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칼럼] 조국 교수의 ‘앙가주망’

|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유대인을 간혹 유태인(猶太人)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으나, 유대인이 맞는 표기이다. 고대 국제사회였던 헬라 시대에 유대인을 유다이오스(Ἰουδαῖος)라 불렀는데, 유다이오스란 말은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가 이룬 지파를 지역적 의미에서 라틴어로 ‘유대(Judea, Ιουδαία)’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오랜 세월 나라 없이 여러 지역에 퍼져 명맥을 지탱할 때에 국가란 개념보다는 종족주의적 의미를 선호한 까닭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넷째 아들의 이름이 나머지 모든 종족의 대표성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 모호하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장자 지위를 박탈당해서라는 사유는 알려졌지만(계모와의 간통), 어찌하여 둘째도 셋째도 아닌 넷째 아들이 서열상 우위를 승계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왕국의 통일을 이룬 군주, 다윗의 조상이었다는 귀납적 사유만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그가 모든 종족의 대표가 된 중요한 인과적인 단서 한 장면을 남기고 있다.

한 아버지와 네 명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종족의 시조들은 애증의 관계 속에 자라났다. 그중 요셉이 아버지의 가장 큰 총애를 받았기에 형제들에게 가장 큰 미움도 받았다. 급기야 모든 형제가 밀약해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넘겼다.

그러나 신의 은총으로 요셉이 온갖 고초 끝에 총리가 되는 역전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무렵, 형제들은 오랜 기근으로 굶주림에 허덕이다 풍작 소문을 듣고 이집트에 입국해 총리가 된 동생을 대면한다. 하지만 요셉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이때 요셉은 우선 같은 배에서 난 친동생 베냐민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자기에게처럼 해코지하지 않았는지) 형제들에게 첩자 누명을 씌운다. 그리하여 형제 중 한 명을 인질로 잡고서 막냇동생을 데려와 첩자가 아님을 입증하라며 일행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아버지 야곱의 입장에서는 아들 하나를 또 잃게 생겼다. 인질로 잡힌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 막내 아들 베냐민을 보내자니 생사를 알 수 없는 요셉처럼 베냐민마저 잃을 것 같고, 안 보내자니 둘째 아들을 잃게 생겼고, 바로 이때 누구보다 강력하게 설득에 나선 인물이 다름 아닌 넷째 아들 유다이다. 유다는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제가 그 아이(베냐민)의 안전을 책임지되, 제가 담보가 되겠습니다. 그 아이가 잘못되면 제가 죄를 다 받겠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여기서 ‘담보’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라브(עָרַב)가 바로 앙가주망의 핵심 본령이라는 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앙가주망이란 자신(또는 자신처럼 소중한 무엇인가)을 담보로 걸고서 위중한 일에 참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담보 행위는 유대/기독교의 교의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체이기도 한데, 이른바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영’이란 하나님께서 ‘담보(ἀρραβών)’로 제공하는 영으로 소개된 까닭이다.

이 같은 앙가주망 명제에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입혀 현대적 앙가주망의 표본이 되도록 파격적 제시를 한 인물은 아마도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일 것이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는 자기 선언에 맞추어 그야말로 ‘자기’에 대한 극단적 자유를 통해 존재 이유를 밝히려 한 사르트르에게 있어 앙가주망 최고의 실천은 아마도 저 유명한 ‘계약 결혼’이었다 단언할 수 있다.

본래 앙가주망(engagement)이란 말은 결혼 서약(wadi-)에서 유래한 말 ‘가제(gager)’로 들어서는(en-) 모종의 약정을 의미했기에, 사전적 정명제로는 ‘약혼(engagement)’을 의미하였으나, 사르트르에게 앙가주망은 결혼이라는 서약을 두고서 남녀 각자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오히려 결혼을 저당잡힌 반(anti)명제였던 까닭이다.

결혼한 남녀가 서로에게 각자의 자유를 저당 잡힌 전통가치에 비해 납득할 수 없는 비윤리가 아닐 수 없지만, 자유를 위해 결혼을 담보물로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는 앙가주망 명제가 보전되는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 정경(canon) 사회를 살면서 모든 유대인들의 시조가 되었던 유다에게나, 해체 사회를 꿈꿨던 사르트르에게나 책무로서의 앙가주망 원리는 바로 ‘담보’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 전 민정수석이 폴리페서(교수직을 내려놓지 않고 정치하는 사람)라는 비난에 직면하여, 자신의 (공직) 참여를 두고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로서 앙가주망”이라 항변한 것은 어리둥절할 뿐 아니라, 전혀 앙가주망과는 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이 ‘담보’로 제공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두었다 되찾은 그 행위는 담보라기보다는 엄밀한 의미에서 ‘은닉’에 가깝다는 점에서, 국회위원 지위를 내려놓지도 않고 선출직 대통령 출마했던 후보만큼이나 도덕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많이 본 뉴스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한국기독교 140주년 기념 한국교회 비전대회’

선교 140주년 한국교회 “건강한 교회 만들고, 창조질서 수호를”

복음은 고통·절망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희망 돼 분열·세속화 얼룩진 한국교회, 다시 영적 부흥을 지난 성과 내려놓고 복음 전하는 일에 달려가며 다음세대 전도, 병들고 가난한 이웃 돌봄 힘쓸 것 말씀으로 세상 판단하며, 건강한 나라 위해 헌신 한국교회총연…

 ‘AGAIN1907 평양대부흥회’

주님의 이름만 높이는 ‘제4차 Again 1907 평양대부흥회’

탈북민 500명과 한국 성도 1,500명 참석 예정 집회 현장과 이후 성경 암송과 읽기 훈련 계속 중보기도자 500명이 매일 기도로 행사 준비 1907년 평양대부흥의 성령 역사 재현을 위한 ‘AGAIN 1907 평양대부흥회’가 2025년 1월 6일(월)부터 11일(토)까지 5박 6일간 천안 호서…

한기총 경매 위기 모면

한기총 “WEA 최고위층 이단성 의혹 해명해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이하 한기총)이 WEA(World Evangelical Alliance) 최고위층의 이단성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다. 2025 WEA 서울총회 조직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한기총은 13일 입장문에서 “WEA 서울총회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WEA 국제이사…

김종원

“다 갈아넣는 ‘추어탕 목회’, 안 힘드냐고요?”

성도들 회심 이야기, 전도용으로 벼랑 끝에 선 분들, 한 명씩 동행 해결 못하지만, 함께하겠다 강조 예배와 중보기도 기둥, 붙잡아야 제게 도움 받지만 자유하게 해야 공황으로 섬기던 교회 결국 나와 책 속 내용, 실제의 ‘십일조’ 정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제42회 정기총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새 대표회장에 권순웅 목사 추대

세속의 도전 속 개혁신앙 정체성 확고히 해 사회 현안에 분명한 목소리로 실시간 대응 출산 장려, 청소년 중독예방 등 공공성 노력 쪽방촌 나눔, 재난 구호… 사회 책임도 다해 총무·사무총장 스터디 모임으로 역량 강화도 신임 사무총장에는 이석훈 목사(백석) …

저스틴 웰비 대주교

英성공회 수장, 교단 내 ‘아동 학대 은폐’ 논란 속 사임 발표

영국성공회와 세계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대주교가 아동 학대를 은폐했다는 스캔들 속에 사임을 발표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웰비 대주교는 12일(이하 현지시각) 영국성공회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에서 “찰스 3세의 은…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