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교회 인터뷰]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
목회 30년, 이민교회 교회 개척 및 22년 담임목회, 시인, 미전도 종족 선교, 교회협의회 임원 등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적지 않다. 늘 잘 웃고 누구의 말이든 일단 들어주고 받아주는 마음 좋은 목사로 정평이 나있지만, 20년 넘는 세월 한 교회를 개척하고 섬겨온 것에서 그의 끈기와 저력을 엿볼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는 선배 목사를 존경하고 잘 배우며, 후배 목사들을 이끌어 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부지런히 해 온 '작은 아버지' 같은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는 '아골 골짝' 같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을 회고하며, 그 가운데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 은혜를 뜨겁게 간증했다. 시작은 2016년, 그가 속한 미 연합감리교회 멤버십 이전(트랜스퍼) 문제가 불거지면서 였다. 그는 원래 뉴저지 컨퍼런스 멤버로 애틀랜타로 내려와 개척하며 이전을 신청했는데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않았고, 교회 사역과 해외 선교에 집중한다고 개인적인 문제는 크게 신경쓰지 못하고 두었던 것이 화근이 됐다.
2016년부터 교단 측에서 여러가지 면에서 압력을 가해왔다. 문제삼은 분담금은 성도들이 마음을 합해 금방 해결했지만, 교단법에 따라 감독이 부르면 다시 뉴저지 컨퍼런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혹시 갑자기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타고 한번 마음에 들어온 '두려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 교인들은 오히려 하나가 돼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보려고 하는데, 제가 너무 마음이 힘든 거예요. 가장 먼저는 설교가 안되요. 2년 동안 제일 힘들었던 게 설교였어요. 특히 주일에는 단상에 서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토씨까지 다 써서 미리 연습까지 하는데도, 사람이 영적으로 눌리니까 설교문을 봐도 읽히지가 않고 목이 탁 막혀서 목소리가 안나와요. 점점 말도 줄고, 거의 매일 쓰던 시는 당연히 안써지고, 심방 가면 설교만 겨우하고 가만히 앉아있어요. 영적으로 마르니까 몸도 마르고 아주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을거에요. 그래도 감사하게 성도들이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누구하나 목사님 왜 그러냐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았죠. 그래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교회 목회협력위원회에서 안식월을 주자고 해서 2018년 5월 1일부터 6월 16일까지 한달 반을 쉬었어요. 도망치듯이 책 몇권 싸들고 한국으로 갔죠."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쉬이 회복되지 않는 마음과 커져가는 두려움에, 목회 안할 생각만 하고 은퇴하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가 한국에서 찾은 곳은 모교회가 있는 고향이었다. 형님이 운영하는 웨딩홀에서 마침 식사를 하려고 산해진미로 차려진 음식을 갖다 놓고 앉았는데... 30분간 목 놓아 울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결혼식에 '사연 많은 남자'로 보였을게 뻔하다(웃음). 회개와 결단의 눈물이었다. 사연이 있긴 있던 것이다.
"형님은 이미 제 상황을 잘 아시고 '이렇게 착한 성도들 두고 어렵다고 목회 그만두면 되겠냐'면서 혼도 내시고 위로도 해주셨어요. 그날 산해진미를 놓고 먹으려는데 갑자기 성도들 얼굴이 그 앞에 지나가는 거예요. 형님은 사업을 하면서도 손님들을 잘 섬기려고 정성껏 차려서 대접하는데, 나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영적인 음식 대접할 생각은 안하고 그만둘 생각만 하는구나 싶어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한지... 눈물 콧물 닦아가며 실컷 울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마음이 너무 기뻐 몇 시간을 열심히 접시를 날랐죠. 그날 이후 회복이 시작됐어요."
늘 기록하는게 습관인 남궁전 목사답게 수첩에는 '2019년 5월 19일'이 회복의 날짜로 적혀있다. 미국으로 돌아와 6월 17일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씀이 열리고 있다고. 힘들 때는 온갖 설교집과 주석, 신앙서적을 참고하는 것도 모자라 이전에 작성했던 설교집을 다시 들춰보며 예화까지 일일이 다 써서 설교를 전하려고 해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주시면 전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마치 터져 나오듯이 말씀이 나온다고 한다.
새벽 기도와 주중 예배, 주일예배까지 모든 설교가 마치 하나의 집처럼 3D로 연결되어 전해지면서, 요한복음 7장의 말씀처럼 생수가 넘쳐나 강이 되는 기적을 맛보고 있다고 간증했다. 또 그렇게 쓰려고 해도 안써지던 시가 이제는 권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써져서 손을 누가 붙들고 쓰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몇 년 사이 메마른 광야를 지나 흘러 넘치는 생수의 강으로 걸어 나오면서, 남궁전 목사가 깊이 깨달은 한 가지는 이것이 비단 자신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겪는 슬럼프이기도 하고, 한번 부흥을 경험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힘들어진 교회의 경우도 회복으로 방향을 틀어 나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목회자로서 50대는 어떻게 보면 가장 농익은 목회를 시작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인데, 이때 힘이 빠져버리면 60대 초, 중반 은퇴까지 그 상태로 겨우 유지만 하게 된다는 것이 남궁 목사의 생각이다.
"제가 그래도 애틀랜타에서 22년 목회를 하면서 여러 교회와 목사님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부흥' 시키신다는 거에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를 교회 사이즈로만 평가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우리 교회에 원하시는 '부흥'이 뭔지 아는게 먼저 아니겠어요? 이건 인간적인 방법이나 프로그램으로 반짝해서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목회자부터 성도들까지 그 내면에서 진리의 말씀이 생수의 강처럼 흘러 넘치는 부흥, 삶 가운데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고 인격이 성숙하고, 관계가 회복되는 부흥, 지역사회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길 때 나타나는 선한 영향력이 진정한 부흥이라고 믿습니다."
목회 후반의 꿈을 물었다. 먼저는 개인적으로나 목회적으로 터닝 포인트를 주셔서 후반전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섬기는 베다니감리교회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기도를 통해 부흥의 불씨를 지피는 것, 꾸준히 섬겨온 미전도종족 선교를 힘 닿는 데까지 섬기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가 깨어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을 성령 안에서 하나되게 하고 이들이 모두 다시금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섬기 일이라고 했다. 꾸준히 일해 온 교회협의회에서 내년에 회장으로 섬기게 된 만큼, 그가 받은 성령의 불이 침체된 지역 교회에 부흥의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