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조선 24]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최근 북-중 국경을 다녀온 강동완 교수님(동아대)의 적나라한 진짜 북한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이번 방문길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 교수님은 “쉬운 사진이 아니라, 한 컷 한 컷 담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美 트럼프 대통령과 ‘깜짝쇼’를 벌이는 동안, 주민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인 실상입니다. -편집자 주
어느 시인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 노래했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볕을 온몸에 받아 탐스럽게 영그는 아리따움을 바라보았으리라.
하지만 북녘의 칠월은 아이들에게 그리 아름다운 계절은 아닌 듯 하다. 학교 운동장은 텅 비었고 아이들은 교실에 있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초록빛 너른 들녘에 알록달록 무늬를 띄운 건 모두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자드락*에서 하루종일 허리굽혀 잡초를 뽑고 자갈을 주워 담는 건 모두 아이들의 몫이었다.
압록강 끝에서 끝까지 그 어디를 가도 7월 들녘에는 아이들의 노동이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푸서리*를 갈아내는 동안, 한여름 뙤약볕에 아이들의 웃음은 슬펐다.
농촌체험활동이니 체험학습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너무 사치롭고 낭만스러운 표현이었다.
말 그대로 농촌 지원에 나선 아이들은 그저 또 하나의 일손일 뿐이었다. 날이 저뭇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애처로웠다.
북녘의 아이들은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히는” 희망을 노래하지 못했다. 부등깃*마냥 아이들의 꿈은 자랄 새도 없이, 독재의 하늘 아래 산산이 부셔졌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반가운 손님이 그들에게도 와 줄는지….
자드락: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
푸서리: 잡초가 무성하고 거친 땅
부등깃: 갓 태어난 새끼 새의 다 자라지 못한 약한 깃
글·사진 강동완 박사
부산 동아대 교수이다. ‘문화로 여는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서의 한류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찾는 ‘당신이 통일입니다’를 진행중이다. ‘통일 크리에이티브’로 살며 북중 접경지역에서 분단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8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찍은 999장의 사진을 담은 <평양 밖 북조선>을 펴냈다. ‘평양 밖 북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그들만의 평양>을 추가로 발간했다. 이 책에서는 2018년 9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북중 접경에서 바라본 북녘 사람들의 가을과 겨울을 찍고 기록했다.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아가는’ 평양시민이 아닌,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는’ 북한인민들의 억센 일상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강 너머 망원렌즈로 보이는 북녘의 모습은 누군가의 의도로 연출된 장면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북중 접경 지역은 바로 북한 인민들의 삶이자 현실 그 자체의 잔상을 품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두만강 칼바람은 마치 날선 분단의 칼날처럼 뼛속을 파고들었다. … 그 길 위에서 마주한 북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들을 사진에라도 담는 건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고백이다.”
다음은 앞서 펴낸 <평양 밖 북조선>의 머리말 중 일부이다.
“북한은 평양과 지방으로 나뉜다. 평양에 사는 특별시민이 아니라 북조선에 살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2018년 여름날, 뜨거웠지만 여전히 차가운 분단의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999장의 사진에 북중접경 2,000km 북녘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사람, 공간, 생활, 이동, 경계, 담음’ 등 총 6장 39개 주제로 사진을 찍고 999장을 엮었다.
2018년 4월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꿀 역사적 만남이라 했다. 만남 이후, 마치 모든 사람들이 이제 한 길로 갈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의 외딴 섬으로 남아 있던 평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더디며,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이다. 독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북중접경 2,000km를 달리고 또 걸었다.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이기에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눈앞에 허락된 사람들만 겨우 담아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으니 망원렌즈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당겨서 보고 싶었다. 0.01초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 속에 분단의 오랜 상처를 담고자 했다.
대포 마냥 투박하게 생긴 900밀리 망원렌즈에 우리네 사람들이 안겨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망원렌즈로 찍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렌즈의 초점을 아무리 당겨보아도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저 한 점에 불과했다.
사진은 또 다른 폭력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무엇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녘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하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로 편집된 모습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고자 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손가락은 카메라 셔터 위에 있었고, 눈동자는 오직 북녘만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