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조선 23] 북한 민둥산의 이유
최근 북-중 국경을 다녀온 강동완 교수님(동아대)의 적나라한 진짜 북한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이번 방문길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 교수님은 “쉬운 사진이 아니라, 한 컷 한 컷 담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美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쇼’를 벌이는 동안, 주민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인 실상입니다. -편집자 주
압록강 푸른 물이 유유자적 흐른다. 뗏목이라 표현하기에는 생존의 물살이 너무 거세다.
장진강을 출발해 운봉호에 이르는 거대한 떼몰이는 사람과 강이 서로 겯거니틀거니* 하며 생명을 건다.
잔잔한 물살을 따라 흐르던 뗏목도 거친 물굽이에 이르면 순간 고삐를 꽉 움켜쥐어야만 한다. 뗏목 위에 위태롭게 선 두 다리의 힘이 풀리면 거센 물살에 휩쓸려 생을 담보할 수 없다.
나무를 베어낸 민둥산이 폐허처럼 곳곳에 헐벗어 나뒹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압록강에 떠나가는 뗏목 위는 우리네 삶을 담은 작은 우주다. 도란도란 마주앉아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거대한 유람선의 선장 마냥 키를 잡고 상념에 잠긴다.
난파된 배를 구하는 냥 떨어져 나간 떼를 찾느라 동료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도 하며, 심지어 거친 나무등걸에 누워 노루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평생 압록강에서 떼몰이꾼으로 살아갈 손길이 참으로 모지락스럽다*. 아비로 살아가는 생의 굴곡만큼 키를 잡은 팔뚝에는 핏줄이 선연하다.
북한 당국은 연일 압록강 떼몰이를 독려한다. 지난 7월 16일 노동신문은 “례년에 없는 가물로 물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조건에서도 4월말 첫떼를 내린 때로부터 7월 15일 현재까지 2만여㎥의 떼를 압록강 장진강으로 내렸다”고 한다.
또한 “증산돌격전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리고 있는 류벌공들의 투쟁에 의해 떼몰이 실적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선전한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떼무이*를 다그치고 있다며….
*
겯거니틀거니: 서로 겨루느라고 버티는 모양
노루잠: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
모지락스럽다: 보기에 억세고 모질다
떼무이: 통나무로 떼를 묶어 만드는 일
글·사진 강동완 박사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펴냈다.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그들만의 평양>을 추가로 발간했다. 이 책에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바라본 북녘 사람들의 가을과 겨울을 찍고 기록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아가는’ 평양시민이 아닌,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는’ 북한인민들의 억센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강 너머 망원렌즈로 보이는 북녘의 모습은 누군가의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북중 접경 지역은 바로 북한 인민들의 삶이자 현실 그 자체의 잔상을 품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두만강 칼바람은 마치 날선 분단의 칼날처럼 뼛속을 파고들었다. … 그 길 위에서 마주한 북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을 사진에라도 담는 건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고백이다.”
다음은 앞서 펴낸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 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북중접경 2,000km를 달리고 또 걸었다.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이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눈앞에 허락된 사람들만 겨우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으니 망원렌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당겨서 보고 싶었다. 0.01초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분단의 오랜 상처를 담고자 했다.
대포 마냥 투박하게 생긴 900밀리 망원렌즈에 우리네 사람들이 안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찍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렌즈의 초점을 아무리 당겨보아도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저 한 점에 불과했다.
사진은 또 다른 폭력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된 모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고자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손가락은 카메라 셔터 위에 있었고, 눈동자는 오직 북녘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