한 모금 담배 연기에 고된 삶의 무게를 내뱉는다 하기에는 고사리 손에 쥐어진 담배 개피가 너무나 잔인하게만 보였다.
고난의 행군 때 먹을 것을 구걸하며 길바닥을 헤매던 꽃제비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굶주림에 할 수 없이 길바닥에서 주워 먹었고, 지금은 강바닥에서 건져낸 빈 병으로 겨우 허기만 달랠 뿐이라는 거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들이 주은 페트병 10개는 옥수수 1kg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페트병은 주로 집에서 밀주를 만들어 담는 용기로 사용된다. 저 아이들에게 1,000억 원의 식량 중 단 한 톨의 쌀이라도 돌아간다면….
2019년 6월 30일. 독재자는 화려한 연출로 거짓의 경계에 섰고, 굶주리는 아이들은 그 독재자의 권력에 가려 생사의 기로에 섰다.
분단의 경계를 용기 있게 넘나들며 평화를 만들어간다고 포장은 해 주면서, 정작 평화가 필요한 저 어둠에는 왜 빛을 밝히려 하지 않는지….
자신들의 권력과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해 경계선에서 한바탕 쇼를 벌리는 동안, 아이들은 분단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해, 저 아이들의 눈망울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었다.
글·사진 강동완 박사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펴냈다.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그들만의 평양>을 추가로 발간했다. 이 책에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바라본 북녘 사람들의 가을과 겨울을 찍고 기록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아가는’ 평양시민이 아닌,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는’ 북한인민들의 억센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강 너머 망원렌즈로 보이는 북녘의 모습은 누군가의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북중 접경 지역은 바로 북한 인민들의 삶이자 현실 그 자체의 잔상을 품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두만강 칼바람은 마치 날선 분단의 칼날처럼 뼛속을 파고들었다. … 그 길 위에서 마주한 북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을 사진에라도 담는 건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고백이다.”
다음은 앞서 펴낸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 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북중접경 2,000km를 달리고 또 걸었다.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이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눈앞에 허락된 사람들만 겨우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으니 망원렌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당겨서 보고 싶었다. 0.01초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분단의 오랜 상처를 담고자 했다.
대포 마냥 투박하게 생긴 900밀리 망원렌즈에 우리네 사람들이 안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찍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렌즈의 초점을 아무리 당겨보아도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저 한 점에 불과했다.
사진은 또 다른 폭력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된 모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고자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손가락은 카메라 셔터 위에 있었고, 눈동자는 오직 북녘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