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칼럼] ‘나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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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위선적 종족주의에 대해
비유 주인공, 강도 만난 자 아닌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 자가 아니라, 강도를 사랑하다니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언명은 일반화된 기독교 최고 가치이지만, 정작 기독교인에게조차 가장 불편한 계명일 것이다.

실행하기 어렵고 급진적 언명이어서라기보다, 그 원수가 어떠한 질적 원수까지를 말하는지 그 범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 모든 원수를 사랑해야 하나? 이를테면 8세 소녀의 생식기와 장기를 훼손시킨 성폭행범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그 소녀에게 ‘기독교적으로’ 촉구할 수 있나? 이를테면 6·25 사변을 일으킨 김일성도 사랑하고 축복하라고 ‘기독교적으로’ 설파해야 하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폭행범은 용서할 수 없어도, 이런 전범(戰犯) 정도는 용서뿐 아니라 존경도 해야 할 것처럼 부추긴다. 이러한 윤리의 불균형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언명의 참된 준거와 가치를 흔드는 것인데도, 명망 있는 많은 목회자가 여기에 부역하는 실정이다.

예수님 최고의 가르침으로 꼽히는 산상수훈에 나오는 이 언명은 본래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의 반제(anti-Thesis)로서 알려졌다. 반제란 기존의 계명을 더 강화하는 방식의 역설을 일컫는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마 5:43-44).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이 언명 중 전제된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이 성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계명이라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해결을 위해 두 가지 해제 가운데서 모색했다. 하나는 “네 원수를 미워하라”가 당대 쿰란이란 공동체의 가르침이었다는 주장. (이에 관한 자료가 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유명한 경구(롬 9:13; 말 1:2-3)에서 유추한 계명이라는 견해.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전통적 관주에서 타당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것이다. 바로 레위기 19장 18절이다.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유대인들은 이 조문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릴 때 ‘동포/이웃’이 아닌 사람은 얼마든지 원망하고 미워해도 된다는 석의를 했다. 즉 “네 이웃은 사랑하라”는 명제에 “이웃이 아닌 모든 사람은 미워해도 되는” 법 해석을 가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탁월한 유권해석인가. 마음껏 미워할 수 있으니! 오로지 이웃만 사랑하면 되었기에 그 이웃이 누구인가는 원수가 누구인지에 따라 상대적 범주 아래 놓이는 게 만드는, 법 실행에 있어 팁이 되었던 것이다.

이웃이 일촌 가족만이면 그 만큼 준수는 가벼울 것이요, 일촌보다는 이촌이, 이촌보다는 삼촌이, 삼촌보다는 사촌이, 그 이상으로 확산될수록 부담은 증가될 것이다.

그 이웃의 궁극적 범주는 형식상은 온 겨레 이스라엘이었지만, 명목상은 사마리아를 제외시키는 전통을 가져왔다. 피는 섞였지만 순혈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 배경 아래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는 극단적 반제가 출현한 것이지만,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한 것은 바로 누가였다. 왜냐하면 그 원수를 김일성 일가나 8세 소녀의 성폭행범 따위로 확대하지 않고, ‘이웃’으로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도 잘 아는 ‘강도 만난 자’의 비유이다.

예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니, 어떤 유대인이 예수께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의 이웃으로서 원수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원수, 바로 사마리아인.

비유가 참 독특한데, 사람들은 이 비유를 들으면 저마다 자신을 ‘강도 만난 자’로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내가 강도를 만나 기절해 있을 때, 내가 선택할 겨를도 없이, 내가 그토록 증오하고 싫어하던 원수가 나를 돕고 간 셈. 그러니 그 원수와 사이좋게 지내라…, 이렇게 적용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마리아인이다. 사마리아인이 바로 나(Ego)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결말을 예수께서
“누가 네 이웃이냐?”
ㅡ라고 되묻고서는,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ㅡ는 언명으로 맺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착한 사마리아 이웃처럼 행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의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성폭행범인가? 전범인가?

오늘날 그 “원수”의 범주를 작위적으로 확대시킨 위정자들, 심지어 기독교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마치 8세 짜리 소녀를 겁탈한 자와 그 소녀를 화해시키듯 만행을 일삼음으로, “원수 사랑”의 진정한 취지를 훼손시키고 있다.

목사들은 이 적성국 전범 일가를 향해 ‘위인 맞이’라도 할 기세이다.

특히 이 평화의 사도들에게는 북한에서 철저히 유린당하는 피해자에 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오히려 그 가해자를 환대하는 특징이 있다.

강도 만난 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강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위선적 사랑과 평화에 동원되는 반일(反日)을 가리켜 ‘위선적 종족주의’라 부르는 근거이기도 하다.

※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주제를 그려놓은 게 있다. 사실 고흐가 친일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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