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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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대 구약학 교수) ⓒ권혁승 박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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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아브라함의 부름

1. 부름의 배경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서 아브라함의 위치는 특별하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면서 동시에 성경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중요성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더 큰 역사와 관련된다. 그래서 그는 창세기 1장이 아닌 창세기 11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이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아브라함의 부름이 성경 전체 맥락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노아의 물 심판으로 요약된다. 거기까지는 전체로서의 인간 곧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그 대상이다. 물 심판 이후 새로운 인간으로 기대되었던 노아의 후손들도 여전히 타락한 본성을 지닌 채 잘못된 길을 걸었다. 바벨탑은 그런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버리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하나님은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아브라함 이전까지의 하나님 관심은 온 인류에게 집중되었다면, 그 이후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개인과 그의 후손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변화가 있다고 하여 인류의 역사가 이스라엘 역사로 대체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역사를 위한 잠정적 조치였다. 그런 점은 아브라함의 부름과 함께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큰 민족'이란 이스라엘 민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를 하나의 큰 공동체로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인류 역사를 시작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역사 곧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켜 창조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시작하셨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일반 세속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곧 구원역사이다. 하나님은 구원역사의 주역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스라엘은 그 일을 위한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

2. 하나님의 부름과 아브라함의 순종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을 선택하신 것일까? 성경은 아브라함이 어떤 인물인가를 상세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하나인 셈의 9대손이며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성경이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주도권 곧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부름이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 하여도, 그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신앙적 자세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창세기 12:4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다. 하나님의 도전과 새로운 변화 앞에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가나안으로의 이주는 단순한 생활 터전의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향한 과감한 결단이었다. 당시 가나안 땅은 그가 살았던 메소포타미아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환경이 열악하였다. 그의 가나안 이주는 더 편안한 삶의 추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의미를 향한 도전이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따른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첫 번째는 그의 고향이자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여기에서 '본토 친척 아비집'이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명령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위대한 도전이긴 하지만,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따른 두 번째 말씀은 앞으로 전개될 놀라운 계획 곧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창 12:2a)는 약속이다. 여기에서 '민족'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고이'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히브리어 '암'과는 대조적이다. '암'이 혈통 중심의 민족을 의미한다면, '고이'는 영역을 중심한 국가개념으로서의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큰 민족'은 단일 이스라엘 민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포함된 거대한 국가개념이다. 이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이루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자기의 힘으로 위대한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이루어주신다는 약속이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크고 위대한 민족으로 주도해 가시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따른 세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장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b)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되 그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장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저주한 그들이 오히려 저주를 받게 되고, 그를 축복하면 축복한 그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주변사람들 모두는 아브라함을 축복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철저히 보장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따른 하나님의 말씀에는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그 계획, 그리고 그에 따른 보장이 포함되어 있다.

3. 훈련을 통해 성숙으로의 부름

아브라함은 완성된 자로 선택되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성경 자체가 아브라함을 특별나게 소개하지 않은 것도 아브라함의 그런 점을 확인시켜 준다.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을 대동하고 가나안으로 떠난 것도 아브라함의 순종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지적해 준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간 사건이나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인 행동 등은 대표적으로 그가 보여준 나약한 모습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완성된 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을 향하여 훈련받을 자로 부르셨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가능성의 인물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는 창세기 내용(12장-25장)은 실제로 아브라함이 시련을 겪으면서 성숙한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정들고 익숙했던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히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가 아니라 새 역사를 이룰 인물로 훈련시키기 위한  부름이었다. 훈련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자신과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과제이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가능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근거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와 지내면서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을 즐겨하였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삶과 예배를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 세겜에 도착하였을 때, 하나님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창 12:7)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그가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런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였음을 보여준다. 그 후에도 그는 옮겨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창 12:8). 예배는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기본적 신앙행위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그런 모습이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적 가능성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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