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특별한 때를 위한 강화(20·끝)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지금까지 연재했던 글은 키에르케고어의 <다양한 정신의 건덕적 강화> 내용을 조금 쉽게 편집하여 제공한 것들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1부의 내용을 오늘까지 20회에 걸쳐 기고하였다. 오늘은 이 책 전반적인 구성을 소개한 후,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의 기록물을 참고하여 말하면, 1부는 윤리적인 글이면서도 아이러니하고, 따라서 건덕적(upbuilding)이고 소크라테스적이다.
1부는 분량도 가장 많고 내용은 조금 어려운 편이다. 2부는 해학적이다. 일종의 농담 같다. 하지만 농담의 진지함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염려하는 백합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백합을 보고 미소를 짓겠지만, 아이러니하게 결코 웃지 않는다. 아마 읽어본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2부는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세 편의 강화가 나오고 이것은 다시 미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서로 관계한다. 3부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고난의 복음>이다. 한 마디로 말해, 3부 고난의 복음이 기독교 실존의 가장 높은 단계다.
전체 구조를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이렇다. 1부는 다양한 정신이 등장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실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정신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마음의 청결이란 “진리 안에서 오직 한 가지만 마음에 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2부는 분량이 가장 적은 글로, 모두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이야기이다. 2부는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새와 백합을 제시한 것 같다. 새와 백합을 통해 사람인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배운다. 하지만 2부는 아직 약하다. 왜냐하면 새와 백합의 실존은 복음을 위해 고난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어는 3부를 제시한다. 2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3부는 복음을 위해 고난당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고난당함의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전체 책의 구성은 이와 같다.
이 중에서, 지금까지 연재했던 1부 내용과 관련하여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1부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마음의 청결이다. 또한 마음의 청결이란 진리 안에서 한 마음을 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마음보다 무엇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인지 두 마음에 많은 서술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직 성공만 바라면 한 마음을 품은 것인가? 오직 명예만, 오직 인기만, 오직 돈만 바란다면 한 마음을 품은 것인가?
이런 세상적인 모든 것들은 오직 이것만 바란다고 해서 한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세하게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직 진리 안에서 선을 품는다는 것은 선을 위해 모든 고난당하기 원해야 하고, 선을 위해 모든 것을 하기 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 길을 가는가? 한국갤럽조사연구에 따르면, 종교를 믿는 이유로 마음의 평안이 67.9%를 차지하였다. 죽음 뒤에 영원한 삶은 15.6%였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보신문에 의하면,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종교를 갖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불교인과 가톨릭인이었다. 개신교는 마음의 평안과 구원과 영생이 각각 45.5%, 37.2%였다.
우리가 오늘 나눈 이야기를 고려하여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통계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본질은 고난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정말로 주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나는 기독교는 성공, 출세, 명성, 인기와 같은 것을 얻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더 심하게 말해, 복음이 그런 세상적인 것들을 얻는 데 봉사할 수 없다.
이런 복음이 가장 타락한 복음이요, 기독교를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개신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가? 지금 한국 땅 교회에서 어떤 설교가 선포되고 있는가?
우리는 이제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 앞으로 나가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신뢰가 이제 바닥을 쳤고, 더 바닥 이하로 내려가서 땅 속으로 들어갈 판이다.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대안이 있다면,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 다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과는 조금도 타협하지 말아야 하며, 복음으로 고난 받는 길 외에는 어떤 길도 갈 수 없다. 그 한 사람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나라는 유지될 것이다.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자기 시험을 위하여>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