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배경으로 읽는 시편 23편 이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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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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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야의 위험과 하나님의 도우심

광야는 모든 것이 결핍된 곳이며 외부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양 떼들은 그러한 결핍과 위험에 아무런 방비책이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광야에서 경험하는 결핍과 위험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시편 23편은 다섯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어있는 다섯 가지는 광야에서 양들이 경험하게 되는 대표적인 위험들이다.

(1) 양식의 부족과 온전한 만족: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23:2a)

양들은 자신들의 배가 불러 만족스러울 때까지 결코 눕는 일이 없다. 양떼들이 푸른 초장에 눕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안에서 얻는 완전한 만족감을 의미한다. 광야에서 양들이 만족스러울 만큼 배가 부른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그곳에는 배불리 먹을 양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야 지형에 익숙한 유능한 목자는 어느 지역에 풀들이 더 많이 자라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목자를 따르는 양들은 푸른 초장에서 만족함을 누리며 누울 수 있는 양들이다.

또한 여기에서 푸른 초장이란 겨울비에 갓 자라난 기름지고 연한 풀을 의미한다. 여름철 동안 광야는 모든 것이 말라버리지만, 겨울철 우기에 비가 내리면 땅 속에 박힌 뿌리에서 새로운 움이 돋게 된다. 이러한 풀들은 양들에게 더 없이 기름지고 훌륭한 먹이가 된다.

(2) 물의 부족과 쉼을 향한 인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23:2b)

목자의 또 다른 기능은 양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도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강'을 의미하는 '나할'이라는 명사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 자체가 강과 같이 흐르는 물줄기와 연관이 있다. 양들을 이끌어 가는 목자의 의도는 오르지 목마른 양떼들에게 물을 공급한다는 한 가지 목적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 목자의 뒤를 따르는 갈증에 지친 양들의 모습과 그들을 쉴만한 물가로 이끌고 가려는 목자의 적극적인 자세가 이 동사 속에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 양을 돌보는 목자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즉 양 떼들의 뒤를 따라가는 경우와 양들의 앞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다. 전자의 경우는 양 떼들이 넓은 초원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풀을 뜯고 있으며 양들에게 별 위험성이 없을 때이다. 그러나 양들에게 위험이 닥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 급박한 일이 생기면 목자는 양들 앞쪽에 서서 적극적으로 양들을 이끌고 간다. 여기에서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의 모습은 앞장서서 적극적 이끌어 가는 모습이다. 그러한 목자의 적극적인 자세는 더위와 갈증에 지친 양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에서 우러나오는 불쌍히 여김과 관련이 있다.

목자가 인도하는 '쉴만한 물가'는 문자적으로 '안식처의 물'이란 뜻이다. 광야라는 지리적 환경에서 볼 때, '물가'는 곧 사막이나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를 의미한다. 오아시스와 같은 중요한 물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목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지식이다. 그런 일에 익숙해야만 실제로 실력 있는 목자가 될 수 있다.

(3) 광야의 뜨거움과 영혼의 새로움: "영혼을 소생시키시고"(23:3a)

광야는 고온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는 곳이다. 한낮에는 40도 이상의 높은 온도가 계속되며 그러한 온도는 숨조차 쉬기가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광야는 극도로 건조하여 자신도 모르게 몸 안의 수분이 피부를 통하여 증발해 버린다. 그 결과로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광야의 양들은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영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페쉬'의 기본적인 의미는 '숨'이나 '호흡'으로서, 숨을 쉬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living being)를 말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본적인 의미 이외에도 '생명' '자아' '욕망' 등 살아있는 생명이 취하게 되는 모든 현상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네페쉬'는 '목숨'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이 단어에서 파생된 동사형 '나파쉬'는 '숨을 쉬다'는 의미와 더불어 '새롭게 하다'(refresh)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숨을 쉼으로 속의 것을 내뱉고 신선한 공기를 들여 마실 수 있다. 사람은 신체 구조상 새로워지도록 창조되었다. 사람은 숨을 쉼으로 신체 각 부분이 새로운 신진대사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님의 숨 곧 성령을 통하여 새로워진다. 성경은 우리들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후 4:16; 엡 4:23; 골 3:10).

'소생시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돌아오다'라는 히브리어 의미의 동사 '슈브'의 사역형이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분이 곧 하나님 자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영혼이 소생되는 것은 단순한 오락이나 휴가를 즐기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활동을 통하여 얻어지는 일시적인 상쾌함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감으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창조의 신선함이다. 죄의 근원적인 의미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거부(페샤아) 혹은 하나님이 설정하신 목표의 과녁에서 벗어난 것(하타아)이라고 한다면, 영혼의 소생함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 본연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4) 길 없는 광야의 위험과 말씀의 조명: "의의 길로 인도하시도다"(23:3b)

의의 길은 올바른 길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광야에는 길이 없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한 광야에는 제대로 된 길이 있을 수 없다. 설혹 목자들과 그들이 돌보고 있는 양 떼들이 지나가면서 길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광야의 모래바람이 한번 불고 지나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한 광야의 상황 속에서 양들이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목자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뿐이다. 목자만이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의 인도하심은 선택적인 요소가 아니라 올바른 삶을 향한 절대적인 명령이다. 그것을 놓치면 곧 죽음에 이르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까? 그것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딤후 3:16)을 통해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시 119:105) 이라고 하였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지시하심은 위대한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 구원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길이 없는 광야 속에서 하나님 말씀은 등과 같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빛이 되어 마땅히 걸어가야 할 의의 길을 밝혀 주는 거룩한 조명이 되는 것이다.

(5) 위험과 보호의 확신: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23:4)

광야의 위험 중의 하나는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이다. 무엇보다도 광야에서 서식하는 맹수들은 지나가는 양떼들을 노리고 있다. 다윗도 유다광야에서 양들을 돌보면서 양들을 물고 가는 사자나 곰과 맞붙어 싸운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삼상 17:34-37) 광야의 또 다른 위험은 지형이 험하다는 점이다. 특히 유다광야는 산지로 이루어진 곳으로서 가파른 경사지들이 많다. 길을 잘못 들어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깊은 골짜기로 굴러떨어져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한 외적인 위험들은 양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목자의 보호를 받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4절에서 표현된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실제로 깊고 험한 유다광야의 모습을 실감케 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또한 역사적으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숨어 지내면서 생명의 위협 당했던 위기상황을 연상시켜 준다. 죽음은 인간의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이다(고전 15:26). 그런 죽음의 위기 속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와 확신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지팡이'와 '막대기'의 안위하심으로 구체화 된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손에 두 개의 막대기가 들려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막대기가 지닌 두 가지 기능을 의미한다. 목자의 손에 들린 막대기는 사나운 짐승의 공격과 같은 외부적인 위협을 막아주는 무기가 되는가 하면, 동시에 양 떼를 인도하는 자비로운 막대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목자의 보호와 인도 속에서 양들은 비로소 참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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