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의사 요한> (下)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문화 평론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배우 지성(차요한 역) 주연 드라마 <의사요한>을 연속으로 다룹니다. <의사요한>은 ‘안락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생명의 문제를 중시하는 기독교계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지성 외에도 이세영(강시영), 이규형(손석기), 황희(이유준), 정민아(강미래), 권화운(허준), 오현중(김원희), 김혜은(민태경), 엄효섭(강이문) 등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안락사와 신화: 서구 고대인들이 바라본 안락사와 자살
드라마 <의사요한>에서 주인공 차요한(지성 분)이 소극적 안락사를 감행한 이유는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환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었다.
옛부터 서구인들이 불가항력적 처지에서의 자살이나 안락사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던 이유도, 바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안락사는 매우 오래 전부터 행해졌다. 의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의 전장에서는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안락사시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실 이는 고대에만 아니라 현대에도, 가깝게는 한국의 6∙25전쟁이나 월남전 때도 흔치 않게 목격되던 일이었다. 가망이 없는 부상자의 고통을 없애주는 일, 이는 일종의 자비와 배려로 여겨졌다.
서구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는 안락사를 금기시하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전장에서의 급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안락사가 윤리적으로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사고는 이미 그리스 신화에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3대 희곡 작가 중 하나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쓴 <헤라클레스>는 당시 사람들이 안락사에 대해 생각하던 바를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반신반인이었던 영웅 헤라클레스는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계략 때문에 온 몸이 히드라의 독에 중독된다. 독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워낙 강건한 몸이었던 까닭에 쉽게 죽지 않던 헤라클레스는, 결국 자신의 몸을 장작더미 위에 놓고 불을 놓아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비극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전 행한 영웅적 업적들 때문에 결국 신의 반열에 오른다.
이 희곡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살과 안락사에 대해 많은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살을 해도, 안락사를 행해도, 그것이 영웅이 되고 신이 되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영웅과 선인이 비극적인 처지에 처하여 자살이나 안락사를 행할 경우, 신들의 동정심이 더 커진다는 생각마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철학자들 역시 자살에 대해 그리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크라테스의 사형인데, 사실 소크라테스는 얼마든지 사형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철학적 신념 때문에 자처해서 아테네인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게다가 사형이 결정된 후에도 도주할 기회가 많았지만, 죽음을 통해 도달하게 될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열망 때문에 별 스스럼 없이 독배를 들고 만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파이돈>은 사형집행 당일 새벽에 죽음이 영혼의 해방임을 설파하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정작 소크라테스 본인보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더욱 슬퍼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로마인들은 자살과 안락사에 대해 그리스인들보다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로마의 엘리트들은 스토아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 스토아주의의 기본 전제는 유물론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실은 물질의 한 종류에 불과하며, 죽음 후 다른 물질의 형태로 변하기 때문에 자살이나 안락사로 인해 영혼의 형벌을 당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폭군 네로 황제 때는 그의 최측근이었던 페트로니우스가 매우 편안한 방식으로 죽는 공개 안락사를 감행한다. 페트로니우스는 절친했던 네로 황제와의 사이가 틀어져 숙청될 위기에 처하자 비참하게 죽는 꼴을 피하려 스스로 안락사를 행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맥을 잘라 피를 흘리는 가운데 자신의 친우들을 불러 연회를 열고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에 취해 잠들었고, 결국 과다출혈로 죽었다.
네로의 다른 측근 중 하나이자 로마의 위대한 스토아주의 학자였던 세네카 역시 자살로 생을 마쳤다. 물론 네로의 명령에 의한 자살이긴 했지만, 이런 비극적인 자살이 오히려 위대한 인물에게 삶의 위대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안락사와 신앙: 안락사 합법화를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 기독교회
서구 세계에 안락사나 자살을 금지하는 풍토가 확립된 것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부터이다. 자살이나 안락사가 내세에서 인간의 영혼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의료계에서 안락사의 법제화를 금지하는 주된 사상적 배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 로마 제국 시대에 갖고 있던, 불가항력적 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낭만적이고 동적적인 시각은 서구 문화 속에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의 기수였던 마르틴 루터의 경우, 심리적 고뇌 때문에 자살한 이를 “마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 진단하며, 자살이 영혼의 구원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살에 대해 금기시하는 태도는 가톨릭 교회 측에서 더 엄격히 고수했다. 물론 자살한 영혼도 면죄부나 보속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긴 했지만, 어쨌든 자살은 영혼의 구원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일이라고 보았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는 이 같은 정황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서구 문화는 급격한 세속화를 경험했고,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자살과 안락사에 비교적 너그러웠던 고대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이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이런 시각이 의료계 전체를 뒤흔드는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바로 193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발족된 안락사 협회의 활동이 그것이었다. 이들 협회의 회원들은 연명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에 대한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의사조력자살)을 모두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영미 개신교계와 가톨릭 교회 모두 안락사를 자살로 규정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교회의 반발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 안락사 합법화에 대한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나치의 홀로코스트였다.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는 유대인과 집시들에 대해 조직적인 학살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독일인 가운데서도 장애인, 정신지체, 기형으로 고통받던 이들 20만명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생체 실험을 하고 안락사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런 행각이 2차대전 종전 후 전범재판 과정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안락사에 대한 전면적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안락사가 악용될 경우 극악한 인권 유린이 자행될 수 있다는 자각 덕에, 안락사 합법화 운동은 완벽하게 좌절되었고, 향후 약 70여년 간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안락사=인권유린’이라는 인식이 약 70년을 견딘 것이다.
그러나 2002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점차 소극적 안락사 뿐 아니라 적극적 안락사마저 합법화하는 국가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적극적 안락사까지 법으로 허락하는 국가는 베네룩스 3국과 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일부 주에 국한된다.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는 좀 더 많은 국가와 미국의 주들이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개인의 인권, 실존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곳이다. 이는 전 세계에 안락사 합법화가 곧 인권 증진으로 연결된다는 인상을 남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 가운데 그나마 개신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 강한 곳에서는 안락사의 합법화 시도가 계속해서 무산되고 있다.
즉 안락사 합법화의 최후 보루는 현재로서는 기독교회 뿐이다. 물론 이슬람교 역시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아직 서구의 주류 문화 및 정치에 기독교회만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회 내부에서도 이제 더 이상 자살이나 안락사가 영혼의 구원을 완벽하게 무산시키는 절대적 대죄(大罪)인지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안락사 합법화를 향해가는 한국 사회의 동향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문제가 신학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성경적으로든 간에 확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난관이 분명 스스로의 생명을 자신의 의지로 끝내는 행위인 안락사의 법제화마저 방관할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 혹은 안락사가 영혼 구원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지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인명을 살해하는 일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처사임에 틀림없다는 사실마저 희석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중범죄를 금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안락사에 너그러워지는 오늘날의 세태에 저항할 당위성을 갖는다.
이런 맥락에서 <의사요한>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제를 시급히 고찰하고 신앙의 입장을 확립하도록 촉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