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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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2.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어떤 곳인가?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이다. 성경은 그러한 사실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이 하란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아브라함의 고향은 우르였음을 강조하고 있다(창 11:31; 15:7; 느 9:7). 아브라함이 살았던 주전 2000년경의 우르는 번성하던 우르 제3왕조가 몰락하고 고대 바벨론제국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는 일종의 혼란기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우르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번성하였던 도시였다. 아브라함 당시의 우르는 10평방킬로미터 넓이의 도시로서 30만 내지 40만의 인구가 모여 살았던 거대한 도시였다. 이곳에는 유프라테스강물을 끌어들이는 수로가 잘 발달되었고 주변의 거대한 평원에는 비옥한 농경지와 과수원들과 아름다운 정원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옛 우르 지역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 발굴 작업은 1854년 영국의 고고학자 테일러(J. E. Taylor)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뒤로 1918년 영국 학자 톰슨(Campbell Thompson)과 1918-1919년 홀(H. R. Hall)이 발굴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들의 초기 발굴 작업은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우르 지역에 대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은 1922년 울리(Sir Leonard Woolley)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934년까지 12년 연속으로 우르 지역을 발굴하였다. 그는 우르의 옛 유적지에서 거대한 지구랏(ziggurat)을 비롯하여 우르의 주신이었던 월신 난나(Nanna)를 위한 여러 신전들, 그리고 우르 제3왕조의 궁궐들과 황실무덤들을 발굴하였다. 울리가 발굴한 지역은 일부였지만 발굴 결과는 전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는가를 알게 해주었다.

우르는 청동기시대인 주전 4000년대 초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도시의 번영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우르 제3왕조 때였다. 우르에서 발굴된 거대한 규모의 지구랏은 우르 제3왕조를 창건한 우르-남무에 의해 건축된 신전이다.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우르의 지구랏은, 성경에 언급된 바벨탑처럼, 불에 구운 흙벽돌과 역청으로 지어졌다. 중앙으로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있었으며 꼭대기 층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작은 신전이 있었다.

우르남무 이후 그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가던 우르 제3왕조는 북서쪽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아모리인들과 이들과 연합한 북동쪽의 엘람사람들의 위협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자 우르를 제외한 여러 도시들 사이에서 주도권 장악을 위한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이런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친 도시국가는 이신(Isin)과 라르사(Larsa)와 바벨론(Babylon)이었다. 이들 중에서 바벨론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되었는데, 서쪽에서 유입된 아모리인들로 구성된 고대 바벨론은 동쪽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엘람사람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다른 도시들과 동맹관계를 확대하면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함무라비는 고대 바벨론제국에서 최고의 절정기를 이룬 왕이다.  

우르 제3왕조의 몰락과 고대 바벨론왕국의 등장으로 우르는 역사의 주변으로 밀려나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중심 세력을 이루지 못했다. 우르는 2000년대 중반 카시트 왕국시대나 기원전 7세기 엘살하돈이 통치하던 앗수르제국 시대에 일시적으로 번영하는 도시가 되기도 했지만, 옛 영화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헬라시대에는 아랍 유목민들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던 우르는 그 이후 폐허에 묻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3.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하란은 어떤 곳인가?

'하란'은 '도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로'를 의미하는 수메르어에서 기원된 이 단어는 아카드어에서 '하라누'라고 읽혀졌고, 히브리어는 아카드어의 음을 따라 '하란'이라고 불렀다. 바벨론어나 앗시리아어에서도 '하란'은 '도로' '여행' '대상' '군대의 출정' 등을 의미했다. 실제로 하란은 상부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지나가는 중요 도로들이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동쪽에 위치한 티그리스강 유역의 니느웨에서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거쳐 알렙포와 지중해로 연결되는 간선도로가 이곳 하란을 경유하여 지나갔고, 남부 지역인 우르에서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동쪽의 아나톨리아로 연결되는 중심도로도 하란을 지나갔다. 하란을 '밧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창 48:7), '밧단'은 '도로'를 의미하는 또 다른 아카드 단어였다. 성경에서는 '밧단'보다는 '밧단 아람'('아람의 도로')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하란은 유프라테스강의 한 지류인 발릭강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발릭강은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서 유프라테스강 본류와 합류된다. 하란은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와는 94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하란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란의 초기 역사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고대 비문에 따르면, 하란은 주전 2000년대에 이미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였음이 밝혀졌다. 아마도 하란이 우르와 함께 달 신을 섬기는 중심지였기 때문에 주전 2000년경 우르 제3왕조의 영향으로 큰 도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교통의 중심지였던 하란은 자연스럽게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최근에 발견된 쐐기문자판을 통해 하란과 그 인근 지역이 중요한 상업 중심지였음이 밝혀졌다. 에스겔도 하란을 여러 중요한 상업과 교역 중심지 중의 하나로 열거하고 있다(겔 27:23).

고대의 중요한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하란 역시 종교적인 도시였다. 특히 이곳에서는 달 신인 '신'(Sin)을 숭배하는 중심지였다. 신(Sin)은 바벨론과 앗수르에서도 주신으로 섬겼던 신들 중 하나이다. '에훌훌'이라고 불렸던 하란의 신(Sin) 숭배 신전은 그 규모가 웅장했을 뿐 아니라 모양도 대단히 화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전의 지붕은 레바논에서 수입한 백향목으로 지었으며 청색을 띈 금석과 은으로 장식되었다. 하란의 신(Sin) 숭배는 기원 6세기까지도 계속되었는데, 이는 하란의 달 신 숭배가 기독교가 번성하던 시대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란은 가나안으로 이주하던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였다(창 11:31). 아브라함의 부친이었던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고, 그 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친족 중 일부는 하란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종을 이곳으로 보냈고, 또한 야곱은 에서의 위협을 피하여 이곳으로 피신해 와서 지내기도 했다.

하란과 관련하여 성경은 아브라함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아람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리브가의 오빠이자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은 여러 차례 자신이 아람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으며(창 25:20; 28:5; 31:20; 31:24)), 이들이 살던 하란지역을 '밧단 아람'(아람의 도로) 혹은 '아람 나하라임'(두 강사이의 아람)이라고 부른 것도 하란이 아람사람들과 관련된 곳임을 지적해 준다. 후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조상을 '유랑하는 아람사람'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신 26:5). 이러한 내용은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란에 정착해 살면서 아람사람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역시 하란을 자신의 고향이라 불렀다(창 24:4).

고대 문헌 속에 아람이라는 지명이 언급된 것은 주전 23세기로 추정되는 아카드의 나람-신 비문에서다. 이 비문에 의하면, 아람은 상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지역을 의미했다. 그러나 원래의 아람인은 오늘날의 시리아 주변 사막에서 살아오던 혼혈 반유목민들이었다. 이들 아람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였던 언어를 통하여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었다. 이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는 본래 동부 시리아나 서북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서북 셈어에 속하는 지방 언어였다. 아람사람들의 세력이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자, 이들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특히 아모리인들도 아람어와 같은 서북계통의 셈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아람어의 영향권 안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는 아모리인들이 다수 포함되었음이 분명하다. 아모리인에 속했던 아브라함이 이주하여 살게 되었던 하란 역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었다. 자연히 그들은 같은 계통의 언어인 아람어의 영향을 받아 사용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 역시 아람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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