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D. 귀중한 손님으로 우리들을 영접하시는 집주인으로서의 여호와
시편 23편의 전반부에서 보여준 ‘부족함이 없다’는 주제는 이 시편의 후반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의 배경은 더 이상 광야의 들판이 아니라 아늑한 분위기의 집안으로 바뀌어 있다. 여기에서의 하나님은 광야에서 양들을 돌보며 이끄시는 목자가 아니라, 손님을 집안으로 정중하게 영접하는 집주인으로 등장한다.
전반부에서의 하나님은 삭막한 광야에서 양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적절하게 공급하여 주시는 들판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후반부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여 놓으시고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집안에 좌정하여 계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은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 나타나는 양면성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세상 속에 흩어져 사는 것과 더불어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거룩한 공동체의 모습, 혹은 나그네요 순례자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삶과 더불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게 될 참 안식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차원이다.
비록 시편 23편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두가 목축문화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두 부분은 공통점을 지닌다. 손님을 맞아들이는 집이라고 것이 고급스러운 저택이 아니라 오늘날의 유목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형태의 천막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시편 23편에서의 강조점은 그런 외형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긴밀하고도 화목한 관계성에 강조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23편의 후반부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우리를 가장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고(23:5), 두 번째는 그러한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확신이다(23:6).
1. 우리들을 가장 귀한 손님으로 영접하시는 하나님 (23:5)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들을 영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일반적인 손님이 아니라 가장 귀한 손님으로 맞아들이신다. 광야의 목축문화에서 어느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덕목은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다. 그것은 광야와 같은 위험한 환경에서 나그네를 잘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나그네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손님접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 중에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기 말 것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그네로 지냈었기 때문이다(출 22:21). 이것은 나그네를 접대해야하는 덕목이 단순히 목축문화의 유산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라는 역사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하겠다.
손님 접대를 중요시 여긴 만큼 대접에 대한 여러 가지 예의범절과 절차가 함께 강조되어 있다. 그러한 강조점은 5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손님 접대의 세 가지 절차를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1) 머리에 기름을 바르심
여기에서의 기름은 감람유에 향료를 섞어 만든 것으로서, 집주인이 자기 집을 방문한 손님을 맞아할 때 환영의 표시로서 머리에 바르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시대 제사장이나 왕을 세우기 위하여 기름을 붓는 의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그러한 차이점은 각 경우에 사용되는 동사 자체가 다름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제사장이나 왕을 위한 기름부음에는 '마사흐'라는 동사를 사용하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다센'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다센'의 기본적인 의미는 '살이 찌다'(be fat)로서 '번영하다'(prosper)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주인이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 집을 찾아온 손님을 향하여 번영의 축복을 기원하는 내용이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향료를 넣어 만든 이 기름은 일종의 향수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손님의 몸에서는 광야의 무더위 속에서 먼 길을 걸어오면서 땀과 먼지 등으로 냄새가 나게 된다. 주인은 그런 그에게 기름을 바름으로 이런 냄새를 제거해주는 사려 깊은 배려를 하는 것이다.
(2) 잔을 건네줌
여기에서의 잔은 포도주가 담긴 잔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에서의 포도주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축복을 상징하며(창 27:28), 사람에게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을 나타낸다(사 16:10; 렘 48:33). 그러므로 손님에게 포도주잔을 건네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바라는 주인의 호의적 표시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포도주잔을 건네주는 것은 무더위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갈증과 더위를 일차적으로 해결하여 주는 역할을 하였다. 포도주잔을 들면서 찾아온 손님은 그동안의 피곤과 갈증을 풀면서 어느 정도의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3) 잔칫상을 베풀어 줌
손님을 향한 최종적인 환영의 표현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상이다. 이스라엘에서의 음식상을 나누는 일은 단순한 음식을 먹는다는 차원을 넘어 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 음식은 언약의 의식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것은 모세의 시내산 언약과 관련하여도 나타나고(출 24:11), 화목제의 제물을 나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레 7:15). 그리고 이러한 언약으로서의 음식 나눔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집주인에 의하여 베풀어진 잔칫상은 특별히 그동안 손님을 뒤쫓아 다녔던 원수의 목전에서 배설되어 있다. 여기에서 잔칫상과 대적과의 관계는 목축문화의 관습을 통하여 조명해야 할 요소이다. 유목민족들은 일단 나그네를 자기 천막(집)의 손님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이 되면, 그때부터 손님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그 집주인의 책임이 된다. 이 책임 속에는 의식주의 문제뿐만 아니라 신변 보호의 문제까지 포함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단 그 나그네가 손님으로 영접이 되면 그의 대적들은 이제부터 그 집주인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적들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추격할 수 없고, 단지 대접을 받는 그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집안에서의 대접과 보호가 얼마나 완벽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풍성하게 차려진 잔칫상은 곧 지금까지 줄기차게 추적하여 온 대적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